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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삶 - 도전과 경쟁은 행복하게 한다

■ 쟁점 자료 분석하기

 

〈자료 1〉

 

소로 호숫가를 찾은 이들 중에는 낙원의 열매를 따기 위해 휴대폰 따위를 버릴 생각을 진지하게 하는 사람보다 사진 찍기에 여념 없는 사람이 더 많다. 우리가 열심히 석류즙을 짜려고 하는 것은 그것이 혈압을 낮춰주고 피부를 곱게 해주기를 바라서다. 그러나 실제 미국인들 중에 나무를 심고 텔레비전을 치워버릴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다. 검소한 삶을 보여주는 것들을 상징 차원에서 수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바람일 뿐 근본 차원에서 큰 변화를 이뤄내는 것은 아니다.

 

과연 우리가 이기적 위선자이기 때문에 온갖 이기로 가득한 가공의 상업 세계에 매몰되는 것일까? 행복을 전도하는 책은 하나같이 우리로 하여금 날것 그대로인 자본주의적 충동을 내려놓으라고 말한다. 또한 고소득자에게 높은 세금을 매기라고 외치며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삶에서 벗어나라고 한다. 온 세상이 거대한 하비트레일이 되기 전에 말이다. 하비트레일은 햄스터를 키우는 둥글둥글한 플라스틱 우리를 말한다. 에덴주의자들은 우리 인간이 '쾌락의 러닝머신' 위에서 끝없이 달리는 신세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우리는 가질수록 더 많이 가지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판에 박힌 조언은 "걱정마라, 씀씀이를 줄이면 된다."는 것이다. 아니면 우울증 치료제인 프로작에 손을 대든가.

 

이 책을 통해 나는 이와 반대되는 논증을 펼치는 뇌과학과 행동경제학의 최근 연구 성과를 끌어와 다소 무모해 보이는 일을 하고자 한다. 바로, 날이 선 채 팽팽하게 긴장하여 앞뒤 가리지 않는 경쟁이야말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는 주장이다. 사랑과 새로운 지식 그리고 부와 지위를 추구할 때, 우리는 말 그대로 바빠진다. 머리 회전이 빨라지며 도파민이 분비되고 열정에 불이 붙는다. 더 나아가 나는, 경쟁이 행복을 야기하는 인과관계가 우리 모두에게 본능처럼 내재돼 있다고 믿는다. 이런 주장에 놀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경쟁이 인간을 더 공정하게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더 훌륭하게 만들어준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뇌과학자들의 연구 보고에 따르면 사람은 도전하려고 할 때, 그것이 도박이든, 잔뜩 긴장한 채 예쁜 여학생에게 졸업식 파티의 파트너가 돼달라고 청하는 것이든, 좌측 전두엽 피질이 활성화된다. 그것은 '자연적인 고조 상태'다. 알파파와 산소 포화도가 높은 혈액이 뇌로 쏠린다. 오두막에 홀로 앉아 있다고 해서 같은 효과가 나는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경쟁 호르몬이 더 알고 싶어하는 우리의 욕구와 별개의 것이 될 수 없다. 어이없게도 경쟁을 비웃는 사람들이 앞다퉈 교육을 찬양하는 경우가 많다. 통나무 위에 앉아 있는 플라톤이라도 상상하는 듯하다. 나도 교육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하지만 욕망을 가진 사람은 배우고 또 배워 현명해지고자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어리석다. 자족하는 이는 더 현명해지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그저 세월의 때만 늘어날 뿐이다.

 

/러쉬!, 트드부크홀츠

 

〈자료 2〉

 

그는 이전의 사회를 자아와 타자 사이의 적대성 내지는 부정성을 근간으로 하는 사회(냉전·면역학·규율사회)로 정의하고, 현재는 부정성 대신 긍정성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일컫는다. 그는 이 새로운 사회를 '성과사회'라고 말하며 이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을 '성과주체'라고 이름 지었다. 성과사회는 '할 수 있다'는 것이 최상의 가치가 된 긍정의 사회다. 긍정의 가치는 쉬이 과잉돼서 과잉생산, 과잉가동, 과잉 커뮤니케이션 따위를 초래한다.

