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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전북의 문학 명소] 12. 계절마다 한 권의 책이 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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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바래봉 철쭉과 뱀사골(출처: 남원시청 홈페이지), 완주 비비정, 완주 위봉사 목어.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춘정이 활짝 피어나는 봄날

사람의 심정에 작은 불꽃을 피워 올리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문학은 봄날의 햇살과 같다. 문학은 얼어붙은 인간 감정에 따뜻한 피가 돌게 하고, 새로운 박동으로 생명의 탄생을 예고한다. 그래서 예부터 많은 시인이 춘정(春情)을 노래해오지 않았던가! 완주, 임실, 남원, 순창의 문학 명소 중에서 봄날에 거닐어 보고 싶은 곳이 있다. 그곳에 갈 때면 옆구리에 시집이나 소설책 한 권 정도는 끼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지리산 바래봉은 봄의 전령사 철쭉꽃으로 유명하다. 군락을 이룬 철쭉꽃이 만개하는 5월이 되면, 바래봉은 온통 연분홍으로 물든다. 누군가는 철쭉꽃 앞에서 가슴 설레는 사랑의 향기를 맡기도 하지만, 우리 역사는 처절했던 피비린내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래서 지리산 바래봉은 많은 작가에게 문학적 영감을 주는 장소인지도 모른다. 우미자·안도현·고정희·김광원 등 많은 시인이 매년 봄 철쭉이 흐드러진 지리산 바래봉에서 붉은 언어의 시를 써냈다.

지리산 바래봉에서 철쭉꽃의 향연을 감상했다면, 이제는 남원 광한루원에 늘어진 능수버들의 싱그러운 연두의 봄날을 거닐어도 좋다. 광한루원은 판소리 <춘향가>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남원 부사의 아들 이몽룡이 봄밤의 정취를 감상하기 위해 광한루에 나왔다가 그네를 뛰는 춘향 모습에 넋을 잃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이팔청춘의 첫사랑이 그렇게 광한루원의 봄날 저녁을 환하게 밝혔다. 복효근 시인의 시 「춘향의 노래」라든가 서정주 시인의 「추천사」 등에서 봄날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봄날의 정취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은 흐드러진 벚꽃 아래일 것이다. 임실군 강진을 지나 덕치를 흘러가는 섬진강을 따라 4월 벚꽃은 피어난다. 그리고 섬진강 그 맑은 강물 같은 시심으로 덕치초등학교 운동장 가에도 벚꽃이 핀다. 이 벚꽃 그늘에서 김용택 시인이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래서일까? 벚꽃 피는 날, 덕치초등학교의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인이 된다.

봄날 거닐어 보고 싶은 문학 명소에는 강천산과 모악산도 있다. 산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문학적 영감을 주지만, 강천산과 모악산은 특히 봄날의 정취가 좋다. 강천산이 봄날의 연두를 보여준다면, 모악산은 진달래꽃의 연분홍으로 설레게 한다. 겨우내 숨죽이고 있던 만물이 봄날을 맞아 그렇게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봄날, 연두의 햇살을 받으며 강천산 등산로를 맨발로 걷다 보면 눈에 보이는 것과 귀에 잡히는 것들이 마음에서 자그마한 연못을 이룬다. 그 연못에 살랑 바람이 일면 그것이 바로 시가 아닐까? 모악산 등산로에서 저만치 비켜 서 있는 진달래꽃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동자에 맺힌 그 다사로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 영혼을 서늘하게 해 줄 여름

여름은 인간과 자연이 맨몸으로 마주하는 계절이다. 그래서 진심이 서로 통한다. 이렇게 통하는 진심의 힘으로 문학은 탄생하고, 독자의 가슴에 서늘한 파문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무더위를 피해 찾아든 계곡에서 우리는 문학을 읽는지도 모른다. 게으른 영혼을 화들짝 일깨울 정도로 시리게 맑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 책갈피를 넘기다 보면 시간이 흘러가는 것도 잊어버릴 것 같다.

