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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용 선임기자의 전북 핫 피-플(people & place)] 시로 코로나 위로 주는 소야 신천희 스님

문인 스님을 만나러 갔는데 뻘쭘하게 전북독립군 총사령관이 나타났다. 김제 금구 소야문학관에서 만난 시인이자 아동문학가인 소야 신천희 스님이 대뜸 건넨 명함 맨 윗자리를 전북독립군이 자리하고 있었다. 전북독립군 이름도 낯설거니와 그 총사령관이 스님이라는 게 의외였다. 스님은 승려이면서도 타 종교를 배척하지 않는 범종교적 활동을 벌이고, 보편적 인류애를 소중히 여기는 분으로 알려져 있다. 스님이 쓴 장편동화 <남북 공동 초등학교>는 전국 초등학생의 필독서며, 술타령 시는 전국 막걸리집마다 걸려 있다. 전국적인 지명도를 갖고 있는 문인이, 그것도 전북 토박이도 아닌 경남 창녕 출신의 그가 왜 전북독립을 외치고 나섰을까. 스님의 설명은 이랬다. 호남이라는 영양가 없는 범주에서 실익은 광주전남에서 다 챙기고 전북은 허울만 남은 껍데기 취급을 받는데도 누구 하나 나서지 않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전북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도민의 마음을 모아 목소리를 내고 전북몫을 찾는데 구심점 역할을 하겠다는 게 이 조직을 만든 취지란다. 그는 추억이 없는 곳은 고향이 아니다고 했다. 중2까지 산 창녕보다 전북에서 더 오랜 20여년을 살았고, 여기에 더 많은 추억이 있는 만큼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자신은 전북인이라고 했다.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시냇물에 낙엽이 둥둥 떠내려가듯 그냥 일상에 젖어 사는 게 그가 본 전북인 모습이다. 자신이 거주하는 김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초등생도 다 아는 고전소설 <콩쥐팥쥐>에 대해 김제 사람들은 그 발원지가 김제라는 걸 잘 모른다. 그래서 오랫동안 소설에 등장하는 지명과 집성촌, 옛 문헌 등을 조사해 스토리텔링으로 만들었고 <동화로 알아보는 콩쥐팥쥐 발원지> 책을 집필했다. 신데렐라 버전이 세계적으로 50개나 되는 만큼 김제를 발원지로 한 콩쥐팥쥐를 활용한 교육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점을 꼬집었다. 스님의 전북 사랑은 지역예술에 대한 깊은 관심에서도 드러난다. 지역예술인들이 중단을 안타까워했던 전주산조예술제를 부활시켰고, 전주한옥마을의 문화적 깊이를 더하기 위해 마당축제 봄날은 간다를 기획했다. 전주가맥축제도 그의 기획으로 나왔다. 20년 전 금구에 터를 잡고 소야문학관을 만들어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소야 스님을 만났다. 시인이자 아동문학가인 소야 신천희 스님이 전북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밝히고 있다. /조현욱 기자 - 오랫동안 이메일을 통해 배달됐던 <산골소년의 옹달샘 편지>가 중단된 걸 아쉬워 한 독자들이 많았다. 최근 다시 스님 시에 주석을 붙인 문자를 보내고 있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 옹달샘 편지를 묶어 산문집 3권을 냈다. 지금은 이메일이 아닌 문자메시지로 매주 월요일 1800여명의 지인들에게 보내고 있다. 코로나로 지친 분들에게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주기 위해 옹담샘의 연장선에서 재개한 셈이다. - 아동문학계에 스님 이름을 떨친 작품이 장편동화 <남북 공동 초등학교>인데, 어떻게 나왔나. 이 책의 본래 제목은 <꽝포 아니야요! 남북 공동 초등학교>인데, 남북화해 분위기가 무르익던 2000년대 초 발간됐다. 당시 북한에도 적십자사를 통해 1000권이 건네졌다. 우리 책이 북으로 넘어간 것은 지금까지 거의 없다. 비무장지대 자유의 마을에 세워진 통일시범학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통일 후 교육적인 문제점을 보여주고자 했다. 동화에 나오는 것처럼 한 때 비무장지대에 국제축구장과 함께 공동 초등학교 설립이 추진되기도 했고, 남북 학생간 홈스테이 교류 논의가 깊숙이 진행되기도 했으나 보수정권 출범과 함께 중단됐다. 지금도 초등학교 4학년 필독서로 꾸준히 읽히고 있는 이 책은 영화로 제작되고 역할극으로 활용되고 있다. - 스님의 시어에 똥이 자주 등장한다. 개인 홈페이지도 똥시 닷컴이다. 더럽다고 외면하는 소재를 택하는 이유가 있나. 본래 시를 썼다. 시에 니코틴 냄새, 술 냄새가 나야 하는데, 내 심성이 14살이어서 그런 냄새가 안 나오더라. 그래서 아동문학으로 바꿨다. 똥 소재로 공격을 많이 받았다. 아이들 정서에 안 좋다고. 그런데 그 뒤 똥 소재 작품이 엄청 많이 나왔다. 사실 똥만큼 정직한 것은 없다. 배탈 나면 설사한다, 오래 묵히면 제대로 된 똥이 나온다. 시도 마찬가지다. 한 편 뚝딱 하면 깊이가 없다. 사유가 없으니까. 조지훈의 승무는 3년이 걸렸다. 똥다운 똥이 나온 것이다. 조사 하나로 밤을 새우는데, 자판기에서 나오는 것처럼 하루 몇 편 썼다고 자랑하는 분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 술도 스님의 시 소재로 많이 쓰인다.술타령은 전국 선술집에 다 걸렸다고 할 만큼 애주자가들의 애송시다. 술을 좋아하시며, 수도에 지장이 없는지. 중학교 때 축구 선수였는데, 그 때부터 술을 마셨다. 가출(스님은 출가를 가출이라고 했다) 한 뒤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교류하면서 자연스럽게 술을 가까이 했다. 그렇지 않으면 무리에 끼지 못하니까. 전주에 온 후 술타령 시를 보고 전주 술꾼들이 다 덤볐다. 한 번도 지거나 비틀거린 적이 없다. 정신력이라고 본다. 술타령 시. - 스님의 글과 시는 화려한 수식 없이도 쉽게 공감을 사게 한다. 완벽하게 알지 못하면 아주 쉽게 설명할 수 없다. 모르면 에둘러서 어렵게 쓴다. 음양오행설은 상생과 상극이다. 나무의 상극은 불이다. 음양탕은 팔팔 끓는 물에 찬물을 넣어 만든다. 