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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이야기

▲ 김희선

편지를 직접 써본지가 하도 오래전의 일이라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내가 편지를 처음 써본 것은 강산이 여섯 번을 변하고도 남았을 60여 년 전의 일로 일찍이 한글을 익혀 고향마을에서는 신동(?)이라는 유명세를 타던 때라 이웃 어르신의 부탁으로 군대에 간 아들에게서 온 편지를 읽어 드리고 불러주시는 대로 답장을 대신 써준 것을 시작으로 마을 형님들의 연애편지를 대신 써주는 대필전문가로 명성을 날리며 문학가의 기틀을 다진 셈이지만 내 이름으로 받아본 첫 편지는 군대에 간 6촌 형님이 보내주신 군사우편이었다.

 

나이 차가 많은 관계로 대하기가 어려워서 평소에는 만나도 어색한 인사나 나누는 정도였는데 얼굴을 안보고 글로만 쓰는 편지에는 구구절절 무슨 말을 해도 거리낄게 없었기에 많은 얘기들을 주고받았는데 형님이 군대생활을 하는 3년 동안 받은 편지가 무려 1천 여 통에 달했고 나 또한 비슷한 분량의 답장을 보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반백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아련한 추억만 남아있을 뿐이다.

 

3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매일 안부를 주고받으며 교분을 쌓다보니 새록새록 정이 들어서 형님이 제대를 하신 뒤로는 끈끈한 혈육의 정을 나누며 친분관계를 유지해 오던 중에 형님께서 삶의 터전을 전주로 옮긴 후로는 문중 시제 때나 한 두 번씩 만나 회포를 풀곤 했는데 무슨 이유인지 문중의 대소사라면 빠지지 않고 참석을 하시던 형님께서 갑자기 연락을 끊어버리는 바람에 10년 넘게 안부조차 모르는 채 살고 있으니 무심하고 각박한 세태가 원망스럽다.

 

예전에는 너, 나 할 것 없이 친구들이나 친척들에게 문안편지를 써 보내고 연말연시면 연하장을 보내는 일이 생활의 한 부분이었는데 집집마다 전화가 보급되면서 소통방식도 편지에서 전화통화로 바뀌었고 컴퓨터가 등장하고부터는 전자우편인 이메일이 소통수단으로 각광을 받더니 휴대폰과 스마트폰이 중요한 통신수단으로 자리 잡아가면서 손 편지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어버리고 문자메시지나 카카오 톡이 대세를 이루고 있으니 격세지감을 금할 수 없다.

 

편지를 한자로는 ‘便紙’, ‘片紙’로 표기하는데 종이에 안부나 소식을 간단하게 적어 보내는 서신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종이가 없던 시대에는 대쪽이나 나무판에 글씨를 써 보냈기에 옛날에는 편지를 서간(書簡)이나 간찰(簡札)이라고도 했고 편지는 대쪽의 의미를 갖는 간(簡)에서 유래되었으며 이것이 일반화된 것이 오늘날의 편지라고 한다. 편지는 글을 써서 보내는 문자활동의 하나로서 영어의 ‘lettr’가 문자라는 의미 외에 편지라는 뜻도 갖고 있음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라 할 수 있겠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헤매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것을 헤매인 마음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노벨문학상 후보작가로 해마다 한국인들에게 기대와 실망을 번갈아 안겨주고 있는 우리고장 전북출신인 고은 선생의 ‘가을 편지’라는 작품을 음미하다 보면 까맣게 잊고 지냈던 친구들에게 불현듯 편지를 쓰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를 일이다.

 

온 누리에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사색하기 좋은 계절, 이 가을이 가기 전에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사연이 담긴 편지 한 통이라도 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김희선 수필가는 정읍문화원 사무국장, 한국문인협회 정읍지부장, 한국예총 정읍지회장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농촌문학회 회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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