 

그렇다면 긍정성이 과잉된 사회에서 인간은 왜 신경증적 질병에 시달리게 되는 걸까. 그에 따르면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 개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울한 존재가 되기 싶다. 저자는 성과사회를 자본주의 시스템의 진화가 낳은 결과로 해석한다. 더 큰 성과를 올려서 더 큰 성공을 거두라고 부추기는 자본주의 사회는 개개인의 욕망을 부추겨 생산성의 극대화를 꾀한다. 성공을 추구하는 성과주체에 의해 자본주의에서 개인은 자발적 착취 양상을 띠게 된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은 자기 자신의 주인이자 주권자다. 그러나 지배적 존재가 사라진 대신 개인은 스스로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과다한 노동을 자발적으로 꾀하게 되고,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게 된 주체는 파괴적 자책과 자학을 하게 된다. 저자는 이런 상태에 도달한 개인을 자기 자신과의 전쟁 상태에 있다고 말하며, 현대사회의 우울증 환자를 내면화된 전쟁에서 부상을 입은 군인과 같다고 비유한다. 더불어 이전 시대와 비교해 이렇게 말한다. "규율사회의 부정성은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다. 반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

 

성과사회의 모습은 한국의 현실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예컨대 TV만 켜면 쉬이 볼 수 있는 '생각대로 하면 된다'고 노래를 부르는 광고, 고객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해주겠다는 광고 등을 떠올려보자.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를 강조하며 성공을 설교하는 자기계발서나 처세 관련 책은 또 어떤가.

 

저자는 긍정성 과잉 사회에 맞서는 것으로 사색하는 삶을 제시한다. 신경증에 대한 처방으로 심심함과 피로의 가치를 역설한 주장 또한 흥미롭다. 성과사회에서 피로란 떨쳐내거나 극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겨진다. '탈진의 피로'는 사람들을 개별화하는 고독한 피로다. 그러나 저자가 보기에 피로란 과잉활동의 욕망을 억제하고, 성과주의적 집착을 완화하는 활동이다. '부정적 힘의 피로'는 무장을 해제하고 태평함에 자리를 내준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태평한, 무위의 능력을 가진 피로를 통해 우리가 성공을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는 데서 벗어나 타자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병든 현대인에게 던지는 '피로'라는 처방, 신소윤 한겨레 신문 기자

 

■ 쟁점 논제

 

1. 논술 논제

 

자료 1, 자료 2를 비교, 대조하여 내용을 요약하여 서술한 뒤, '인간 정신의 진보'라는 측면에서 자료1, 자료2 둘 중 하나의 입장을 정해서 자신의 주장을 논해 보시오. (900자 내외) * 보낼 곳; yimza@daum.net

 

2. 면접 논제

 

러셀에 따르면 행복은 평범한 행복과 화려한 행복, 동물적 행복과 정신적 행복으로 구분된다. '평범한' 행복이란 모든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인 반면 '화려한' 행복은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에게만 허용되는 행복이다. 이런 구분에 귀하는 동의하는가? (면접은 주변 학생들과 해보기 바람)

 

■ 쟁점 자료 비판적 읽기

 

〈제시문 1〉

 

융이 말하는 에덴에 대한 기억이 우리 정신 속에 남아 있다고 해도, 진화된 우리 조상들은 우리에게 그 희열의 은총을 넘겨주지 않았다. 희열은 그리 쉽게 오는 것도, 자연스레 오는 것도 아니다. 동굴 속에 멍청한 미소를 띠고 앉아 있던 최기 호모 사피엔스들은 곰의 먹이가 됐거나 종족의 먹이가 됐을 것이다. 옛 라틴어 속담에 인간의 경쟁에 대해 말하는 '호모 호미니 루푸스'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와 같은 존재'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늑대에게 너무 부당한 얘기다. 늑대는 새끼를 키우거나 엘크 사냥을 할 때 서로 협력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들이 서로 돕는 건 자연과의 싸움을 벌일 때뿐이라는 사실이다. 늑대는 자신이 에덴에 있었던 시절에 대해 들은 바 없다. 에덴이라는 것을 그리워할 까닭이 없다. 그저 서로 협력하는 체제를 키워왔을 뿐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이처럼 초기 인류도 포식자로부터 도망쳐야 할 일이 많았다. 포식자는 때로 짐승이거나 다른 인간이거나 목숨을 앗아갈 눈폭풍, 호우 혹은 기근이기도 했다. 인정사정없는 이 지상의 삶과 포식자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경쟁을 하려면 다른 인간과 협력해야 했다. 결국 경쟁이 협력을 낳았다. 경쟁은 우리 인류를 비참의 늪으로 끌어당기는 족쇄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토대다.