음양의 조화가 이뤄지는 게 음양오행인데 이걸 굳이 학설까지 동원해 설명할 필요가 없다. 대금을 배울 때 소리내는 데 두 달 걸린다고 한다. 그러나 제대로 아는 분한테 배우면 1분도 안 걸린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단어로 지금까지 시집과 동시, 동화, 산문 30권 책을 썼다. - 술타령 시도 그렇지만 무릎을 치게 하며 미소를 짓게 하는 시가 많다. 작품 발상을 어떻게 하나. 창작동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뚱보새가 있다. 보통 그냥 지나칠, 집 앞 나뭇가지에 앉은 참새를 유심히 보고 지은 동시다. 불교의 수행법인 의심하고 의심하고 의심에 들어가는 불교 수행법이 창작에 도움을 준다. 문인들과 문예창작과 교수들을 대상으로 한 창작강의에서도 이런 점을 강조한다. - 일반 대중을 향한 강의 활동도 왕성한 데, 어떤 강의를 하나. 수행에서 깨우친 이야기다. 실제 살아가면서 생활에서 깨우친 작은 것들이 수강생에게 직접 전달되기에 공감을 주는 것 같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누구나 관심을 갖는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다. -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깨달음을 대단한 것처럼 생각하는데, 깨우쳐 아는 것이다. 석가모니 말씀에비구야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려라는 게 있다. 뗏목은 경전이다. 석가모니 경전을 팔아먹어서는 감화를 주지 못한다. 스님이라면 경전을 바탕으로 깨우침을 내놓아야 한다. 그것이 감화다. 종교가 기복으로 가는 것은 감명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복 신앙은 살아있는 사람이 편하자는 것이지, 부처나 예수가 뭘 해주나. 종교 자체를 나는 부인한다. 신앙만 필요하다. 정화수 한 그릇 떠놓고 비는 간절한 마음이 신앙이다. 종교가 물질 위주로 흐르는 게 안타깝다. - 스님 절에 법회를 여는 불당이 없는데. 나만의 작은 공간이 있다. 사사불공이고 처처불상, 집에서 기도해도 내 간절함이 있으면 된다. 형상은 상징일 뿐, 굳이 절에 가서 기도할 필요가 없다. 불교는 개신교와 달리 믿음의 종교 아닌 닦음의 종교다, 중생과 부처의 차이는 간단하다. 부처는 자신보다 중생을 생각하고, 중생은 남보다 자신을 생각한다. 닦아서 남을 생각하는 것이 불교며, 감화다. 믿어라 믿어라 하는 것이 아니다. - 스스로를 땡추로 낮춰 부른다. 겸손인가 진심인가. 발효와 썩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땡추냐 아니냐는 나를 보는 사람이 판단하는 것이다. 중요한 건 겉치레가 아닌, 마음 밭을 얼마나 일구었는지다. 몇 백만원짜리 가사 장삼을 두른다고 큰 스님이냐. 성철 스님의 누더기 옷을 본 따 일부러 누더기 만들어 입는 스님도 있다. 옷이 중요한 게 아니다. 반바지 입어도 중은 중이다. 한쪽 눈으로 보면 치우쳐 보인다. 편견이다. 두 눈으로 중심을 봐야 한다. 그걸 깨우쳐 안다고 한다. - 스님에게 영향을 주거나 닮고자 하는 분이라면 법정 스님이다. 성철과 법정 놓고 본다면, 성철은 나 혼자 알고 갔고, 법정은 뒷면이 어떻거나 많은 사람들에게 자양분을 주고 같다. 내가 글 쓰는 것도 어찌 보면 아이들에 대한 포교다, 종교라는 걸 안 내세웠을 뿐이다. -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일은. 코로나 덕분에 싸돌아다니지 않고 몇 권의 책 작업을 했다. <세상아 덤벼라, 맞장 한 번 뜨자> 인문학서와 <시 창작 이론서> 등이다. 앞으로 아이들을 위한 일에 몰두하겠다. 어렵게 사는 아이들 많다. 하루라도 즐겁게 놀 수 있는 공간 체험장 만들고 싶다. 2023년 세계잼버리 부모학교단을 만들어 소외된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다. 스님은 나이를 끝내 14살이라고 우긴다. 나이를 안 먹고 있으며, 죽어도 14살에 죽는단다. 하필 14살이냐 물으니 중이니까로 답한다. 중2에 삶이 멈췄고, 그 때 나이 14살로 살고 있단다. 그 때 먹었던 멸치볶음이나 소시지, 계란부침이 지금도 주식이고 어른들이 먹는 음식을 잘 못 먹는다. 여기에 아픈 사연이 있다. 연탄가스에 중독된 형이 죽게 된 게 자신이 깨우지 않아서란 죄책감과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14살에 삶을 멈춘 형 대신 삶이다. 또 다른 아픔은 그가 가장 고뇌하며 지은 시 외상값에 담겼다. 어머니 이야기다. 어려서 집을 나온 후 가족과 연락을 끊고 살다가 2004년 출판기념회 때 어머니를 처음 봤다. 아무리 출가했더라도 자식인데 어떻게 살고 있나 보여줘야겠다는 마음으로 연락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불교에서 출가한다는 건 속세가 아닌 속세 인연을 끊는 것이며, 부모는 몸을 빌려준 사람으로 본다. 그래서 그는 내 어머니 내 아버지가 아닌, 주변 어른들을 모두 부모로 생각한다. 그럼에도 엄마 한 마디가 눈물 나게 하고, 그런 고마운 마음을 전할 방법이 없어 외상값이라는 시에 담았단다. 그는 봉사를 수행으로 여긴다. 봉사활동을 하면서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국수 천 그릇을 내놓으면서도 플래카드 하나 걸지 않는다. 봉사에 무슨 종교가 필요하냐며 성당 교회 가리지 않는다. 매년 부처님오신날 연등행사 대신 다문화축제를 연다. 부처님 팔아먹고 사는 게 아니라 글 써서 먹고 사는 사람이 왜 등값을 받느냐며, 인근 사찰에 가서 등 달고 이곳에서 놀라고 한다. 20년째 다문화가정 1000명을 초대해 국수 삶고 술을 대접해왔다. 고향을 떠난 이국만리에서 하루라도 고향 사람을 만나면 얼마나 좋겠냐는 생각에서다. 성직자는 빈한함을 즐겨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의 수입 대부분이 저작료와 강연료에서 나오지만 자신을 위해 쓰지 않는다. 술타령 시만 하더라도 전국 선술집에 걸리고 유명 술 광고에 사용되고 있으나 특별히 저작권을 따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애송해주는 것만으로 감사하단다.