지리산 뱀사골 계곡과 달궁계곡은 여름날 찾아가 며칠쯤 머물고 싶은 곳이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 있으면 정신은 맑아지고, 그 투명한 영혼으로 시 한 구절이 새겨질 것 같다. 소설의 한 대목을 읽다가 눈을 들면 숲 그늘은 푸르고, 그 아래로 하얗게 속살을 내보이며 굴러가는 물살이 보인다. 그 물살을 일으키는 크고 작은 바위에서 우직하게 자기 삶을 지켜내는 우리 자신이 보인다. 그게 보일 때면 여름이 성큼 물러나고 있지 않을까?

뱀사골 계곡 입구에 우람하게 서 있는 전적비 앞에서 한 번쯤 우리 역사를 생각해봐도 좋겠다. 역사는 인간의 비극을 어떻게 기록하는지, 또 우리는 그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는지 생각하다 보면 더운 여름날에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순간이 온다. 사람이 사람을 죽여야 했던 숱한 사연들을 그 숲은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숲을 본다. 그것이 역사다. 오늘의 우리가 과거의 우리를 바라보는 것. 지리산 뱀사골 계곡과 달궁계곡에서 우리는 온몸으로 우리 자신을 볼 수 있다. 과거로부터 오늘에 도착해 있는 역사적 인간인 우리를.

지리산 계곡물이 섬진강으로 흘러가면 임실과 순창의 어름에서 또 크게 물살을 뒤척인다. 기괴한 물속 바위로 유명한 장군목 유원지다. 귀 맑은 사람이라면 여름밤 이곳을 흘러가는 물살의 기척에서 요강바위에 얽힌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런 밤에는 또 높이 펼쳐진 하늘에서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다슬기 같은 별들을 보게 된다. 그래서 장군목 유원지에서 건져낸 다슬기에서는 별빛의 향기가 나는지도 모른다.

완주의 위봉폭포도 여름날 찾아가기 좋은 문학 명소다. 여름 한 철,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폭포수를 보고 있으면, 한낮의 열기를 지워낼 수 있다. 그뿐인가? 폭포의 수직 낙하를 보면서 우리는 마음에 얹혔던 근심이나 시름을 통렬하게 씻어내는 기분을 느낀다. 그리고 무모하리만큼 겁 없이 뛰어내리는 폭포수 앞에서 여름날 조금은 게을러졌던 삶의 자세를 고쳐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신이 허락해준 인간의 시간, 가을

가을에는 다른 계절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된다. 자연이 만들었던 봄과 여름의 맹렬했던 시간이 조금씩 소멸해가면서 비로소 인간의 시간이 도래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을에는 자주 우리 내면과 마주하게 된다. 특히 단풍 흐드러진 산자락에서 더 그렇다. 눈은 자연이 만든 소멸의 시간을 바라보고 있지만, 마음에서는 한껏 풍부해진 자기감정에 충실해진다.

가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산사(山寺)다. 가을 햇살이 고즈넉하게 떨어지는 절 마당을 중심으로 사방에 단풍이 물들어 있다. 가을 산사에서 만나는 시간은 한없이 느리게 흘러간다. 그래서 자주 자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게 아닐까? 완주 송광사에서는 하루가 일 년처럼 흘러간다. 발소리를 죽이며 대웅전 앞에 서면 부처의 마음에 닿는 것 같다. 눈을 들면 사찰의 단청 빛과 산자락의 단풍을 구분할 수 없을 듯하다.

송광사를 지나 위봉사에 도착하면 그곳은 또다른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아니, 그곳에는 시간이 없다. 무시간의 공간이다. 그래서 위봉사에서는 절도 없고 나도 없어진다. 그냥 텅 빈 무(無)의 세계에서 오로지 간절한 마음만 존재하는 것 같다. 그 마음 안에 무엇이 담겼는지는 그곳에 서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마음을 다잡고 경내를 걸으면 산그늘에 발자국이 새겨지고, 몸과 마음이 한없이 가벼워져 말소리마저도 그대로 스님의 미소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한나절 위봉사 경내에 머물다 보면 침묵이 한 편의 시처럼 영혼에 깊이 새겨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완주의 사찰 가운데 가을에 가고 싶은 가장 아름다운 곳은 화암사이다. 시인 안도현이 쓴 것처럼, 화암사는 이 지상에서 가장 순결하고 아름다운 절이다. 특히 가을볕이 그 어느 곳보다 환하고 따스하게 내린다. 곱게 늙어가는 절 마당에 서 있으면 삶이 한결 가뿐해지고 단순해진다. 남들과 시비를 가리고, 손에 뭔가를 쥐고자 애썼던 날들이 그저 야속해진다. 그래서 가을 화암사를 다녀간 사람들은 영혼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져 있다.

