"'…활'은 제 인생 최고의 작품이 아니라 최초의 작품이 될 겁니다. 역사 시리즈 3부작을 이 영화로 시작했으니까요. 우리 선조의 고귀한 정신을 보여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영화 '최종병기 활'을 연출한 김한민 감독이 이런 포부를 밝혔다. '…활'은 올여름 극장가에서 기대를 모은 블록버스터들이 줄줄이 고전하는 사이 최고의 다크호스로 떠올라 한 달도 안 돼 500만 관객 동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손익분기점인 300만을 훌쩍 넘겼으니 성공의 단꿈에 취할 만도 하지만 지난 1일 압구정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다음 영화를 구상하는 데 더 골몰해 있는 듯했다.
"우리 역사가 정말 드라마틱하죠. 그런 만큼 한을 풀어주고 어두운 쪽보다는 좀더 호쾌한 정신을 보여주는, 긍정적 시선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게 필요하다고 봐요. 지금 시대에는 그런 고귀한 정신, 불굴의 정신이 많이 약한 것 같아서 그런 지점을 더 조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활'이 대중적으로 호소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측면이 크다고 분석했다.
"요즘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느낄 수 있는 쾌감, 전율이 있다고 봐요. '활이 이런 거구나, 부러질 듯 부러지지 않는 불굴의 꺾이지 않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구나' 하는 것이 관객들에게 어필하는 거 아닌가 싶고 그런 게 통해서 정말 뿌듯합니다. 내 시도가 그런 지점에서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믿음을 강하게 갖게 되고요. 2부, 3부 역시 그런 지점에 집중하면 되겠다는 자신감과 확신이 생겨요."
'…활'은 병자호란을 시대적 배경으로 활을 잘 쏘는 한 남자가 청군에 잡혀간 여동생을 구해 오는 얘기다. 병자호란이 영화에서 큰 비중을 갖는 내용은 아니지만, 민족의 수난사와 함께 활이라는 전통적인 무기와 전투 방식을 보여주는 데에는 더 없이 효과적이었다.
김 감독은 다음 작품들 역시 '역사 시리즈'라고는 해도 역사가 중심이 아니라 주제의식을 우선으로 둘 거라고 했다. 액션이나 스릴러나 코미디는 그런 주제의식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수단일 뿐이라는 것.
"2부는 일제강점기, 3부는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할 거예요. 2부는 독립투사 얘기인데 우리 독립투사들은 동경 한복판에서 무차별적인 테러를 하진 않았어요. 어떤 정신이 있었던 것 같아요. 무고한 사람을 죽이지 말아야 한다거나 절대 도망가지 않고 의거를 한 뒤에는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고 의연하게 끌려갔던 것이라든지…. 이런 저항의 방식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봐요. 일제강점기란 시대적 상황을 현실적으로 반영하면 블랙코미디가 될 거예요. 임진왜란은 활의 업그레이드 버전이에요. 당시의 모든 무기를 보여주고 훨씬 더 방대한 전투가 담길 겁니다."
그는 전작인 '극락도 살인사건'(2007), '핸드폰'(2009)을 찍을 때도 이야기보다는 주제와 메시지를 먼저 생각했다고 했다.
"한 작품 한 작품 할 때마다 주제의식이랄까 메시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되네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주제의식이 아니라 영화의 장르나 리듬, 배우 캐스팅까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영화의 전체적인 틀을 말하는 겁니다. 인간이 깨닫고 변화하고 성장하는 지점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딱히 어떤 장르를 선호하기보다는 주제에 맞게 다양하게 선택하게 되는 것 같아요."
'…활'의 성공 비결을 묻자 그는 '집중력'을 꼽았다.