  • 기획
  • 김원용
  • 2021.03.29 18:02

[김원용 선임기자의 전북 핫 피-플(people & place)] 한옥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의 주거 공간은 일반 주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국민의 60% 이상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 아파트 붐 속에 한옥이 하나둘씩 사라져 전통 한옥을 문화재로 지정해 관리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그런 한옥이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책으로 세운 한옥스타일 육성 종합계획을 통해서다. 그러나 정부 정책에도 실제 한옥 거주에 대한 선호도는 그리 높지 않다. 비용과 편의성 등에서 아파트만한 경쟁력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통의 현대적 계승이라는 명분을 갖고 한옥의 가치를 재발견하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전북이 그 중심에 있다. 전주한옥마을은 전주를 대표하는 관광상품으로 자리잡았다. 호남고속도로에서 전주로 들어오는 전주관문인 호남제일문이나, 철도 여행객들이 전주를 처음 접하는 전주역사 건물 모두 한옥지붕이 얹혀 있다. 전주시청사와 국립전주박물관 등 한옥형 공공건물도 많다. 전북대는 한옥형 정문부터 캠퍼스 곳곳에 여러 한옥형 시설물을 갖춘 한옥 캠퍼스를 자랑한다. 20년 가깝게 한옥 인력 양성과 한옥 연구에 몰두해온 전북대 남해경 교수(건축공학과)를 만나 한옥의 현주소와 나아갈 방향을 들어보았다. - 한옥은 어떤 매력을 갖고 있으며, 왜 한옥을 발전시켜야 하는지. 한옥은 사람이 만든 인공물이지만 자연과 소통하고 교감한다. 담장이 낮고 벽은 열려 있다. 한옥의 재료들은 친환경적이다. 과학적 규명은 안 됐지만 말기 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토굴 속 시험을 통해 흙이 갖고 있는 치유력을 보여준 한 방송국의 실험 사례도 있다. 건축에는 쾌감대라는 것이 있다. 우리 한옥이 세계에 여러 채 나갔는데 유럽에서도 주목한 것이 온돌이었다. 신발과 옷을 벗고 온돌에 누웠을 때 쾌적한 느낌을 최고로 여겼다. 온돌, 맞춤과 이음 등 친환경적 한옥 건축의 핵심 기술을 현대에 접목하면 지속 가능한 건축과 함께 로하스(건강한 삶과 환경 보존을 동시에 추구하고 실천하려 하는 사람들)를 누릴 수 있다고 본다. 한옥은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문화체며 기술체다. - 그럼에도 한옥을 주거공간으로 선호하지 않는다. 해결방안은 없는지. 흔히 비용과 냉난방위생설비 등 편의성 부족, 유지관리의 어려움을 한옥의 단점으로 꼽는다. 실제 건축비가 많이 든다. 한옥 건축비로 평당 최소 500~600만원, 1등급은 2500만원 이상이다. 그러나 단열이나 편의성 등 다른 문제는 많이 보완됐다. 벌레가 나오는 문제는 그만큼 친환경적이라는 이야기다. 친환경적인 환경을 갖기 위해 이 정도 관리에 번거로움은 감수해야지 않겠나. 결국 선택의 문제라고 본다. 문제는 비용인데 비용을 낮출 수 있는 부재 표준화 작업이 진전을 보이고 있다. 부재의 대량 생산이 이뤄지면 20~30% 단가를 낮출 수 있다고 본다. - 전주 한옥마을에 700여채의 한옥이 있다. 어떤 가치가 있다고 보는지. 한옥마을에 연간 몇 백만이 찾아오고 있어 관광 측면에서 대단하다. 주거지가 전주한옥마을처럼 관광지가 된 것은 세계적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건축학과 문화재적인 측면서 보면 문제가 있다. 대부분 일제강점기와 1960년대 지은 건물을 전통한옥으로 해석한 것이 잘못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식이 아니면 건축허가를 받지 못했다. 한옥마을을 근대한옥의 중심으로 해석했으면 정체성이 더 분명했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일본의 관공서와 은행, 사택들이 다 없어진 것도 아쉽다. 집의 용도로 지었는데 상업시설로 개축하다보니 전통 한옥의 기본원리를 지키지 못한 경우가 생각해볼 문제다. - 전북의 대표적 전통 한옥을 꼽는다면. 정읍의 김명관 고택, 고창 신재효 고택, 부안 김삼만 고택, 남원 몽심재 고택, 익산 김병순 고택 등이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그 중 김명관 고택은 전국적으로 손꼽을 만큼 한옥으로서 가치가 크다. 한옥을 감상할 때 하수는 이게 창방이고 대들보고 하는데, 고수는 턱 괴고 멀찌감치 바라보는 사람이라고 한다. 한옥에서 공간구성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김명관 고택은 공간구성에서 걸작 중 걸작이다. 휘어진 목재를 맞춘 것도 요즘 목수들이 따라하기 힘든 기술이다. - 이김명관 고택을 활용한 프로그램이 3년 연속 문화재청 최우수사업에 선정됐다. 한옥에 대한 일반의 이해를 높이는데 그만큼 기여가 컸다고 보는데, 어떻게 운영했나. 앞서 말한 것처럼 김명관 고택은 그 자체 전통 한옥으로서 가치가 높은데 이를 개조해 숙박시설로 이용하려는 분이 있었다. 마침 내가 문화재 위원으로 활동할 때여서 이를 중지시켰다. 다시는 손대지 못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생생문화재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고택 체험과 명품건축 답사, 토론, 문화재 보호활동 등으로 진행했다. 이전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으나 지금은 주말에 관광버스가 온다. - 한옥형 공공건축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어떻게 보는지. 살립집으로서 한옥을 지을 때 휴먼스케일이란 말을 쓴다. 집이 사람을 억누르지도 않고 사람이 집을 종속시키지 않는다는 의미에서다. 사람의 키를 넘지 않게 하려고 높이 대신 채 나눔으로 해결했다. 그러나 지금은 2층 이상 거대 한옥이 등장해서 우러러 쳐다봐야 한다. 전통 한옥과는 거리가 있는 셈이다. 공공건축물의 경우 한옥이라기보다 한옥의 겉모습만 차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 한옥형 공공건축물 중 모범이 될 만한 곳을 꼽는다면. 전남 장성에 있는 한옥도서관이 작은 도서관들의 모델이 될 만하다. 에어컨 없이도 시원한(패시브 시스템) 천연재료 환경에서 부모와 아이가 자유스럽게 놀면서 책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됐다. 프로그램 운영도 도서관이 아닌 학부모가 설계하고 도서관이 뒷받침 하는 형식이다. 전주 건지산 숲속도서관 같은 곳에 이런 한옥도서관이 만들어지면 좋을 듯하다. - 한옥정책과 관련해 지자체에 권하고 싶은 한 가지. 전주한옥마을에 술박물관까지 운영되고 있으나 정작 한옥박물관이 없다. 미국이나 일본 등에서 한옥 관련 전시회를 하고 전국적으로도 20여차례 전시회를 가졌으나 전주에서 한옥 전시회를 한 적이 없다. 몇 년 전 국립무형유산원 옆에 국가 한옥홍보관을 지을 기회가 있었는데 수원으로 넘어간 게 아쉽다. 한옥마을로 브랜드가치를 높인 전주에 한옥박물관 하나쯤은 있어야지 않겠나. 전주시가 한옥마을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면, 한옥 인재 양성에 전북대가 있다. 전북대가 한옥에 깊이 발을 딛게 한 게 남해경 교수다. 목포 대불대에서 2003년 모교 전북대로 자리를 옮긴 남 교수는 지방대의 서러움을 후배들이 겪지 않게 전국적으로 1등과를 만들어보자는 욕심을 가졌다. 그 지점에서 한옥에 주목했다. 한옥마을이 마침 뜨는 상황이어서 지역 특화가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그가 이런 한옥 인력양성 꿈을 펴는 데 전북대 고창캠퍼스는 날개가 됐다. 현재 전북대 한옥캠퍼스라고 할 정도로 특화된 고창캠퍼스는 한옥 전문인력 양성의 산실이다. 전국에 한옥인력 양성기관이 250개 정도이지만 대부분 사설이며, 고창캠퍼스처럼 국립기관으로서 표준적인 과정을 가르치는 곳은 몇 안 된다. 첨단설계 장비까지 잘 갖춘 것도 이곳의 자랑이다. 설계인력과 기능인력 등 고창캠퍼스에서 그간 배출한 한옥 관련 전문 인력이 1500명에 이른다. 연간 몇 명 선발하지 않는 문화재 실측사와 보수교육사를 배출하기도 했다.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단장을 맡고 있는 남 교수가 이곳을 한국의 바우하우스로 여기는 이유다. 고창캠퍼스가 인력양성을 맡고 있다면 남 교수가 센터장을 맡고 있는 전북대 한옥기술종합센터는 연구개발의 산실이다. 올해로 개소 10년을 맞은 센터는 건축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기술개발에 나서 몇몇 특허를 냈다. 아직 양산 체제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일부 특허 개발품이 상용화 될 경우 부재의 대량 생산 길이 열릴 것이라고 남 교수는 소개했다. 남 교수는 한옥의 세계화에도 관심이 많다. 세계 여러 나라 전시회와 체험활동, 한옥 정자 수출 등의 실적이 있지만 여전히 미흡하다고 본다. 더불어 사는 지혜와 미덕을 갖춘 한옥의 마음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함이다. 국가건축정책위원과 대한건축학회연합회장, 농촌건축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20여년간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과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기획
  • 김원용
  • 2021.03.08 18:00

