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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병원 단상

효사랑전주요양병원 내과 전문의 김정은

"곧 닥쳐" 이 말은 치매로 엉뚱한 말이나 행동을 하는 어르신들 때문에 힘들었던 일화를 이야기하는 요양병원 동료들 사이의 유행어이다.

 

우리도 언젠가는 나이가 들게 되고 보살피는 입장에서 보살핌을 받는 입장으로 바뀔 것임을, 그리고 우리가 지금 성심껏 환자들을 대하면, 미래의 노인이 된 나도 성심성의껏 보살핌을 받게될 것이라는 인생의 황금률을 간결하게 설파해 주는 말이기도 하다.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가치는 내일 돌아가실 환자나 오늘 태어난 아이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요양병원에는 노인환자뿐 아니라 완화의료를 위한 말기암 환자들도 많이 계신다. 한달전쯤 돌아가신 환자분이 생각난다. 70세의 남자환자였다. 서울의 종합병원에서 말기 전립선암과 다발성 전이성 골암으로 진단받고, 합병증인 고칼슘혈증 치료와 완화의료를 위해 전원된 환자셨다.

 

평생을 교직에 몸담고 있던 그분은 부인과 지인들에 의하면 참을성도 많고 남을 배려해주는, 법 없이도 살 분이라고 했다. 말기암이라서 증상조절 외에는 별다른 치료를 할 수 없는 상태였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환자의 증상은 악화되고 통증은 더 심해졌다

 

최초의 문제는 통증조절에 관한 것이었다. 보호자는 마약성 진통제를 쓰게 되면 부작용이 생기고 내성이 생겨 용량을 올리게 되고 이로 인해 중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표명했다. 이에 대해,'암성통증 치료에 적절한 용량은 통증을 느끼지 않는 용량이고, 만성통증조절이 필요한 말기 환자는 거의 중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하고, 부작용 예방을 위해 변비약과 항구토제를 같이 처방하며 통증을 최대한 완화시켜 주었다.

 

다음 문제는 왜 하나님이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자기에게 이런 시련을 주고, 기도 응답을 안해주시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한다고 마술적으로 병이나 통증이 없어진다기보다는 신이 우리가 시련을 당하는 중에 곁에서 함께 고통을 당해 주신다"고 말씀드렸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 신이 돌을 피하게 해주시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대신 찬란한 하늘나라의 영광을 보여줌으로 돌에 맞아 죽어가는 중에도 천사같이 환한 얼굴로 기쁘게 죽을 수 있는 축복을 받은 것을 상기 시켜 주었다.

 

다음 문제는 환자가 우울증 증세를 보이며 이런 고통속에서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가족들에게 부담만 주고 무가치한 존재가 된 느낌이라고 차라리 죽여달라고 호소했다. 소량의 항우울제를 처방하고, 환자를 부드럽게 응시하며 말해주었다.

 

그냥 사는 것은 아무나 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말기암과 그 심한 통증에 굴복하지 않고 용기있게 맞서서 끝까지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존엄성을 유지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녀들은 자랑스러워 할 것이며, 생에 어려운 상황을 만날 때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맞서

 

싸워 이겨내려는 용기를 배울 것이다'라고 말씀드렸다. 진심이 통했을까.

 

환자는 의식이 없어지고 호흡이 멎는 순간까지 용기있게 죽음과 맞서서 최후까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품위를 유지하며 천사같은 얼굴로 운명하셨다.

 

인생의 마지막에 만나는 소중한 인연. 과연 나는 오늘도 사명감을 가지고 소명을 다하고 있나 반성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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