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산(敵産) 가옥을 아십니까?
일제 강점기 일본 소유였던 일본식 집을 우리는 이렇게 부른다. 적의 재산이었던 집이라는 뜻이다. 역사적으로는 적산 가옥, 건축적으로는 일본식 집. 하나의 집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은 너무도 다르다. 일제 강점기 적산 가옥은 우리나라의 집을 어떻게 바꿔 놓았을까? 일본인 건축가 요네다 사치코 씨와 한국인 건축가 임형남 씨가 함께 군산과 인천의 적산가옥을 찾아가 그곳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본다.
적산가옥을 바라보는 한·일 두 건축가의 마음
“저는 일본식 집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다들 적산가옥이라고 해서 알아보니까 적의 산이었던 집이라는 거예요, 일본이 식민지를 했다는 것이 담긴 말이라 복잡했죠.”
- 일본인 건축가 요네다 사치코
“우리가 원해서 만든 집이 아니고, 일본이 강제로 이식한 집이잖아요. 그 역사가 있으니까 마음이 복잡했죠.”
- 한국인 건축가 임형남
군산은 쌀 수탈을 위해 일본이 만든 계획도시다. 그래서 지금도 170여 채의 적산가옥이 남아있다. 건축가가 역사가는 아니지만, 일본인 포목상이었던 히로스 가옥, 일본식 사찰 동국사, 사가와 가옥을 보며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입장에서 마음이 복잡해진다.
80대 노부부 이경산-윤여삼 부부가 53년 동안 살아온 집
“왜 일본 집을 원형 그대 사냐고 그래, 쓸데없는 오해 안 받으려고 3.1절, 8.15 때가 되면 하루 전에 태극기 달고 제일 늦게 내려요. 여태껏 그렇게 해왔어요”
- 이경산 (84, 군산)
군산은 쌀 수탈을 위해 일본이 만든 계획도시다. 그래서 지금도 170여 채의 적산가옥이 남아있다. 하지만 적산가옥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알기에, 선뜻 집 공개를 하려는 이가 없었다. 흔쾌히 집 구경을 허락한 윤여삼, 이경산 부부. 미곡창고주식회사 사택지였던 일본식 집을 산 것은 1967년. 당시만 해도 군산에는 적산가옥이 많았고, 가격도 괜찮았다. 그렇게 부부의 신혼 살림집이 된 이 일본식 집은 53년간 두 아이를 낳고 키운 곳이자,
가족들을 품어준 집이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왜 적산가옥에 사냐는 따지듯 묻는다.
적산가옥은 우리의 집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식민지는 정치적 지배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한옥이 전부였던 우리나라에 일본의 주거문화가 본격적으로 이식된다. 직선의 처마선, 좁고 긴 복도, 이층집, 일본식 집은 낯설고 생소한 집이었다. 인천의 한 건물은 한옥과 양옥 사이의 과도기적 가옥 형태를 보여준다. 1919년에 지어진 한옥 위에 올린 이 집은 1930년에 지어진 일본식 상가에 사용된 한옥 대들보, 한옥과 일본식 집이 섞여 있다. 어설프지만 많은 건축가가 이 집에 주목하는 것은 한옥과 양옥 사이의 과도기적 가옥 형태 때문이다. 일본 목수에게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운 것 같은 조선 목수의 흔적도 곳곳에 남아있다.
적산가옥을 역사의 집으로 만들다 (도다 이코쿠, 류은규 부부)
인천 중구 관동에는 일본식 연립주택 나가야가 있다. 하나의 보에 여러 채의 집이 연결된 독특한 구조로 되어 있다. 이곳에서 갤러리를 하는 도다 이코쿠, 류은규 씨 부부다. 일본인이라는 것을 알고 적산가옥의 의미를 아냐며 항의도 많이 받았다. 지난 6년 동안 부부는 지속으로 일본침략, 항일 독립운동 관련 전시를 정기적으로 해오고 있다. 적산가옥이 아니라 한일 관계사를 이해하는 역사적 집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에 들어온 적산가옥의 이식된 역사와 그 후 한국 가옥의 변화를 다룬 <건축탐구-집> ‘낯선:집, 적산가옥에 살다’ 편은 오는 6월 4일 화요일 밤 10시 45분, EBS1에서 방영된다. 건축탐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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