[김원용 선임기자의 전북 핫 피-플(people & place)] 걷기와 독서가 일상인 신정일 우리 땅 걷기 이사장

온통 책이다. 화장실만 빼고 집 안 전체가 책 병풍을 쳤다. 동서고금의 책들이 망라됐다. 웬만한 공공 도서관을 뺨치는 장서 규모다(1만5000권). 문화사학자 신정일 씨가 사는 전주시 진북동 아파트 주거 공간이 그렇다. 코로나 시대, 도보여행가인 그에게 숨통을 틀 수 있는 길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으나 막상 책이 길로 가는 길을 가로막았다. 기실 신 씨에게 책과 길은 한 몸이다. 그가 자주 쓰는 말도 산천을 유람하는 것은 좋은 책을 읽는 것과 같고, 좋은 책을 읽는 것은 산천을 유람하는 것과 같다다. 실제 지금의 도보여행가로 유명 인사가 되기 전부터 그는 지독한 독서광이었다. 가정형편 때문에 중학교를 진학하지 못했던 그에게 위안이 됐던 게 책이었다. 그가 자주 인용하는 카프카, 니체, 도스토옙스키 등의 글들 모두 청소년기 호롱불 밑에서 읽은 자산이다. 그는 남들이 기억하기 싫어하는 군대시절을 자신의 오늘이 있게 한 원동력으로 여긴다. 그는 포경선 4년을 탄 경험을 바탕으로 <백경>을 쓴 허먼 멜빌의 내게 고래잡이 4년은 하버드대이자 예일대였다로 군대를 떠올린다. 군중문고를 만들어 군대에서 사서 아닌 사서 역할을 했던 그는 군대가 아니었으면 책만 읽는 반거충이가 됐을 것이란다. 제대 후 곧바로 서울 종로서적을 찾아 군대에서 모은 월급 모두 책 구입에 사용한 그는 그 서점에 자신의 저서가 꽂히는 꿈을 꿨다. 그가 쓴 책만도 100권이 넘으며, 책 인세로 먹고 살 수 있는 인디라이터까지 됐으니 그 이상의 꿈을 이룬 셈이다. 그가 쓴 책들은 대부분 길이 바탕이다. <신 택리지> <한국의 사찰 답사기> <대동여지도로 사라진 옛고을을 가다> <길 위에서 배운 것들> <길에서 만나는 인문학> <대한민국에서 살기 좋은 곳 33> <왕릉 가는 길> 등. 도보답사를 통해 금강에서 압록강까지 한국 10대 강, 한국의 산 500여 곳, 영남관동삼남대로를 도보로 답사한 30여년의 경험이 이 책들에 버무려졌다. 2005년 사단법인 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를 만들어 우리 땅의 소중함과 우리 문화의 속살들을 안내하는 신정일 이사장에게 걷기란 무엇일까. 곧 철학이란다. 사람들은 걸음을 떼면서부터 온갖 사물과 사람을 만나고, 역사와 문화를 만난다. 더 중요한 것은 걷기를 통해 내가 나를 만나는 것이다. 루소는 철학의 시작을 발이라고 했다. 발을 떼면서부터 철학이 시작된다. 모든 사물들이 물음을 준다. 철학은 물음이다. 사르트르는 인간은 걸을 수 있을 때까지만 존재한다고 했고, 발로 쓴다는 니체나, 견문이 넓어야 안목이 넓다는 주자의 말도 걷기를 통한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옛날의 현자들은 풀리지 않는 의문이 생겼을 때 숲속으로 들어가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칸트 니체 헤세도 걸으면서 학문을 완성했다. 도보여행가 신정일 씨가 책으로 둘러싸인 자택에서 '길이 집이요 집이 길이다'라며 걸으면서 얻은 해안을 이야기 하고 있다. /오세림 기자 - 걷기의 매력이라면. 오래 전 낙동강을 혼자 걸었을 때, 첫날 64킬로, 그 다음날 40킬로를 걸었다. 발이 붓고 몸이 지쳤어도 계속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저 모퉁이를 돌아가면 아름다운 풍경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설렘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먼 길을 걸어가는 동안 수많은 아름다운 풍경들을 만나게 된다. 그 풍경들을 만날 때 느끼는 감흥은 늘 새롭다. 언제 봤던 것도 오늘의 그것이 아니다. 길을 나서면 모든 순간이 기적이다. 앙드레 지드도현자란 바라보는 모든 것을 경탄하는 사람이라고 <지상의 양식>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감흥과 경탄을 자아낼 수 있는 자연과 만나도록 하는 게 걷기의 매력이다. - 신 이사장께 길이 갖는 의미는 남다를 것 같다. 나에게 길이 집이고 집이 길이다. 그리 생각하면 서울 강남 아파트 한 채인 게 우주 전체인 걸로 알고 꿈으로 삼는 게 좀스럽게 보인다. 세상이 내 집이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행복한가. 우리 땅 걷기 단체를 이끌면서 외국에 나가면 왜 남의 땅 가냐고 하는데, 어디든 내가 밟는 순간 그건 우리 땅이다. 소크라테스가 어디서 왔느냐는 물음에 우주에서 왔다고 했단다. 넓게 바라봐야 한다. - 보통은 그런 깊은 철학 차원이 아닌, 건강을 위해 걷기를 한다. 단체를 이끌다보면 아무래도 뒤처지는 사람도 있을 텐데. 회원 중 아픈 사람이 많다. 걷는 게 치유다. 처음에 힘들어한다. 그럴 때 우리가 일생에서 가장 많이 하는 게 걷는 것이라는 말로 격려한다. 김수영 시인의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가자라는 시구나, 비가 내릴 때 차에서 내리지 않으려 하면 비가와도 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는다는 시구도 동원한다. - 걷기 방식은 따로 있는가. 걷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만 하더라도 춤을 추듯 걷는다거나 술 취한 사람처럼 걷는다고 한다. 방은진 영화감독이 다큐를 찍을 때 나보고 새끼노루처럼 걷는단다. 걷기 방식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다만 해찰하면서 걸어라고 권하고 싶다. 해찰해야 못보던 걸 보게 된다. 죽기살기로 걷는다면 사물을 보지 못한다. 육신만이 아닌 정신도 건강해야 진짜 건강해진다. 그러려면 남의 걸음을 의식할 필요 없다. - 요즘도 걷기 계속하나. 올 다녀온 곳을 소개해달라. 주중에 집필하고 주말 길을 떠난다. 올들어 매월당 선생의 흔적을 찾아 충남 보령의 무량사를 다녀왔고, 논산의 성삼문 묘와 견훤 왕릉, 쌍계사 일대를 둘러봤다. 엊그제는 서천의 홍원항와 무창포 해안을 걸었다. 주말 1박 혹은 2박을 해왔는데, 요즘은 대부분 단일 코스다. - 본인이 이끌고 있는 우리 땅 걷기는 어떤 조직인가. 2005년 조직됐으며, 현재 회원 수는 6500명이다. 별도 사무실이나 조직 없이 온라인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코로나 이후 활동을 중단했으며, 코로나 이전에 많을 때는 400~500명까지 걷기에 참여했다. 회원들을 구속하는 어떤 일도 벌이지 않고 자력갱생을 외친다. 통제를 하는 순간 내 자신도 통제를 받기 때문이다. - 좋은 길을 많이 만났을 텐데 도내 대표적인 길 몇 개를 꼽는다면. 도심 속에 가장 아름다운 길은 전주 건지산 길이다. 도시 안에 그리 나지막하면서도 참나무 단풍나무 플라타너스 아카시아 등 온갖 나무를 품고 있다. 국립산림문화유산으로 추천했다. 변산 마실길도 참 좋은 길이다. 바람으로 빗질하면서 걷을 수 있는, 동남풍을 맞으며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길이다. - 문화재 위원으로 활동하며 전국적으로 60개 국가 명승길을 제안했다. 전북에 명승지를 만든다면. 정여립 생가에서 소양 웅치전적지-죽도로 가는 길을 묶어 역사가 있는 길을 명승으로 지정하면 좋겠다. 부안 마실길은 현재 바닷가로만 되어 있는 데 내변산 길을 연계할 필요가 있다. 익산에서는 왕궁탑에서 시작해 동부도리, 쌍릉, 미륵사지, 연동리 석불, 여산 동헌, 천주교 성지, 가람 생가, 소세양 묘를 연결하는 미륵산 둘레길을 만들지 않는 게 아쉽다. 남원은 춘향이만 사랑하지 말고 만복사저포기의 배경지를 자산삼아 사랑길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다.