"올 곧이 영화에만 집중한 감독과 스태프, 배우들의 정신과 의지가 만들어낸 게 아닐까 싶습니다. 짧은 제작 기간 모든 사람이 투혼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가 시나리오 작업에 매달린 것은 2009년부터 2년 동안이었지만, 촬영이 이뤄진 것은 지난 2월 11일부터 6월 9일까지 4개월에 불과했다. 이후 두 달만인 8월 10일 개봉됐다. 연중 대목인 여름 시장을 놓치지 않기 위한 투자ㆍ배급사의 결정이었다. 제작비 100억 원규모의 대작으로서는 유례없이 짧았던 제작 기간을 떠올리며 그는 몸서리를 쳤다.
"이 일정만 봐도 제작 과정이 얼마나 빠듯하고 촘촘했을지 알 수 있어요. 누군가 다치거나 불협화음을 내거나 집중하지 못하거나 자기 역량을 다하지 못했다면 아마 이렇게 성공하지 못했을 거예요. 짧은 기간에 집중력을 발휘하니까 효율성이 높았던 것은 좋은 점이지만, 제작 기간을 적절히 안배해야 한다는 문제는 우리 영화계가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라고 봐요."
영화 홍보를 위해 부지런히 뛰고 있는 그는 여러 특별한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다. 인터뷰 전날인 지난달 31일에는 현역 양궁선수와 지도자들을 위한 시사회를 열었다.
"김수녕 선수, 이은경 선수를 비롯해 15명의 현역 선수, 코치, 총감독님이 오셨는데, 얘기가 정말 잘 통하더라고요. 이구동성으로 '두려움은 직시하면 그뿐,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라는 마지막 대사가 좋다고, 그말이 진짜라고 공감하더군요."
영화가 흥행하면서 화제가 된 이 대사는 그가 '한국의 활쏘기'란 책에서 본 구절을 응용한 것이다.
"그 책에 바람을 계산해서는 명사수가 될 수 없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굉장히 와 닿았어요. 마지막에 너무 거창한 얘긴가 싶어서 뺄까 하다가 넣었는데, 사람들한테 뭔가 느낌을 주나 봐요."
영화의 몇몇 장면이 멜 깁슨 감독의 영화 '아포칼립토'와 비슷하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참고한 많은 영화 중 하나일 뿐이라고 했다.
"할리우드의 웨스턴 무비들과 일본의 사무라이 영화들을 많이 봤어요. '아포칼립토'나 '도망자' '에너미 앳 더 게이트' 등 영화들이 영향을 줬죠. 특히 '에너미 앳 더 게이트'는 저격의 코드가 강렬한 자극을 줬고요. '…활'은 어쩌면 관객들이 좋아하는 장르적인 지점에서의 컨벤션(전통)이라고 할 수 있어요. 관객들이 낯익은 느낌으로 즐겁게 바라보는 지점이 있어요. 그렇지만, 그것을 새롭게 변형해줘야죠. 비슷한 액션이라도 활로 하니까 새로운 거예요."
그가 영화에 특별한 애정을 갖게 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청소년관람불가 영화인 배창호 감독의 '깊고 푸른 밤'(1984)을 보면서였다.
"영화감독이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는데, 그 생각만으로도 떨리더라고요. 그러다 대학에서 영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꿈이 구체화했죠."
대학에서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2년여간 직장 생활을 하다가 꿈을 잊지 못해 동국대 연극영화과 석사과정을 밟았다. 대학 시절의 연출 경험이 감독으로 데뷔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그가 꿈꾸는 것은 장르 안에 자기만의 스타일을 녹이는 것이라고 했다.
"히치콕이 작가주의 대명사로 꼽히지만, 그 역시 스릴러 장르 안에서 자기 색깔과 스타일을 만들었죠. 히치콕 자신이 재미있게 느끼고 하고 싶은 영화를 만들었어요…. 장르 속에서 감독 개인이 숨 쉴 수 있는 지점이 있다고 봐요. 뤽 베송이 근래 그런 감독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할리우드의 스티븐 스필버그나 제임스 캐머런, 워쇼스키 형제 같은 사람들도 대중상업영화 안에서 자기만의 스타일을 녹이는 사람들이에요. 저도 그들과 같이 공명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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