화암사를 지나면 대둔산과 마주하게 된다. 단풍이 물든 대둔산의 가을은 서늘하다. 온몸의 피부가 잔뜩 긴장한 듯, 대둔산 앞에 서면 인간은 비로소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를 깨닫는다. 수천 년을 단단하게 서 있는 바위와 한 번도 그 자세를 고쳐본 적 없는 능선은 가을을 가을답게 해 준다. 그래서 대둔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저절로 가을을 걷는다. 아니, 신의 시간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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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죽인 우리의 사랑 노래, 겨울

겨울을 걷는 사람에게는 이미 봄이 깃들어 있는 법이다. 그래서 겨울은 더욱 혹독하다. 새로운 계절을 잉태하고 있으므로, 겨울은 더욱 치열하게 자기를 수련한다. 그 수련의 깊이를 사랑이라고 말하면 과장일까? 자기를 갈고닦는 일이 다른 존재를 향해 마음을 여는 일이고, 다른 존재를 조건 없이 기꺼이 품어주는 일이라면, 겨울은 한 번도 사랑으로부터 멀어진 적 없는 시간이다.

겨울 실상사는 그런 점에서 사랑의 처소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눈 내린 실상사 마당을 엇갈려 지나가는 발자국에서도 사랑은 피어난다. 도종환 시인이 「실상사-정도상에게」라는 시에서 “네가 만나야 할 것은 진여실상”이라고 말했을 때, ‘진여’의 모습에서 사랑이 보인다. 그럴 때 사랑은 세속의 모습도 아니고 탈속의 자세도 아니다. 사랑은 언제나 진심의 영역에서 피어나고, 참된 자기에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게 실상의 세계가 아닐까?

순창 회문산에서 어쩌면 ‘진여실상’과 마주할지도 모른다.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 장면이 회문산에 묻혀 있다. 이태의 󰡔남부군󰡕을 읽어보라. 그들은 이념이 아니라 사랑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건 사람들이다. 눈 덮인 회문산 자락에서 꽁꽁 얼어붙은 몸을 깨워준 것도 사랑이었고, 죽어가는 이들의 눈앞에 마지막으로 나타났던 모습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회문산에 오른 사람들은 가슴 깊은 곳에 사랑을 품게 될 것이다.

임실 국사봉도 겨울에 다녀오기 좋은 명소다. 전망대에 오르면 눈 아래 옥정호가 지상의 하늘처럼 맑게 펼쳐져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국사봉 전망대는 새해 일출을 맞이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멀리 산자락 너머로 뜨겁고 붉은 햇살이 솟아오를 때, 허연 입김을 내뿜는 감탄의 소리가 울린다. 꼭 새해 첫날이 아니어도 국사봉 전망대에 오르는 눈길은 특별하다. 서걱서걱 눈 밟히는 소리와 함께 마음의 무거운 짐이 하나씩 벗겨져 나간다.

그러나 겨울 진객은 따로 있다. 완주 비비정에서 바라본 풍경은 그대로 새한도다. 고결한 정신과 순결한 마음이 견디어내는 혹한의 겨울 풍경처럼, 비비정에서 바라본 만경강은 으뜸이다. 과연, 비비낙안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넓게 펼쳐진 삼례 들녘으로 겨울 해가 저물어가는 풍경은 어떤 그림으로도 담아낼 수 없을 만큼 찬란하다. 살얼음 낀 강가에 갈대가 제 몸을 부러뜨리고, 바람이 갈대의 심장을 차갑게 훑고 지나가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인간의 자리가 없이도 겨울은 저절로 깊어간다. 아쉬운 건, 그 겨울의 내면을 어떤 시인도 온전하게 글로 옮겨 담지 못한다는 것이다. /문신(문학평론가, 우석대 문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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