  • 기획
  • 김원용
  • 2021.02.15 17:25

[김원용 선임기자의 전북 핫 피-플(people & place)] 코로나시대 희망 부는 ‘긍정아티스트’ 윤수연 씨

세계 최초 '피겨 플루티스트'인 윤수연 씨가 코로나19 이후 1년 넘게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거리를 돌며 플루트를 연주해 코로나19로 우울한 시민들에게 위안을 주며 희망을 전하고 있다. /오세림 기자 여러분 힘내세요. 희망을 가지세요.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윤 씨가 코로나 이후 1년 넘게 진행하고 있는 길거리 연주는 혼자서 펼치는 희망 캠페인이다. 마스크를 쓴 채 플루트를 입에 물고, 인라인 스케이팅을 타면서 연주하는 모습만으로도 시선을 끌었다. 그냥 연주를 하면 이상하게 볼 것 같아 어깨띠도 둘렀다. 지금은 그를 알아보고 엄지척을 해 주는 사람도 많단다. - 어떻게 길거리 연주에 나서게 됐나. 코로나 직전 피겨 플루티스트로 데뷔했다. 방송 출연 등 언론 조명을 막 받을 시점에 코로나가 터져 링크장이 문을 닫았다. 얼음 위 연주가 어렵게 되면서 인라인을 배워 밖으로 나오게 됐다. (피겨 플루티스트는 윤 씨에게만 따라다니는 호칭이다. 피겨를 타면서 플루트를 부는 연주자가 윤 씨뿐이기 때문이다. 소치 동계올림픽 당시 김연아 선수의 환상적인 피겨를 보고 얼음 위에서 플루트를 불면 어떨까 생각했단다. 나보다 피겨를 잘하고 플루트를 잘 부는 사람은 많겠지만, 피겨를 하면서 플루트를 부는 사람은 없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바로 다음날 전주 화산체육관 빙상장을 찾았다. 그의 나이 40세였다. 스케이트 한 번 신어본 적이 없었지만, 끈질긴 노력으로 2016년부터 3차례 문체부장관기 전국생활체육빙상경기대회에 출전해 금은동 메달을 목에 걸며 기량을 인정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2019년 겨울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 아이스링크장에서 정식 데뷔 무대를 가졌다.) - 코로나로 본인 무대도 없어 힘들 텐데, 이웃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려면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다. 희망캠페인을 시작한 건 코로나 훨씬 전인 2013년부터 해온 일이었다. 내 스스로 자살까지 시도할 만큼 극심한 우울증을 털고 일어섰기에 희망과 긍정 마인드가 얼마나 중요한 지 누구보다 잘 안다. 2010년도 음악잡지의 표지모델이 될 만큼 잘 나갔으나 멘토처럼 따랐던 사람에 대한 인간적 배신감으로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이를 추스르는 데 2년이 걸렸다. 우울증을 겪다보니 어려운 이웃이 보이더라. 또 음악만이 배신하지 않는다는 걸 새삼 실감하는 계기였다. 그 전까지는 음악으로 행복을 전한다고 생각했는데, 캠페인을 통해 스스로 위로가 된다. - 연주에 어려움은 없는지. 마스크를 쓰고 굴러다니면서 플루트를 부는 사람은 아마 세계에서 유일할 것이다. 마스크를 쓰고 악기를 부는 게 쉽지 않다. 침으로 젖어 숨쉬기 어렵고 귀가 아파 마스크를 새로 고안해서 착용하고 있다. - 보람도 클 것 같다. 대공연장의 큰 무대도 많이 서봤다. 그보다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 할머니 팬도 생기고 음료수를 건네주는 버스기사도 있었다. 플루트 연주를 듣고 노숙하던 분이 눈물을 흘리며 위로를 받았다는 말도 들었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 캐럴 한 번 제대로 못 들었는데 캐럴 연주에 즐거워하던 분들의 모습도 눈에 선하다. - 강사로도 활동하며 희망을 전하고 있다. 이런 열정의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나. 여러 직함이 있는데, 하나를 고르라면 긍정을 전하는 아티스트로 불리우고 싶다. 내 에너지가 바로 긍정 마인드에서 나온다고 보기 때문이다. 희망의 불씨만 있다면 얼마든지 희망의 불을 지필 수 있다는 걸 내 경험이 말해준다. 강연에서 곧잘 불난 집 딸이라고 나를 소개한다. 실제 불난 집 잿더미에서 플루트를 연주했다. 잿더미에서 희망을 분 연주자의 말이 가볍지 않을 터다. (윤 씨는 부친인 윤명호 화백과 함께 완주 상관에 예술 힐링센터를 계획했다. 그림으로, 음악으로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담은 공간이었다. 그런 힐링센터가 완공을 앞두고 2016년 화재로 전소됐다. 화업 60년 개인전을 앞둔 윤 화백의 작품도 모두 불에 탔다. 당시 상황은 KBS 인간극장 5부작으로 방영됐다. 윤 화백은 붓을 꺾지 않고 현재 금암동 전자상가 화실에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 긍정 아이콘이 되기까지 부친의 영향이 컸다고 들었다. 보통 음악을 하는 사람은 여유 있는 집으로 여기지만 그렇지 못했다. 어려서가 아닌, 고교 진학 후 뒤늦게 플루트에 입문했다. 그럼에도 한국화에 대단한 열정을 가지신 아버지를 보면서 많이 배웠다. 붓을 잡을 때 아버지 눈빛이 달라지신다. 한 음을 불더라도 마음을 다하라며 자신감을 심어줬다. 아버지의 창의성이 내가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었던 힘이지 않았나 싶다. (팔순의 윤 화백은 귀가 잘 안 들리지만 눈이 보이는 게 감사하다고 여긴단다. 눈이 보여 그림을 그릴 수 있으니까. 세상일에 귀를 닫고 지금도 밤새도록 그림을 그린다. 작업 중 쓰러지면 살리려 하지 말고 붓 한 자루만 쥐어달라고 했단다. 윤 씨는 불 탄 아버지 작업실에서 유일하게 남은 불에 그슬린 붓 한 자루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코로나 진정되면 전 세계 링크장을 찍고 싶다. 여니(Yeony)라는 영문 이름을 만들었다. 영어 울렁증이 있는 데 몇 마디씩 영어를 공부하는 이유다. 누구나 마음속에 긍정과 부정 스위치 있다. 어떤 스위치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인생 바뀐다. 힘들었을 때 최악을 봤다. 정말 희망이 없었다. 연습과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누구를 따라하지 않고, 유니크한 길을 도전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도 이를 알기 때문이다. 노력하면 이뤄진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다. (윤 씨는 단 1명이라도 저런 에너지 넘치는 플루티스트가 있구나, 그걸 보고 용기를 얻는다면 만족하단다.) - 코로나에 힘든 도민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 한마디. 코로나로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렇다고 탓만 할 수 없지 않나. 마음이 죽어가는 게 안타깝다. 이 위기를 어찌 넘을 것이냐 생각해야 한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면 못 할 게 없다. 서로 격려와 응원이 필요하다. 코로나로 인해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나를 돌아볼 기회가 됐다. 코로나 안에서도 노력 여하에 따라 길이 나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 기획
  • 김원용
  • 2021.01.25 17:06

[김원용 선임기자의 전북 핫 피-플(people & place)] 워크아웃 딛고 새해 희망 쏘는 솔라파크 코리아(주)

