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음주단속 현장 가보니 (상) 실랑이 백태 - 배째라식 욕설 빈번, 동승자 몰려와 항의도…적발 운전자 잘못 뉘우치기보다는 '재수 탓'
연말이 되면서 도심 곳곳이 불야성이다. 송년모임을 위해 나온 많은 사람들은 늦은 시간까지 술자리를 즐긴다. 때문에 음주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매년 전북지역에서는 1만 여명이 술을 마신 채 운전대를 잡았다가 경찰에 적발된다. 지속적인 경찰의 단속에도 음주운전은 쉽사리 줄어들지 않는다. 연말 느슨해진 사회분위기를 틈타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이는 음주운전의 실태와 폐해를 두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저기요 선생님, 이러지 마시고 제발 일어나세요.", "경찰관 선생님, 한번만 봐주세요. 이번에 걸리면 절대 안돼요. 제발요…."
지난 17일 밤 10시. 전주시 우아동 동부대로 워싱턴 웨딩홀 앞에 세워진 경찰 음주단속 버스 안에서 한 운전자와 경찰관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경찰관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싹싹 빌고 있는 운전자 김모씨(60·전주 송천동·건축자재 운송업)는 "제발 한번만 봐달라"며 애원하고, 경찰은 김씨에게 일어나서 측정기를 불어보라고 설득 중이다. 30여분 동안 계속된 실랑이 끝에 김씨가 음주측정기 앞에 섰다.
"호흡 측정은 1차례만 합니다. 잘 부세요." 김씨는 체념한 듯 음주측정기에 입을 데고 바람을 불어넣는다. 측정기 수치가 거침없이 올라가기 시작하고, 잠시 후 '삐' 소리와 함께 멈춘 측정기에는 혈중알코올농도 0.112%가 나왔다. 면허취소 수치다.
김씨는 이날 단속까지 포함해 음주운전으로 총 3차례 적발됐다. 김씨는 "운전을 해서 먹고 사는데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할지…, 이놈의 술이 원수"라며 한탄을 늘어놓았다.
버스 안에서 김씨에 대한 단속이 이뤄지고 있는 사이 음주단속을 벌이던 한 경찰관이 급하게 뛰어간다. 단속을 눈치 챈 운전자가 도로가에 차를 주차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현장을 벗어나려 했던 것.
하지만 이 운전자는 얼마 못가 경찰관에게 붙들려 버스에 올라와 음주측정기를 불어야 했다. 결과는 면허 정지 수치인 혈중알코올농도 0.066%가 나왔다. 운전자 이모씨(42)는 "친구들과 소주 3잔을 마시고, 집으로 가기 위해 대리운전을 불렀는데, 기사가 오지 않아 차를 몰았다"고 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전주 덕진경찰서 교통관리계 나애란 팀장(여·경위)은 "음주단속을 하다보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차를 도로에 세워두고 도망가는 일은 다반사"라고 했다. 나 팀장은 "그래도 혼자서 운전하다 적발된 경우는 단속에 순순히 응하는데, 동승자가 있으면 운전자에게 미안해서 그런지 동승자들이 경찰에게 몰려와 항의를 하고, 시비를 거는 등 단속에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단속을 하다보면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고 했다. 음주운전자 뿐 아니라 단속이 벌어지는 현장 인근의 상인들도 대놓고 "재수 없다"며 경찰에게 막말을 한다.
이날 단속에는 7명의 경찰관이 투입됐다. 전·의경들이 경비상황에 투입되다 보니 평상시와는 달리 지원을 받지 못했다. 나 팀장은 골목길 도주차량을, 5명의 경찰관은 신호봉을 들고 3차선 도로 위에서, 나머지 1명의 경찰관은 도주차량을 쫓기 위해 경찰차에서 대기했다. 그러나 이 숫자로는 모든 차량을 통제하기가 버거워보였다.
앞서 9시 10분께는 왠지 모르게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50대 남성이 버스에 올랐다. 이 남성은 별다른 항변 없이 경찰의 음주측정에 임했다. 다행히 혈중알코올농도 0.035%가 나왔다. 훈방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경찰의 신원조회결과, 이 남성은 탈세를 한 혐의로 지난해 수배가 내려진 상태였다.
최경식 교통관리계장(경감)은 "단속 때 가장 힘든 점은 매서운 추위와 시비를 걸어오는 취객들의 행태"라며 "일부 운전자는 술을 마신 것에 대해 잘못을 뉘우치기보다 '재수 없게 걸렸다'며 바닥에 침을 뱉기도 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 자괴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날 영하 1도, 체감기온 영하 5도의 매서운 추위 속에 오후 9시부터 11시까지 두 시간 동안 진행된 음주단속에 전주시내에서만 모두 10명의 음주운전자가 적발됐다. 이중 절반은 면허취소를 당했다. 전북지역 전체적으로는 28명이 음주상태로 운전대를 잡았다가 철퇴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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