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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시어들

권오표 시집 〈너무 멀지 않게〉

 

권오표 시인이 20년 만에 낸 두 번째 시집 <너무 멀지 않게> (모악)에는 이제 그만 잊고자 하는 것들을 마지막으로 돌아보는 장면들로 가득하다. 얼핏 쓸쓸한 풍경 같지만, 시인은 우리 삶의 뒤편에 다채롭고 풍부한 사연들이 있다는 걸 새삼 깨우쳐준다. 따뜻하고 든든하다.

 

이 시집의 특징은 미니멀리즘이다. 사유나 이미지를 더해가는 게 주류를 이루는 세태 속에서 덜어냄의 언어와 정서는 새로운 시적 미학을 창조한다. 하고 싶은 말을 내뱉지 않고 머금을 때, 시는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다는 걸 시인은 알고 있다. 시인은 내면에 많은 말을 품고 산다. 이를테면 다음 시가 그렇다.

 

바람도 없는데 울 밖의 오동잎이 풍경(風磬)처럼 무심히 지네// 시든 줄기를 이랑으로 젖히고 두둑에 호미를 대면 고구마들이 올챙이 떼마냥 딸려 나오지// 강가에 나가 보니 물속의 조약돌이 모두 퍼렇게 소름 돋아 있네// 누구나 가슴 속에 서늘한 돌멩이 하나쯤은 품고 사는 법// 어제는 동네에서 상여가 나갔네// 아무도 울지 않았네 ( ‘한로’ 전문)

 

이처럼 시인이 자기 정서와 언어를 최소화하는 지점에서 독자는 감성의 최대치에 도달한다. 시인은 전적으로 독자를 믿는다. 시인이 독자를 믿고 말을 감출 때, 독자는 날카로운 눈매로 감추어진 진실을 포착해낸다.

 

문신 문학평론가는 해설을 통해 “깨끗하고 말쑥한 의미로 사용되는 정갈함은 그의 시에서 투명한 감각 지각을 확보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며 “이 투명한 세계에서 권오표 시인은 미묘하게 반짝이는 삶의 무늬를 솜씨 좋게 벗겨내는 것으로 시작(詩作)을 삼는다”고 밝혔다.

 

권오표 시인은 1950년 전북 순창에서 태어나 원광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전주 완산고에서 30여 년간 아이들을 가르쳤다. 1992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했고, 시집으로 <여수일지>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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