새만금 일대가 재생에너지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30년 가까이 우여곡절을 거쳐 조성한 부지에 기껏 태양광 패널이나 깔아 지역경제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그저 대기업 잔치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새만금이 자칫 허울뿐인 재생에너지 메카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에서다. 새만금 재생에너지 메카와 관련해 이런 희망과 우려가 교차하는 가운데 주목을 받는 지역 기업이 있다. 완주산단에 자리한 태양광 모듈 생산업체인 솔라파크 코리아(주)다. 대기업 각축장인 재생에너지 시장에서 지역의 중소기업이 그 틈을 파고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터다. 엄청난 저가 물량 공세를 퍼부은 중국 쓰나미속에 태양광 관련 대기업마저 속속 무너진 상황에서 지역의 중소기업이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예사롭지 않다. 이 회사가 전북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08년 고창에 솔라파크를 만들면서다. 삼미 경비행장 예정부지에 건설된 15MW급 태양광 발전소는 당시 단일 단지로 세계 최대 규모였다. 박현우 회사 대표는 발전소에 만족하지 않고 태양광 발전소의 핵심 기술이라고 할 모듈 생산에 뛰어들었다. 완주산단을 생산거점으로 삼았다. 세계적 기술을 자랑하는 독일 솔라월드AG와 합작을 통해서다. 이 회사는 자동화 기술을 접목시키고 고효율의 모듈을 생산하면서 처음 몇 년간 날개를 단 듯 했다. 국내 수요가 많지 않던 시절 독일 등 유럽과 미국이 주요 시장이었다. 2012년도 4500억원 매출액에 3억달러 수출탑을 쌓았다. 당시 종업원 수가 500명이나 됐다. 탄탄대로를 달리던 회사는 중국의 저가 물량공세에 순식간에 곤두박질쳤다. 3억 달러 수출탑이 무색하리 만치 그 해 워크아웃에 들어가며 최대 위기를 맞았다. 이런 위기와 불투명한 앞날에도 오너인 박 대표가 전 재산을 출연, 회사 회생의 발판을 삼았다. 박 대표는 자신 소유의 코엑스 아쿠아리움과 고창 태양광 발전소에 집까지 팔아 개인 돈 700억원을 출연했다. 채권은행단은 박 대표의 진정성을 인정해 2018년 법정관리 신청을 받아들였다. 법정관리 회사의 경영권을 이례적으로 그대로 인정한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였다. 이런 시련을 거쳐 솔라파크 코리아가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코로나 영향으로 주춤하던 미국 수출도 하반기 이후 크게 늘고 있다. 새만금 1구역 육상태양광에 모듈을 납품할 수 있게 되면서 100억원을 투자해 제2공장을 건립하고 인력도 새로 충원했다. 세계 최대 수준을 자랑하던 태양광용 폴리실리콘을 생산하던 OCI 군산공장이나 넥솔론마저 중국의 저가 공세에 속수무책인 상황에서도 대기업도 아닌 이 회사가 꿋꿋이 살아남아 새해 재도약의 희망을 쏘고 있는 것이다. 박현우 대표를 만나 그간의 어려움과 회사 발전의 비전을 들어보았다. 솔라파크 코리아(주) 박현우 대표가 전북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회사 발전 계획에 대해 말하고 있다. /조현욱 기자 - 전북에 별 인연이 없었는 데, 어떤 계기로 고창에 태양광발전소를 세우고 완주산단에 둥지를 틀게 됐나. 50% 지분을 갖고 있던 코엑스 아쿠아리움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 돈만 벌게 아니라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다. 그게 태양광이었다. 당시 대기업들까지 눈독을 들일 만큼 태양광 열풍이었다. 마침 고창 부지를 소개받았고, 이를 계기로 완주에 모듈공장을 세우게 됐다. - 공장 설립에 어려움은 없었는지. 하루 만에 완주공장 설립 허가를 받고, 4개월만에 공장과 설비까지 마쳤다. 당시 합작파트너인 세계에서 가장 큰 태양광 회사인 솔라월드 합작 임원들이 그걸 보고 깜짝 놀랐다. 독일에서 허가도 받지 못할 시간에 공장을 완성해서 생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경쟁력은 스피드와 응용력이라고 본다. 우리는 독일 원천기술을 가져왔다. 그걸 어떻게 응용하느냐가 부가가치 창출의 관건이었다. 선진기술을 따라가기 위해 직원들하고 24시간 숙식하면서 일했다. 미국 기술을 몇 개월만에 따라잡고, 독일 기술도 공장 가동 1년만에 따라했다. 원천기술은 부족하지만 싸고 좋은 물건을 만드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 그리 잘 나가던 회사가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회사 이익금을 쌓아 만약의 상황에 대비했어야지 않나. 몇 가지 문제 한꺼번에 겹쳤다. 독일 합작회사 지분을 인수하면서 지출이 많았던 데다 중국의 공세에 정신이 없었다. 수출선적이 유럽으로 가는 한 달 사이 반값으로 떨어지는 일이 허다했다. 납품했던 세계적 태양광 업체인 썬텍과 썬 에디슨이 망하면서 적자를 안아야 했다. 내수로 돌린 후 납품 대금을 받지 못하며 회사 경영사정은 더욱 악화됐다. - 워크아웃 당시 전 재산을 출연했는데, 미래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본래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계속 발전해왔다. 세계에서 가장 큰 태양광 회사와 50대 50 합작으로 큰 공장을 세웠다. 가족들도 그런 모습을 지켜봤다. 그간 믿음을 줬고, 내 스스로도 자신이 있었다. 실패를 한 걸 미국은 쳐주는데, 우리의 경우 오히려 지원이 끊긴다. 한국에서 회생이 힘들다. 내가 올인 한 걸 채권단도 알고 동의해줬다. 법원에서 몇 년 치 조사를 통해 빼돌린 돈 하나 없는 걸 확인하고, 모든 걸 다 넣었다고 판단했으니까. - 현재 미국 수출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 경쟁이 쉽지 않을 텐데. 중국 기업들로 인해 선진국 회사 대부분은 문을 닫았다, 그나마 우리나라가 남아 있다. 5년 전부터 중국보다 뛰어난 원천기술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가져와 대량 생산으로 경쟁력을 확보했다. 고효율에다가 디자인 측면에서 차별화를 꾀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일반 주택에서 소비가 많다. 지붕 면적이 좁아 가격이 비싸더라도 고효율 모듈이 강점을 갖는다. 우리나라 대기업 제품보다 60% 정도 높은 가격임에도 미국 시장에서 통하는 이유다. -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정책을 펴고, 새만금이 신재생에너지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솔라파크에게 절호의 기회인데 이런 기회가 올 줄 예상했나. 선견지명이 있다고들 한다. 10년간 죽다가 살아난 걸 모르고(웃음). 실제 정책 책임자들도 지역에 이런 규모의 태양광 기업이 있는 줄 몰랐다고 한다. - 새만금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대한 기대가 클 텐데. 그렇다. 새만금에 대비해 지난해 100억원을 신규 투자했다. 직원도 새로 채용했다. 그러나 너무 늦어지고 있다. 또 지역에 있는 기업이 실력도 있고 고용도 하면 우대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개발이익에만 관심을 둘 경우 지역업체의 설 땅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처음 1공구 때와 달리 지역업체 배려가 자꾸 흔들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 새만금을 신재생에너지 메카로 만들려면 지역 기업만으로는 어렵지 않겠나. 대형 건설사들이 실제 태양광 경험도 없이 수주를 한다. 하청 업체들은 가격경쟁을 하게 되고,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우리만 하더라도 고창에 1공구 만한 태양광발전소를 홀로 시공했다. 또 지역업체 가점만 받고 다른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다. 수주하면 투자하고 아니면 떠날 채비를 하는 곳을 지역업체라고 할 수 있겠나. 새만금 재생에너지 사업이 외지인의 잔치로 끝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 회사 발전 계획은. 대기업을 포함해서 우리 회사가 모듈 분야 최고 기술을 갖고 있다고 자부한다. 미국 시장의 인정을 받아 지난해 미국 솔라리아 회사와 향후 5년간 1.5GW(약 8000억원 상당) 규모의 태양광 모듈 수출 공급계약도 체결했다. 새만금 사업으로 대량생산을 하게 되면 생산단가를 낮출 수 있고 수출경쟁력도 더 높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전북에 바람이 있다면. 지난 10여년간 3000억원을 전북에 투자해 평균 300명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전북은 제2 고향이다. 그런데 전북이 좋은 기회를 잘 살리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너무 점잖은 때문인지 큰 걸 먹을 생각을 못하고 남지도 않은 걸 갖고 아등바등 한다. 지역이 힘을 합치면 못할 게 없는데 그런 자신감이 없는 것 같다. 능력이 되면 비용을 부담해서라도 강한전북만들기 포럼 같은 것을 만들고 싶다.