 

〈제시문 2〉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그래서 이를테면 박테리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시대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는 적어도 항생제의 발명과 함께 종언을 고했다. 인플루엔자의 대대적 확산에 대한 공포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오늘날 더 이상 바이러스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면역학적 기술에 힘입어 이미 그 시대를 졸업했다. 21세기의 시작은 병리학적으로 볼 때 박테리아적이도 않고 바이러스적이지도 않으며, 오히려 신졍증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신경성 질환들, 이를테면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소진증후군 등이 21세기 초의 병리학적 상황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전염성 질병이 아니라 경색성 질병이며 면역학적 타자의 부정성이 아니라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한 질병이다. 따라서 타자의 부정성을 물리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면역학적 기술로는 결코 다스리지 않는다.

 

■ 쟁점 확대하기

 

1. 도전과 경쟁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가. 모든 것을 다 아는 척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 사람들이 많았던 고대와 중세시대에 살았다면 참으로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사실 알아야 할 분야도 그리 많지 않았다. 뉴턴 이전의 수학과 물리학은 아주 쉬웠다.

 

서기 1000년 전에 〈제퍼스〉 같은 퀴즈쇼가 있었다면 그리 영특하지 않은 친구도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었다. 경쟁을 기반으로 한 경제 체제가 등장한 이루 사람들은 더 많이 협력하고, 아이도 많이 낳고, 문자해득률도 높아졌다.

 

나. 미시적 경쟁은 한 개인이 다른 사람보다 더 앞서가려는 것이며, 더 나은 자신의 모습과 더 윤택한 삶을 구하는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사적 소유를 인정하는 자유기업 체제에서는 개인과 조직이 시간, 돈, 특권, 관심을 얻기 위한 경쟁을 권장한다. 경쟁은 개인 차원의 미시적 충동과 그것을 권장하는 경제적 사회체제, 둘 다를 가리키는 것이다.

 

2. 경쟁은 우리를 피로하게 한다.

 

가. 과잉 생산, 과잉 가동, 과잉 커뮤니케이션이 초래하는 긍정성의 폭력은 '바이러스적'이지 않다. 면역학은 그러한 폭력에 대해 아무런 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긍정성의 과잉에 대한 반발은 면역 저항이 아니라 소화 신경적 해소 내지 거부 반응으로 나타난다. 과다에 따른 소진, 피로, 질식 역시 면역 반응이 아니다. 그것은 모두 신경성 폭력 현상으로서 면역학적 부정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바이러스성 폭력에 해당되지 않는다.

 

나. 세계의 긍정화는 새로운 형태의 폭력을 낳는다. 새로운 폭력은 면역학적 타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에 내재하는 것이며, 바로 그러한 내재적 성격으로 인해 면역 저항을 유발하지 않는 것이다. 심리적 경색으로 이어지는 신경성 폭력은 내재성의 테러이다. 그것은 면역학적 의미에서 타자가 불러일으키는 공포와는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 쟁점 기출문제

 

1. 논술 : 2012학년도 시립대 수시 인문계열 모의 논술

 

〈논제 1〉 (나)의 내용을 요약한 뒤, 견해나 관점이 (나)와는 다른 것을 (가), (다), (라) 중에서 택일하여 그 차이점을 구체적으로 밝히시오.(600자 내외, 배점 30점)

 

〈논제 2〉 (마)의 도표1과 도표2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와 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을 나타낸 것이고, 도표3은 2009년과 2010년의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와 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을 가구의 월평균 소득 수준별로 나타낸 것이다. 이 도표들에서 2010년에 나타나는 변화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라)의 밑줄친 부분과 관련시켜 논하시오.(400자 내외, 배점 20점)

 

〈논제 3〉 '개인이나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상생보다는 경쟁을 우선시해야 한다.'라는 주장에 대한 찬반 입장을 정한 뒤 (가)~(라)를 모두 활용하여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시오.(1,000자 내외, 배점 50점)

 

쟁점 관련 도서

 

△러쉬(토드 부크홀츠 저, 청림출판)

 

△피로사회(한병철 저, 문학과지성사)

 

■ 쟁점 관련 영화

 

△불공평한 경쟁(에토르 스콜라)

 

△프레스티지(크리스토퍼 놀런)

 

쟁점 관련 영상

 

△EBS 지식채널e '경쟁력의 조건'

 

■ 학생글과 교사 총평

 

논제:〈자료1〉과 〈자료2〉의 논지를 통합적으로 고려하여, 〈자료3〉에서 은유적으로 표현된 '호랑이의 식욕'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시오.

