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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창] 죽어서야 자유를 얻은 여성들



지난 18일은 군산시 개복동 속칭 ‘감둑’거리에 있는 한 술집에서 대낮에 불이 나 15명의 여종업원이 숨진지 49일째 되던 날.

이날 49齋에 참석한 유가족들은 딸의, 언니의, 여동생, 처제의 영혼이 자유를 얻어 새처럼 훨훨 날아 성매매와 감금이 없는 환한 세상으로 가기를 다시 한번 기원했다.

죽어서야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었던 여성들. 우리 사회가 도덕적으로 타락한 여자라고 낙인 찍었던 이 땅의 여성들에 삼가 명복을 빈다.

이들은 과연 일방적으로 지탄을 받아야만 하는 대상인가. 노예문서나 다름없는 취업각서 현금보관증 등의 계약서를 작성해 人身이 실질적으로 업주 측에 매어있었는데도 말이다. 숙소에는 이중 자물쇠가 달려 불이 났는데도 탈출할 수 없는 감금 상태였는데도 말이다.

이와 똑같은 대형 화재가 1년반 전에 개복동에서 1㎞밖에 떨어지지 않은 대명동 무허가 성매매업소에서 일어나 5명이 참변을 당했지만 고작 쇠창살이 합판으로 바뀐 것 외 그동안 개선되지 않은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말이 유흥주점이지, 주택을 불법 개조해서 만든, 햇볕도 제대로 들지 않는 1평 남짓한 쪽방에서 ‘삼촌’들의 철저한 통제 속에서 인신매매와 성매매를 강요당하면서 동물만도 못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도, 이번에도 관계자 처벌은 흐지부지 끝났다.

업주들은 초호화판 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종업원들도 명목상으로는 기본급과 수당 등 월수입이 2백만∼5백만원에 이르는데도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의 빚을 떠안고 살아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언니’가 이른데로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사라고 해서 들였던 물품은 물론이고 가구나 가전제품, 도배등 방을 꾸미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고스란히 이들의 몫이었다. 방값과 ‘이모’에 줄 세탁비와 호객하는 ‘휘파리’에 주는 돈까지 그리고 지각비 결근비는 그만두고라도 손님 음료수값에 밥값까지 모두 종업원 비용으로 청구됐다.

언니는 개인 샵에서 홀복을 사게 하는 등 과소비를 부추겨 일부러 많은 빚을 지게 했다. 몸무게가 1㎏만 늘어도 벌금을 물어야 했고, 낙태수술을 받아도 하루만 쉬고 손님을 받아야 하고, 쉬고 싶은 날에는 하루벌이만큼의 돈을 벌금으로 물어야 한다.

연대보증을 해놓아 도망갈 수도 없고, 설상 목숨 걸고 도망친다 해도 잡혀오면 그동안 일 못한 것에다 추적 경비 등 1천만∼2천만원을 몽땅 뒤집어쓰게 된다. 특히 외지에서 종업원들을 데려올 때 먼저 있던 업소에서 진 빚을 갚아주는 대신 그 빚부담을 종업원에게 다시 지워 윤락가를 떠나지 못하도록 굴레를 씌우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이 땅에서 젊은 여성들이 성의 도구로 거래되거나 희생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여성계에서는 성매매방지 특별법을 그 대안으로 내놓았다.

현행 윤락행위 등 방지법은 성을 파는 여성에 대한 처벌을 위주로 하고 있으므로, 불법을 양산하는 현재의 사회구조에 초점을 맞춰 성매매 알선을 주도하거나 개입하여 이익을 챙기는 모든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예방할 수 있는 새 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별법은 성매매된 피해자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고 사회복귀를 지원하는 안을 담고 있다. 여성계는 지난해 국회에 이 특별법을 입법청원 했으며 개복동 사고직후 현장을 방문한 조배숙 의원등이 입법 형식으로 추진하고 있다.

인신매매까지 불러오는 성매매의 만연이 법적 제도적 장치만으로 뿌리뽑히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성을 향락의 도구로만 여기는 인식을 버려야 한다.

짐승처럼 쇠창살에 갇혀 몸을 팔아야 하는 여성이 있고, 그들을 노예처럼 옭아매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인간들이 존재하는 까닭은 결국 돈으로 성을 사는 수요자들이 적지 않기 때문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성을 돈으로 사는 것은 상대에 대한 폭력이자 범죄란 인식을 가져야 한다.

/ 허명숙 (본보 특집여성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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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명숙 desk@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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