  • 기획
  • 김원용
  • 2021.01.04 18:37

[전북 핫 피-플(people & place)] 전주 아파트가격 급상승 진앙지, 에코시티

△1년 새 1~2억원 껑충 전주지역에서 2016년 이후 최근 5년간 분양한 에코시티와 만성지구, 혁신도시 등 공공택지의 분양아파트 11개 단지에 대한 분양가격은 3.3㎡당 최저 795만원에서 최고 943만원이다. 가장 저렴한 분양가격은 지난 2016년 분양한 에코시티 10블록에 건설된 포스코 2차였다. 최고 분양가격은 지난해 11월 분양한 에코시티 한화 포레나로, 943만원이었다. 2017년 효천지구 우미린의 894만원 최고 분양가를 갱신한 것이다. 지역 부동산 업계는 에코시티 아파트 가격이 급상승한 시발점을 포레나 분양 때로 본다. 전주지역 분양가 최고치임에도 당시 476세대(84172㎡) 모집에 2만9000여명이 몰려 평균 61대1의 경쟁률을 기록할 정도로 청약 열풍이 거셌다. 상대적으로 분양가가 낮았던 기존 에코시티 아파트 가격 상승에 불을 댕겼다. 실제 포레나 분양 직전 에코시티 더샵1차 매매가를 보면 85㎡(34평) 아파트가 3억1000만원에도 거래됐다. 지난 10월 거래된 같은 단지 14건의 매매가는 최소 4억100만원에서 최고 5억5000만원이었다. 지난달 6억4000만원으로 최고가를 갱신하는 거래도 나왔다. 1년 새 최소 1억원에서 2억원까지 오른 셈이다. 물론 전주시 신도심의 다른 신규 단지 아파트 가격도 올들어 크게 올랐다. 에코시티와 비슷한 입주시기의 만성지구, 효천지구 아파트에서도 최고치 갱신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단지 규모가 작고 거래 물량도 많지 않아 에코시티에 비해 그 반향이 크지 않다. △아파트 가격 왜 급등했나 과거 아파트는 단지 내집마련이라는 목표에 가치를 부여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주변의 편의시설, 우수한 학군, 교통의 편리성, 공원 등 쾌적성, 유명 브랜드, 대단위 아파트, 미래가치 등을 고려한다. 에코시티 아파트는 이런 매력적 요소들을 두루 갖췄다. 1만 세대에 이르는 대단위 단지에다가 유명 브랜드 업체, 신규 아파트로서 운동시설 등 인프라가 잘 갖춰진 점, 세병호라는 호수가 있어 단지 안에서 산책할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익산군산완주뿐 아니라 고속도로 IC가 인접해 대전까지도 출퇴근이 가능한 위치적 강점도 있다. 그러나 이런 매력만으로 가격 급등을 뒷받침하기는 힘들다. 분양 당시 이런 요소들이 상당 부분 반영됐기 때문이다. 외부 세력의 작용과 입주민의 이해가 합해진 거품일 수 있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노동식 공인중개사협회 전북지부장은 에코시티 아파트가격 급상승 요인을 기본적으로 전주시내 재개발재건축 증가에 따른 수요증가와 저금리 기조의 풍부한 유동성을 들었다. 여기에 외지 투기세력의 작전도 한 몫 한 것으로 보았다. 2인 1조로 비싼 값에 아파트 매매계약서를 작성한 후 본 계약은 하지 않은 채 실거래 기준 가격을 올려놓거나, 실거래 기준 가격을 높인 후 이보다 낮은 가격에 팔아치우고 빠지는 등의 행위가 이뤄졌을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평당 2000만원까지 오를 것이라는 등의 가격을 부추기는 말도 나돈다고 전했다. 강화된 부동산 관련 세법 시행을 앞두고 똘똘한 1채만 가지려는 투기세력들이 막바지 출구전략을 펴면서 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것으로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아파트 가격 양극화, 거품 경계 필요 전주시 아파트 공급은 이미 과잉이다. 전주시 전체 가구수는 27만8130세대인데 주택은 31만4263세대로 주택보급률이 112.99%다. 특히 최근 5년간 혁신도시(5518세대), 만성지구(4583세대), 효천지구(4436세대), 에코시티(8109세대) 등 4대 택지개발을 통해 2만2646세대가 공급됐다. 또 천마지구와 현재 추진중인 재개발과 재건축 물량으로 2만 세대 가깝게 추가공급이 이뤄질 전망이다. 결국 언제든 아파트 가격 거품이 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 신도심 신규 아파트와 반대로 기존 구축 아파트 가격은 대부분 보합 내지 일부 하락한 경우도 적지 않다. 기존 구도심의 대단위 유명 브랜드 아파트 중에서도 에코시티 같은 평형대 가격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신도심과 구도심 아파트간 가격 양극화가 그만큼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양극화에 따른 주민 위화감이나 아파트 블루와 같은 사회적 부작용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더 큰 문제는 아파트 가격이 떨어질 경우 실수요자들의 피해다. 노동식 지부장은 에코시티 분양을 받은 외지인 비율을 20~25%로 추산했다. 이들로부터 현지인을 거쳐 실수요자로 가는 매매 과정에서 현재의 높은 가격이 형성됐다고 봤다. 폭탄돌리기식 게임에서 결국 실수요자들의 피해가 나올 수 있다는 의견이다. 현재 에코시티 아파트 거래 상황만 보더라도 매입자가 극히 드물고, 실제 거래도 거의 없다고 했다. 이충기 박사는 전주시 아파트시장을 분석한 최근 박사학위 논문에서 수도권과 마찬가지로 지방도시도 주택문제 해소 차원에서 신도시 및 택지개발을 벌일 때 매번 부동산가격의 급등 초래했고, 전주시도 입지조건이 좋은 다수의 택지개발이 확대 공급되면서 신규 아파트 중심으로 가격지수가 상승했다며장기적으로 지방도시의 인구정체, 노령화 등으로 인한 초과 공급으로 가격 하락이 이어질 수 있는 상황으로 분석했다.

