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부터 써온 작품 총괄
“한정된 목숨 위에/ 쓰고/ 지우고/ 다시 새기는/ 당신의 노래가/ 사랑이 되게/ 내일이 되게 하라.”
우리나라 대표적 인권변호사로 손꼽히는 한승헌(82) 전 감사원장이 지난 49년 전에 낸 시집 <노숙> 에 수록된 ‘서시’의 일부다. 격랑의 시대를 살아오면서 민중과 함께 해온 삶의 역정이 집약된 구절이다. 노숙>
“불행하더라도 인간의 길을 걸어갈 것을 다짐하며 써 온 작품이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고단한 생명들에게 손이라도 한 번 더 흔들어 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세번째 시집 <하얀 목소리> (시정시학)을 펴냈다. 하얀>
대학 시절에 신석정 선생의 ‘비행기태우기’ 시평에 고무되어 시화전도 열고 시집도 냈다는 시인은 문학과 거리가 먼 본업과 게으름 탓으로 시와 소원하게 세월을 보내다가 전작에 실린 작품을 추리고 그동안 여러 문학지와 일간지에 쓴 시편을 함께 묶어 펴냈다.
“이 시집을 내게 된 것은 하나의 ‘정리 욕구’에서 나온 작업”이라며 “부질없는 늑장에 부끄러움을 숨길 수 없다”고 시인의 말에서 밝혔으나 시인은 20대 젊은 시절부터 써온 작품의 총괄이어서 애정이 더 간단다.
“-또 오셨군요./ -할 수 없지요./ 슬픈 산하에 잠기는 하얀 목소리/ 오늘 나는 부끄러운 조객(弔客)인 것을…”
표제시 ‘하얀 목소리’에서는 비극적인 역사의 되풀이를 한탄하면서도 그저 애도만 할 뿐 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함을 가슴 아파 한다.
임헌영 문학평론가는 “한승헌의 시는 역사와 민중으로 다가서기 위한 정서적인 자기 내성이자 다짐이며 투지의 단련 과정이었다”며 “그가 이룩한 민주화와 통일운동의 원동력은 바로 이 시기의 시집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 셈이다”고 해설에서 밝혔다. 그러면서 변호사, 수필가로서의 명성에다 이제는 시인이란 칭호를 하나 더 붙여주는 게 도리다고 말했다.
아호는 산민(山民). 진안 출생으로 전주고와 전북대학교 정치학과를 나왔다. 고등고시 제8회 사법과에 합격 후 군법무관·검사로 복무하다 1965년에 변호사가 됐으며 군사독재 치하에서 박해받는 양심수와 시국사범을 변호했다. 반공법 위반 필화사건과 ‘김대중내란음모사건’으로 두 차례에 걸쳐 21개월간 옥살이를 하며 1976에서 1983년까지 변호사 자격이 박탈되기도 했다.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1987년), 방송위원회 위원.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 위원, 언론중재위원회 위원,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장, 감사원, SBS시청자위원회 위원장,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위원장, 전북대학교 법과대학·가천대학교 법과대학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시집 <인간귀향> , <노숙> 과 <정보화시대의 저작권> , <분단시대의 법정> , <위장시대의 증언> , <재판으로 본 한국현대사> , <한승헌 변호사 변론사건 실록> (전7권), <권력과 필화> 등 40여 권이 있다. 인제인성대상, 중앙대 언론문화상, 한국인권문제연구소(재미) 인권상, 임창순 학술상, 단재상 등을 받았다. 권력과> 한승헌> 재판으로> 위장시대의> 분단시대의> 정보화시대의> 노숙> 인간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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