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시골길, 하얀 데이지꽃이 바람결을 따라 하늘거리며 반겨주고 너른 잔디밭이 펼쳐진 곳, 간혹 들려오는 풍경소리와 산새 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복잡한 마음이 평온해지고 그저 가만히 서 있는 스스로를 볼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 있다. 익산시 낭산면에 위치한 연화산방이라는 교육농장이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머리를 정갈하게 쪽지어 올리신 모습의 대표님은 자신을 머슴이라 지칭하신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호칭이라 의아스러웠으나 이내 곧 왜 그런지 알게 되었다.
익산의 청년농촌활동가로 활동 중인 필자는 장애인이나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사회적농업 활성화지원사업을 운영 중인 농가를 지원하기 위해 연화산방을 드나들기 시작했는데 첫 만남에서의 대표님은 말 그대로 차 교육을 하시는 원장님으로 차분하고 조용한 어투에 조금만 대화하면 저절로 집중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으신 분이었다. 도시 사람과 시골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꿈꾸며 지난 20여 년간 10월 초만 되면 향기로운 가을 찻자리라는 행사를 운영해오셨으며 2021년 익산시특수교육지원청과 연계하여 장애아동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더 많은 장애인이나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사회적농업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본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여기서 사회적농업이란 농업의 공익적인 역할을 바탕으로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며 돌봄이나 교육, 일자리를 통해 사회 참여기회를 제공하여 정서적인 안정을 도모해주기 위한 활동을 말한다.
발달장애 시설 이용자 대상으로 프로그램 운영하는 날. 야외 교육장에서 장화와 펑퍼짐한 일바지, 챙 넓은 모자를 쓰고 땀을 뻘뻘 흘리시며 교육장 정리하다가 해맑게 반겨주시는 모습에 왜 자신을 머슴이라 하셨는지 이해가 되었다. 곧 시설에서 차량이 도착했고 각기 다른 장애를 가지신 분들께서 인솔자에 의해 교육장으로 들어오셨다. 더러는 소리도 지르시고 걸음이 어색한 분도 계셨으며 전동휠체어를 타고 있는 분도 계셨다.
10여 명 되는 장애인들과 서로 공손히 인사를 하고 기분을 물어보자 너나 할 것 없이 너무 좋다고 한다. 농장 주변을 찬찬히 산책하며 피어있는 꽃을 만나고 나무들을 만나면서 걸으니 활동하기 위한 텃밭이 나온다. 장애인분들이 앞으로 직접 가꾸어갈 텃밭이다. 느리지만 안내에 따라 풀도 뽑고 다음에 와서 작물을 심을 준비를 하기 위해 새로운 흙도 채워 넣는다. 앞으로 이곳에 심을 작물이 무엇이 좋을지 같이 고민도 하며 대화하는데 이미 수확이라도 한 듯 넉넉한 표정에 필자는 왠지 모르게 순간 뭉클해지기도 했다.
다음 교육 진행을 위해 이동하다 보니 향긋한 꽃향기가 바람을 따라 코끝을 스치는데 그 순간 이동 중이던 분들을 멈춰 세우고 눈을 감도록 했다. 눈을 감자 장애인분들은 동시에 탄성을 부르며 아카시아 향기에 집중하게 되었고 이내 더욱 집중하자 새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이러한 꿈같은 순간이 필요하리라 생각해봤다.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화려하고 소란스러운 이 시대에 이렇게 잠깐이나마 눈감고 차분히 돌아볼 시간을 얼마나 갖고 살아갈까.
마지막은 어버이날을 맞아 카네이션 화분도 만들며 작은 팻말에 마음을 담는 시간을 가졌는데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건강하세요” 등등 사랑으로 넘쳐났다.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이곳에 함께 있는 순간. 산에 피나 들에 피나, 이 순간 우린 모두 다 꽃이었다.
/박넝쿨 농촌기업브랜드 신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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