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발표
“50~70대 남성·키 161∼170.1㎝, 7세기 초중반 사망 추정”
익산 쌍릉이 백제 무왕(재위 600∼641년)의 무덤일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이상준)는 18일 지난 4월 쌍릉(대왕릉·사적 제87호)에서 발견된 인골 조각 102개를 분석한 결과 “인골 주인은 50~70대 노년층 남성, 키는 161㎝~170.1㎝, 보정연대는 서기 620~659년으로 산출됐다”고 밝혔다.
그동안 쌍릉은 백제 시대 말기의 왕릉급 무덤이며 규모가 큰 대왕릉을 서동 설화의 주인공인 무왕의 무덤으로 보는 학설이 유력했는데, 이번 결과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부여문화재연구소는 발견된 인골 조각이 백제 무왕의 능인지를 결정짓는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고고학과 법의인류학, 유전학, 생화학, 암석학, 임산공학 등 관련 전문가들을 총동원해 인골의 성별, 키, 식습관, 질환, 사망시점, 석실 석재의 산지, 목관재의 수종 등을 정밀 분석했다.
인골을 분석한 결과, 성별은 남성인 것으로 조사됐다. 팔꿈치 뼈의 각도(위팔뼈 안쪽위관절융기 돌출양상), 목말뼈(발목뼈 중 하나)의 크기, 넙다리뼈 무릎 부위(먼쪽 뼈 부위)의 너비가 남성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또 넙다리뼈의 최대 길이를 추정해 산출한 결과 키는 161㎝에서 최대 170.1㎝로 분석됐다. 훨씬 후세대에 속하는 19세기 조선시대 성인 남성의 평균 키가 161.1㎝인 것을 고려한다면 비교적 큰 키이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무왕의 모습은 ‘풍채가 훌륭하고, 뜻이 호방하며, 기상이 걸출하다’고 되어있다.
나이는 최소 50대 이상의 60~70대 노년층으로 분석됐다. 가속 질량분석기를 이용한 정강뼈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 보정연대가 서기 620~659년으로 산출돼, 인골 주인은 7세기 초중반에 사망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밖에 석실의 석재는 약 9㎞ 떨어진 함열읍에서 채석한 것으로 추정됐으며, 수령이 400년 이상으로 알려진 관재(棺材)는 7세기 전반 이전에 벌목된 것을 가공한 것으로 분석됐다. 또 목관은 최고급 건축·가구재인 금송으로 제작했으며, 이번에 발견된 유골함은 잣나무류의 판자로 만들었다.
부여문화재연구소는 “이번 연구를 바탕으로 익산 쌍릉의 성격과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규명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며 “아울러 익산지역 백제왕도 핵심유적 보존관리 사업을 통해 백제 왕도의 역사성 회복을 지속해서 추진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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