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히 반겨주는 섬진강시인 생가 마을사람들 이야기꽃에 시름 훌훌
전북도 블로그 기자단
'산 사이 작은 들과 작은 강과 마을이 그만그만하게 가만히 있는 곳. 섬진강에 이르면, 삶에 지친 시린 가슴 속을 차오르는 그리움 같은 시인을 만날 수 있다. 끈끈하고 곰살스럽고 맛깔난 그의 글 속에서 우리는 잊었던 이웃들의 삶과 사랑과 회한이 교차하는 푸근한 정서를 맛볼 수 있으며 남녘 기행을 통해 인간의 마을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어느덧 섬진강 맑은 물자락에 몸 담근 자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늘로만 웅크려 들던 몸이 서늘한 바람에 진정이라도 된 듯 무작정 떠나고 싶어지는 날, 늦은 오후 섬진강 시인의 임실 진메마을 강 앞에 섰다. 김용택 시인의 산문집 '섬진강을 따라 가며 보라'를 십 육년만에 다시 펼쳐본다.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시인이 주는 메시지는 한결같다. 마을과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훌쩍 그 곳으로 떠나고 싶어지니 말이다.
세찬 강물소리가 마을을 뒤덮고 있다. 진메 사람들의 삶을 늘 간섭하고 때론 좌지우지 하던 강가에서 돋아난 숱한 이야기들이 지금은 그리 많지 않을 듯 하다. 강물소리만 들릴 뿐 마을이 조용하다. 밤 새워 비가 오는 날이면 골짜기에서 물이 내려오며 킁킁거리는 소리와 강 바닥 큰 돌들을 굴리는 소리에 꼭 물이 방문 앞까지 들이닥친 것처럼 잠자리가 불안했다. 이 날도 섬진강댐 수문을 열어 놓아 물이 불어 있었는데 밭에서 풀을 메던 어르신이 마을 앞 징검다리가 몇 일째 잠겨 강 건너 밭을 둘러보지 못하고 있다고 전한다.
마을어귀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손님을 부른다. 이 나무는 김용택 시인이 직접 심은거라고, 시인이 되기 전에 윗산 당산나무 밑에서 작은 느티나무를 한 그루 뽑아다 집 마당에 심었는데 어머니께서 큰 나무를 집안에 심으면 집이 치인다고 옮기라고 해서 지금의 강변길에 심게 되었다. 나무 아래는 매끄러운 바위가 의자노릇을 하고 있다, 이 정자나무는 2007년에 새나 돌에게 상을 주는 환경단체'풀꽃세상을위한모임'으로부터 '제13회 풀꽃상'을 수상했다.
시인의 집 마당에 서서 강을 바라보고 있으니 고향과 자연을 사랑했던 시인의 소박한 마음이 전해져 와 금방이라도 시가 술술 써질 것만 같다. 마당 한 켠에는 그런 시인의 마음을 잘 담은 '농부와 시인' 시비가 방문객에게 인사를 건넨다.
마을 모정에 앉아 잠시 강바람을 쐬고 있는데, 골목집 벽에 걸린 그림에 시선이 머문다. 노랗게 익은 벼를 베고 있는 어머니를 향해 주전자를 들고 달려오는 소년의 힘찬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직접 만든 예쁜 문패를 보고 있는데 마침 들에 나갔다가 들어오시는 김도수씨를 만났다. 그림은 큰 딸 가애가 그린 것이라고. 할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김도수씨는 고향집을 12년 만에 되찾아 주말마다 고향을 찾아 가족들과 함께 밭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김도수씨 또한 책'섬진강 푸른 물에 징.검.다.리' 를 냈다. 그는 약속도 없이 방문한 불청객에게 귀한 책을 선물했다.
요즘 진메마을은 도보여행하는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있다. 진메마을, 천담마을, 구담마을, 임실 장구목까지 약 8.5km 길이 이어진다. 이 길은 섬진강 종주 자전거길로도 조성돼 있어 자전거 여행지로도 좋다.
시인의 일터였던 덕치초교로 발길을 옮긴다. 학교에 산다는 아이들에게 "김용택 선생님 아니?" 물었더니, "아줌마가 우리 선생님을 어떻게 아세요?" 하고 되레 묻는다. 운동장 한 켠에는 시골의 순박한 아이들의 심성이 잘 담긴 시, '콩 너는 죽었다' 시비가 아이들의 자랑처럼 자리하고 있다.
덕치 초등학교에서 바라보니 '생각하면 금방 눈물이 고여 오는' 시인의 마을이 아득하게 보인다. 강으로 맺어진 인연은 강이 변하지 않고 흐르는 이상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예전이나 지금이나 모두가 하나 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기에 사람도 시도 변함없는 것이겠지.
덕치초교에서 내려와 아슬아슬하게 물위로 몸을 내민 돌다리에 가 보기로 한다. 가까이 가 보니 물 흐르는 속도에 놀라 움찔한다. 한 동안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고 앉아 있으니 '세월은 유수와 같다' 말이 떠오른다. 누구에게는 삶터가 되고, 누구에게는 시가 되고, 누구에게는 회환의 세월이 되었을 강. 올 가을 섬진강 시인의 마을에서 여름 내내 앓았던 시름을 강물에 흘려보내 보는 건 어떨까.
※ 김병희씨는 2001년부터 4년동안 아이군산 취재로 활동했으며 현재 한기장복지재단 전라북도 분사무소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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