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의 유럽 순방 동안 국내에서 들려오는 뉴스는 온통 지역감정 논란이다. 영·호남 분열의 원인이 DJ의 대선 출마에 있었다느니, 영남 정권을 만들기 위해 TK(대구·경북)와 PK(부산·영남)가 뭉쳐야 한다는 등 멀리서 보아도 가관이다. 수그러드는 듯 했다가 귀신처럼 다시 나타나 유권자들을 홀리는 것 보니 망령의 계절인 선거철이 오긴 온 모양이다.
기댈 거라고는 오직 지역감정 밖에 없는 정치인들이 오죽 급했으면 그랬을까. 선거때이니까 그러려니 할 수도 있지만 지금 펼쳐지고 있는 지역감정 논쟁은 실소하다 못해 차라리 슬프기까지 하다.
이 나라 정치에 윤리라는 것이 있는가. 아니 희망이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회의를 지울 수 없다.
DJ를 일컬어 지역감정의 괴수라는 표현까지 나왔다고 한다. 대통령에게도 일면 책임이 있고, 또 이를 신랄하게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만큼 민주화된 국가라는 증거일 수 있다.
그럼에도 지금 국내에서 시퍼런 지역감정의 물길이 더 더욱 참담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 일까. 아마도 이국땅에서 갖는 국민적 부끄러움이 앞서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 외교를 위해 해외 순방중인 국가 원수에게 입에 담지 못할 막말을 퍼붓는 정치인이 어느 나라에 또 있을지 궁금하다.
한가지 묘한 것은 이번 DJ의 순방외교에서 가장 큰 덕을 입는 곳이 바로 그런 독설을 쏘아대는 사람들의 지역이라는 점이다.
한·불 정상회담에서 불란서측은 유수의 기업들이 우리나라 SOC 분야에 21억 달러의 직접투자 계획을 밝혔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프랑스 제일의 건설업체인 SGE사가 현대건설과 합작, 미산·창원간 도로 및 부산 북항대교 건설사업에 7억달러를 투자한다는 것이다.
현대건설 정몽헌 회장이 김대통령의 정상회담과 때맞춰 파리 로얄 몽소 호텔에서 SGE사와 합작 추진 서명을 하는 자리에는 안상영 부산광역시장, 김혁규 경남지사 등이 함께 자리를 했다.
이에 앞서 이탈리아 밀라노에서는 밀라노 프로젝트를 위해 문희갑 대구시장과 대구·경북지역 섬유관련 기업인들이 대거 방문, DJ 외교의 혜택을 톡톡히 누렸다. 공교롭게도 하나같이 영남지역 사업들이다.
국내에서 입이 닳도록 동서화합을 외치고 이역만리 이탈리아에서, 파리에서 그토록 외교전을 펴 주고도 한편에서는 좋은 소리를 못들으니 DJ의 심정은 어떠할까 궁금하다.
불러도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은 지역감정이란 것인가. 아름다움의 도시 파리에서 듣는 지역감정 얘기는 웬지 색다른 슬픔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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