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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창] 춤추는 出師表



선거시즌이 본격화되자 출사표를 던지는 정치인들의 기사가 신문지상에 연일 오르내리고 있다.

시장 군수 지방의원 등 현역 정치인은 물론이고 예비 정치인들도 이에 뒤질세라 고개를 내미는 횟수가 부쩍 늘고 있다. 날만 궂으면 도지는 신경통처럼 선거철만 되면 우후죽순처럼 출사표가 난무하고 있으니 너무나 헤프게 남발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출사표(出師表)는 본래 ‘군대를 출동시키면서 임금에게  올리는 글’을 일컫는다. 촉(蜀)의 제갈공명이 위(魏)나라를 치기 위해 떠나던 날 아침 황제 유선(劉禪)에게 무릎 꿇고 눈물을 흘리면서 표(表) 를 올린데서 비롯된 것으로, 구구절절 충언으로 가득찼다 하여 그를 충신의 표본으로 만들게 한 유명한 글이다.
 
출사표는 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는 글이기 때문에 ‘던졌다’는 표현은 가당치도 않다. 주권재민의 시대인 오늘날에도 옳은 표현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냥 쓰고 있다.

정치는 마약과 같은 것이라서 한번 빠져들면 헤어나기 어렵다는 게 경험자들의 진단이지만 선거 때마다 기웃거리는 ‘습관성’ 출사표는 분명 문제다. 큰 뜻을 품고 예비후보로서의 인프라를 갖춰 선거판에 뛰어든다면 모르되 대개는 그렇지 않다. 그런 유형도 갖가지다.

게중에는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이른바 세상에 대한 ‘존재확인성’ 출사표가 있는가 하면 누군가를 흠집내기 위한 ‘한풀이성’ 출사표가 있다. 훗날을 겨냥한 ‘인지도 높이기성’ 출사표가 있고 신분상승 효과를 노린 ‘업그레이드성’ 출사표도 있다.

한 몫 챙기려는 ‘잇속 챙기기형’ 출사표, 누가 봐도 함량미달인데 본인 스스로만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자기도취성’ 출사표도 있다. 때가 됐으니 한번 나서볼까 하는 ‘심심풀이성’ 출사표도 없지 말란 법이 없을 것이다.

이런 경우 정치판을 희화화시키고 정치인을 도매금으로 평가절하시킨다는 점에서 비판 받기 십상이다. 정치판이 너무 엄숙할 필요는 없지만 코미디화 돼서도 안될 것이다.

1800여년전 제갈공명의 출사표에는 임금에 대한 한결같은 충성의 마음이 담겨 있고 비장감이 서려 있다. 그동안 살아온 내력과 전쟁에 자신이 나가야 하는 이유, 그리고 각오 등이 나타나 있고 나라를 다스리는 바른 길이 무엇인지도 적혀 있다.

그러나 요즘 한 고을을 다스리겠다거나 통치행위에 대한 감시 견제기능을 하겠다고 나선 이들은 출사표만 냅다 내던질뿐 정책과 비전, 비판과 대안 제시는 뒷전이다. 비장감은 커녕 정열 같은 것도 엿볼 수 없고 아예 ‘다 나가는데 나라고 못 나갈소냐’는 식이다. 출사표를 띄우기는 하는데 무얼 보고 사람 됨됨이를 판단하란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표’(表)란 겉을 뜻하지만 출사표에서의 ‘표’는 ‘의사를 개진하다’란 의미를 담고 있다. 의견개진은 출마자들의 권리이지만 한번 던져진 출사표에 대한 의견개진은 유권자들의 몫이고 그 수단은 투표행위이다.

피선거권 자격만 갖춰지면 누구나 선거판에 뛰어들 수 있기 때문에 출마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성문화할 수는 없지만 단체장으로서 또는 도의원, 시군의원으로서의 ‘깜’이 있는 것이다. 그런 ‘깜’을 골라내는 일에 유권자들이 지금부터 두눈을 치켜 올려야 할 것이다.

아울러 학식과 덕망, 인품과 리더십이 고루 갖춰진 사람들이 출사표를 낼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일에도 활발한 활동이 펴졌으면 좋겠다.

/ 이경재 (본보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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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재 kjlee@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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