 

(본보 2012년 7월 11일자 제시문에 대한 학생글)

 

1. 학생 논술문

 

 

 

〈자료1〉에서는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 휩쓸려 자신만의 속도를 잃어버린 채 기계적으로 살아가는 인간을 경계하며, 시류에 매몰되지 말고 주체적인 삶의 의미를 만들어 갈 것을 권유하고 있다.

 

한편 〈자료2〉는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자동차 운전은 과속이나 저속이 아닌 적정출력, 즉 경제속도를 유지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자료1〉과 〈자료2〉에서는 주변 상황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적정한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공통적으로 말하고자 한다.

 

〈자료3〉은 '호랑이의 식욕'을 현대의 기술이 생산해 낸 빠른 속도로 나타내고 있는데, 이러한 호랑이의 식욕이 고라니의 발굽을 짓밟는 장면은 현대의 문명이 인간성을 파괴하고 짓밟는 세태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반대하여 〈자료1〉과 〈자료2〉에서는 자신의 속도를 중시하면서 빠름에만 집착하는 호랑이의 식욕을 비판한다. 즉, 현대의 물질문명이 낳은 탐욕적이고 이기적인 가치관이 점점 중요시 되면서 전통적인 인간적 가치가 경시되고 있는 현대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문명의 이기에 대처하기 위해 첫 번째로, 관용의 정신을 향상시키는 방법이 있다. 관용이란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바탕으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인데, 이는 타자를 배려하지 않는 현대 물질 문명사회에 필요한 덕목이다.

 

두 번째로, 부동심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부동심이란 어느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정신적인 능력을 의미하는데, 세속적 가치관에 물들어 가치의 전도현상이 나타나는 현대사회에서는 욕망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자신을 절제할 수 있는 정신의 함양이 필요하다. 세 번째로, 중용적 태도를 지니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중용이란 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 것인데, 자료1의 '인생을 적정한 속도로 살아가는 것' 이나 자료2의 '경제속도'와 같은 개념역시 중용이라 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빠름만을 강조하는 현대의 물질 문명에 맞서서 전통적 가치의 습득을 통한 인간성의 회복을 꾀하여야 한다.

 

전범준(전주해성고 3학년)

 

2. 교사총평

 

△이해분석력

 

논제와 자료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다면 창의적인 생각을 담은 논술문을 절대 나올 수가 없다는 사실을 항상 유념하셔야 합니다.

 

이번 논제의 내용적 측면에서 세 가지 내용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첫째 〈자료1〉과 〈자료2〉를 통합적인 관점에서 연결시켜 논지를 도출해 내었는가, 둘째 앞에서 도출한 논지를 근거로 하여 〈자료3〉의 '호랑이의 식욕'을 적절히 해석하고 비판하였는가, 셋째 이러한 논리적 흐름에 따라 〈자료1〉의 대안을 도출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전반적으로 범준 학생은 이러한 세 요소를 파악한 것으로 보입니다.

 

△창의적 사고력

 

범준 학생에게 가장 칭찬하고 싶은 점은 대안을 도출할 때에 문제 상황의 외향적인 측면이 아닌 근본적인 측면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범준 학생이 제시한 대안 즉, '관용의 정신', '부동심', '중용적 태도'에서 문제 상황을 바라보는 깊고 넓은 안목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문제해결식 조직 구조를 해야 하는 내용은 문제의 상황을 야기한 근본적인 측면부터 성찰하는 시각을 유지하기 바랍니다. 단, 대안에 앞서 문제점 비판에도 이와 같은 근본적인 성찰이 선행되어야겠지요.

 

△문제해결력

 

문제점을 비판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논제에서는 문제의 원인과 대안 사이의 논리적 완결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하지만 범준 학생의 글을 문제점 비판 부분이 대안 부분에 비해 부실한 점이 아쉽습니다.

 

△문장력과 표현력

 

둘째 문단에서 '이에 반대하여'라는 접속어는 내용의 논리적 응집력을 떨어뜨립니다. 전반적으로 어휘의 선택이 적절한 편이지만 '전통적'은 내용 흐름상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조언을 덧붙이면, 글을 열 때 〈자료1〉과 〈자료2〉를 각각 서술하지 말고, 논제에 제시된 대로 '통합적'으로 묶어서 핵심을 집어내는 문장으로 시작하기 바랍니다. 예를 들면 '〈자료1〉과 〈자료2〉는 적절한 속도의 중요성을 다룬다.'와 같은 문장으로 단도직입적으로 시작하는 것이 훨씬 깔끔합니다.

 

강수연(전주해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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