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철 전북도 블로그 기자
'삶의 질'을 강조하는 요즘, '느린 여행'이 각광받고 있다. '도보 여행'의 열풍은 이런 시대적 맥락과도 맞닿아 있다. 도보 여행의 열풍이 불면서 최근 전북에도 많은 도보 여행길이 뚫렸다. 익산의 함라산 둘레길, 완주의 고종시 마실길, 전주 한옥마을의 숨길, 군산의 구불길, 부안의 변산반도 마실길이다.
△ 금강의 자락을 머금은 익산 함라산 둘레길
길은 익산 함라의 삼부자(三富者)집에서 시작된다. 전라도에서 한양을 가기 위해 이들의 땅을 밟지 않고는 가지 못했다 할 정도로 구한말 어마어마한 부를 쌓았다. 세 부잣집들은 경쟁적으로 재력만 쌓은 것이 아니라 어려운 사람들에게 널리 베풀는 일에도 앞다투었다. '인심은 함라'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이곳에서는 조선왕조와 일제 강점기 시대를 거치는 동안 한옥의 변천사과 인상적인 붉은 토담길을 만날 수 있다. 천천히 걷다보면 함라산이 드러난다. 그저 동네 뒷산 같아 온 가족이 함께 걸어도 부담되지 않는 완만한 높이의 산이다. 다소 평범한 뒷산 같은 이곳을 걷노라면 의외의 특별함을 발견할 수 있다.
최근 발견된 야생녹차밭은 이곳이 야생차의 북방한계지임을 보여준다. 함라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익산평야 익산시 전경, 미륵사지를 품는 미륵산,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풍광은 풍요로운 전북의 산하를 보여준다. 함라산에서 길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명상길로 향하면 찬란한 백제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웅포 고분전시관, 건강길로 향하면 천년 고찰인 숭림사를 만날 수 있다. 그 길 끝에는 금강이 자리하고 있다.
마을길, 숲길, 논두렁, 밭두렁을 지나 여정의 마지막에 만나는 금강은 참으로 특별하다. 오직 아름다웠으면 이름도 금강(錦江)이었을까. 그 위로 지는 낙조는 너무 고와 서러울 정도로 아름답다.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고, 수수한 듯 화려한 함라산 둘레길은 오랜 여운으로 남는 곳이다.
△ 깊은 고요가 머무는 완주 고종시 마실길
완주 고종시 마실길은 뭐든 깊다. 산도 깊고, 물도 깊고, 그 일대를 감싸는 고요마저도 깊다. 전주에서 고작 차로 30여 분을 달리면 도착 가능한 곳에서 즐기는 청정자연이란. 새롭게 뚫린 도보여행 길이 바로 고종시 마실길이다.
고종은 감을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완주 동상 지역에서 난 감을 좋아해 이곳에서 생산되는 감은 '고종시'라 불리웠을 정도. 감나무가 유독 무성한 마을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엔 평화가 스민다.
다른 산성이 외적의 침입에서 마을을 지키기 위해 조성됐다면, 완주 위봉산성은 유사시 주민들의 대피는 물론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보존하기 위해 세워졌다.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위봉폭포와 깊은 산 속 아름다움을 담아 고요하지만 정열적으로 피워내는 금낭화 군락지, 사람과 자연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살아가는 학동마을 등 길 위에서 만나는 풍광은 경이롭다. 고종시 마실길은 '깊은 고요를 머금은 아름다움'이 머무는 곳이다.
△ 구불구불 격변의 역사를 걷는 군산 구불길
일제 강점기 민족사에 있어 소설'탁류'는 중요한 역사적·문학적 결실이다. 격변하는 시대의 한복판에 있었던 군산. 일본식 가옥이었던 히로쓰 가옥이나 군산 세관, 일본은행 지점, 째보 선창 등은 그 시대를 추억하는 근대문화유적. 게다가 아름다워 비단강으로 불린 금강(錦江) 하류에 구불길이 위치한 덕분에 갈대꽃의 노래 위로 겨울이면 수많은 철새들이 군무를 추고, 임피·대야의 들길을 걷노라면 고향집의 정취로 가득한 시골마을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구불길은 또 다른 격변기를 맞고 있다. 재개발로 인해 영원히 자취를 감추는 해망동 달동네와 새만금 방조제는 군산의 과거와 현재다. 10년 뒤 군산은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10년 뒤 구불길의 모습은.
※ 신영철 씨는 여행작가로 활동 중인 네이버 파워블로거. 3년 연속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 돼 각종 신문, 잡지, 웹진 등에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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