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사신 소준관이 어깨를 펴고 의자왕을 보았다. 청에 모인 백제 무장, 관리들의 시선이 모여졌다. 이곳은 전장(戰場)이나 같다. 신라 서부의 요지(要地)로 영토의 3할을 차지하고 있던 대야주를 백제가 정벌한 상황이다. 의자왕이 사신을 이곳으로 오도록 허용한 이유도 대백제(大百濟)의 위용을 과시하려는 목적도 있다.
소준관이 입을 열었다.
“대막리지께서 고구려와 백제의 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고 신라와 당을 멸망시킬 계책을 논의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오, 과연.”
의자왕이 상반신을 기울이며 머리를 끄덕였다. 백제와 고구려는 동맹관계인 것이다. 의자왕이 생기 띈 얼굴로 소준관을 보았다.
“과인도 적극 협력할 작정이야. 이제 그대도 보았다시피 신라 서방(西方)의 대야주가 백제령이 되었다. 42개 성을 공취했으니 신라는 왼쪽 팔을 잃어버린 병신 꼴이다.”
“오, 적임자가 있지.”
의자왕이 정색하고 말을 이었다.
“담로 연남군에서 당군(唐軍)과 여러 번 접전을 했고 본국으로 돌아와서 이번에 대공을 세운 무장이 있어.”
의자왕의 시선이 단하의 계백에게로 옮겨졌다.
“한솔 계백이야.”
계백이 머리만 숙였을 때 의자왕이 말했다.
“한솔, 네가 막리지와 함께 고구려에 가라.”
“예, 대왕.”
의자왕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대막리지의 제의에 적극 찬성이야. 과인도 진즉부터 그것을 논의하고 싶었지만 선왕(先王)이 소극적이었는데 잘 되었다.”
“과연 명군(名君)이시오.”
50대의 소준관은 달변이었다. 바로 의자왕의 말 뒤를 잇는다.
“따라서 대막리지께서는 계책을 논의할 백제 무장을 고구려로 보내주시기를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네가 대백제의 사신이다.”
“예, 대왕.”
“부사(副 )로 사도부 장덕 유만을 데려가도록 하고 무장(武將)은 누가 좋겠느냐?”
“예, 나솔. 화청을 부장(副將)으로 삼고 싶습니다.”
한인(漢人) 출신의 투항무장 화청은 이번에 장덕에서 승진하여 6품급 나솔이 되었다. 의자왕이 머리를 끄덕였다.
“좋다. 사흘 후에 막리지와 함께 떠나도록 하라. 나도 그동안에 대막리지께 보낼 밀서를 준비하겠다.”
그날 저녁, 계백은 의자왕의 침전으로 불려 갔다. 죽은 김품석이 사용하던 침전에는 의자왕과 병관좌평 성충, 성충의 동생이며 남방방령인 윤충, 내신좌평 목부까지 넷이 모여 있었다. 계백이 말석에 꿇어앉았을 때 의자왕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너를 고구려로 보내는 이유를 말해주마.”
계백이 숨을 죽였고 의자왕이 말을 이었다.
“연개소문은 기(氣)가 센 무장이다. 당(唐)과의 결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데다 용병술과 지도력도 뛰어난 인물이다.”
의자왕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왕과 대신들까지 수백명을 한명도 살리지 않고 주살한 자야. 왕의 시체를 토막 내어서 전국에 떼어 보냈다던가?
“…….”
“네가 가서 대백제의 기(氣)를 보여라. 네 무용이 고구려에도 알려졌을테니 당당하게 연개소문에게 맞서서 전략을 논해라.”
“예, 대왕.”
“당(唐)과의 결전에 대백제도 군사를 내놓는다고 해라. 담로가 이미 널려있으니 고구려보다 대백제가 당의 영토에 우선권이 있지.”
“예, 대왕.”
계백은 의자왕의 뜻을 알았다. 백제, 고구려 연합군은 당을 두조각으로 낸다. 신라는 염두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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