  • 기획
  • 김원용
  • 2020.12.07 18:49

[전북 핫 피-플(people & place)] 대중과 코로나19 소통한 고규영 카이스트 특훈교수

SNS 등장으로 각종 정보가 차고 넘친다. 기존 언론 영역에서 다루지 않은 뉴스까지 1인매체를 통해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럼에도 사회적 갈등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뉴스 생산은 여전히 중요한 기존 언론의 역할이다. 본보는 핫 이슈를 쫓아 그 중심에 선 사람과 현장 이야기를 전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국내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사흘 연속 200명을 넘어서면서 코로나 방역에 다시 비상이 걸렸다. 미국과 유럽의 코로나 확진자도 연일 최다 기록을 갱신하는 등 전 세계가 코로나 팬데믹 상태다. 코로나19 백신개발 소식이 전해지고는 있으나 코로나 종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코로나19에 대한 일반의 막연한 공포는 크게 줄었다. 정부와 전문 연구자들이 국민들과 적극 소통하면서다. 코로나19 국내 유행이 시작될 당시 코로나 관련 가짜뉴스가 판을 칠 때 정부 연구기관인 기초과학연구원(IBS) 과학자들이 `어벤저스`로 나섰다. 그 선봉에 고규영 IBS 혈관 연구단 단장(KAIST 의과대학원 특훈교수)이 있었다. 고 단장은 대구경북지역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환자가 급격히 늘어나던 시점에 과학자 집단이 나서야 한다고 보고 IBS 차원의 TF를 꾸릴 것을 제안했다. 고 단장의 취지에 공감한 분자의과학, 구조생화학, RNA 생물학, 바이러스면역학, 데이터과학 등 여러 분야의 과학자 17명이 여기에 참여해 대중과 공유할 정보들을 생산, `코로나19 과학 리포트`를 펴냈다. 이 리포트가 IBS 홈페이지에 공개되면 주요 언론과 포털, SNS 등을 통해 일반에게 알려져 코로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없애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렇게 집필된 리포트는 <코로나 사이언스> 단행본으로 발간됐다. 고 단장은 코로나 사태에 대응해 대중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등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에 모범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으며 최근 과학기자들이 선정한 `올해의 과학자` 로 선정됐다. 지난 9일 전주시 공무원 대상 특강 차 고향을 찾은 고 단장을 만나 코로나 극복과 코로나 시대 전북발전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혈관 분야 연구자이신데 코로나19 연구와 사태 해결에 많은 관심을 보이시고 있다. 연구 분야와 관련성이 있나. 내 연구 분야인 혈관 및 림프관과 관련성이 많다. 최근에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허파꽈리에 배양해 감염 기전과 치료제 개발에 적용이 가능한 기술을 성공시킨 카이스트 연구팀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런 개인적인 연구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미증유의 인류적 재난이 된 이 바이러스를 종식시키는 데 힘을 보태는 게 과학자들의 사명이 아니겠는가. -팬데믹 상태가 되기 전부터 코로나19의 위험성을 경계하면서 여러 활동을 해오셨다. 대구경북 유행 이전인 올 1월부터 팬데믹을 예상했다. 메리스 사태를 경험하면서 길어질 수 있고, 백신개발이 쉽지 않다고 봤다. 코로나 초기 마스크 쓰기의 중요성을 국내뿐 아니라 외국 여러 나라에 강조했던 이유다. -언제쯤 코로나 종식이 될 것으로 보는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희망적인 예측을 내놓고 싶지만, 과학자로서 바라보는 현실은 냉혹하다. 현재 추이를 지켜볼 때 코로나19의 완전한 종식은 어려울 것 같다.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조차 여전히 완전 정복하진 못했다. 코로나19의 효율적 예방과 피해 최소화가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본다. 언제쯤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에 고민하는 것이 현재 시점에서 필요한 해법인 것 같다. -미국과 중국 등에서 백신 개발 소식이 나오고 있지 않나. 전문가들은 개발 중인 백신이 남은 임상시험을 잘 통과하여 상용화될 수 있는 시기를 내년 초로 보고 있다. 하지만 고연령층, 면역 이상 및 기저질환 환자, 원인이 불분명한 일부 정상인들은 백신을 투여해도 중화항체를 충분히 생성하지 못할 수 있다. 코로나19 감염 위험성이 계속 잔존한다는 의미다. 특히 변이가 급속히 일어나서 현재 개발 중인 백신과 치료약이 별 효과가 없게 된다면 인류는 지금 이상으로 길고 힘든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 -세계 각국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의 방역 상황을 평가한다면. 우리나라의 정부, 출연연구소, 대학, 기업 등 각 방면에서 코로나 퇴치에 총력을 기울이며 세계적으로도 모범이 되고 있다고 본다. 다만 고위험 감염 바이러스 연구에 필요한 시설과 인력이 국내 부족하여 높은 수준의 연구를 마음껏 펼치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다. 더불어 정부의 통 큰 지원에 비해 민간 기업이나 재단 등의 투자가 미흡한 것도 아쉽다. -전북에서도 한 때 국립감염병 연구소 유치 등 감염병 관련 연구와 산업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감염병은 바이오산업과 연계돼 있다. 직업상 해외 출장을 많이 다니는 데, 각 도시들을 보면서 전북이 어떻게 가야 하나 고민 해본다. 결국 바이오산업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대전광역시는 감염병으로 대박을 쳤다. 다행이 전북에 좋은 자산이 있다. 감염내과 분야에서 독보적인 연구자도 있고, 전북대에 인수공통감염연구소, 정읍에 생명과학연구원도 있다. 이런 자산을 특화시킬 필요가 있다. -전북대 인수공통연구소를 국립 감염병연구소로 전환시키는 것을 두고 지역에서 논란이 있었다. 어떻게 보나. 이미 끝난 이야기다. 충북 오송에 국립감염병연구소가 세워졌고, 소장도 임명됐다. 인수공통연구소를 애물단지처럼 여기는 데 결코 그렇지 않다. 특히 코로나 사태를 맞아 연구소에 위탁사업이 몰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학 측이 예상하기로 내년 매출이 1500억원대에 이른다. 연구소의 목적 전환보다는 협업으로 가는 게 옳다고 본다. -각 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바이오산업 육성에 나서는 상황에서 전북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는가. 대박을 친 대전의 사례를 보면서 느낀 게 많다. 대전의 벤처업체들이 하이테크 성공을 거둔 게 아니다. 감염 환자를 조기 진단해서 슈퍼감염자를 막아 K-방역 성공에 일등공신이 됐다. 슈퍼감염자를 막는 기술은 로테크일 뿐이다. 사람(연구자)과 벤처 업체가 집적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들이 뭉쳐 성공한 것이다. 대전시장의 충남대병원에 1주일 한차례씩 가서 격려하고, 카이스트에 감염병연구소도 만들라고 주문하는 등 열정적으로 뒷받침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전북과 전주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코로나19만이 아닌 그 다음 언제 어떤 감염병이 나타날지 모른다. 어디서 멧돼지 바이러스 발현할지, 박쥐가 사람을 호스트로 언제든 변종바이러스를 일으켜 사람을 공격할 수 있다. 바이오 시장은 무궁무진하다. 감염병바이오항노화 분야 중 2~3가지를 특화할 경우 부가가치가 아주 크다. 뭐가 똘똘한 놈인가, 어떤 비즈니스로 가야 하나. 매력적인 게 있어야 한다. 그래야 글로벌한 제품도 창출할 수 있다. 미래를 바라봐야 한다. -연구 집적이 잘 된 수도권이나 대전권 등에 비해 전북의 여건은 열악한 데, 이를 극복할 방안을 조언한다면. 객관적으로 볼 때 전북에 부족한 게 많다. 돈과 기술력, 리더십이 필요하고, 네트워크 어우러져야 한다. 인재들이 올 수 있게 대학의 역할이 중요하다. 유럽을 보면 대학 중심으로 기술과 과학이 발달했고, 여기서 부가가치를 창출한 사례들이 많다. 우유 종이 팩과 지퍼가 스웨덴의 특허품이다. 전주에서 왜 지퍼나 종이 우유팩을 못 만들겠나. 지역사회와 대학이 힘을 합쳐 우리 젊은이들이 의욕과 꿈을 갖도록 해야 한다.

  • 기획
  • 김원용
  • 2020.11.16 18:11
기획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