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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포] 무대 오르는 극단 '황토'

부활 기약하는 뜨거운 연극혼

오늘과 내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 무대에 오르는 극단 황토레퍼토리시스템의 창작 초연작 '카레이스키' (desk@jjan.kr)

‘내어머니 내어머니가 살았던 곳, 내 핏줄 오지랖을 잡고 피를 토하던 그곳 어느 한부분인들 소중하지 않은 것이 있으리요. 어느 한자락 살을 떼듯 베어낼 수 있으리요. 모진 칼바람 시련에도 들풀 처럼 항웅큼 모진 생명을 간직하여 오늘에 이른 곳. -- 먼먼 이국땅에 오금도 못편채 웅크리고 잠든 내 어머니! 그 이름 카레이스키!’

 

소련 비밀경찰대원 이반 파블로비치와 비운의 사랑을 나누는 명옥(정경림 분)의 독백이 애절하다.

 

소련의 영토에 정착했던 고려인들의 아픈 삶의 역사를 담은 연극 ‘카레이스키’의 연습현장. 시간이 지날수록 작품에 몰입해 있는 배우들의 몸짓도 목소리도 커진다. 작품 전체를 한바퀴 돌린 뒤지만 지친 기색이 없다. ‘한번 더!’ 연출자의 주문이 떨어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호흡을 고른다.

 

두달전부터 시작된 연습은 3주전부터 완전히 강행군으로 바뀌었다. 그 사이 낯설었던 작품 속 인물들은 어느새 연기자들의 몸속에 들어와 앉았다. 무대도 활기를 찾았다.

 

극단 황토레퍼토리시스템이 17일(저녁 7시 30분)과 18일 (오후 4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 창작 초연작 ‘카레이스키’(원제:고려인, 드라마트루기:임형수)를 올린다. 창단한지 23년. 103회째 올리는 무대지만 극단 황토로서는 그 의미가 더욱 새롭다.

 

다섯명 중견배우들의 조우. 조민철(44) 권오춘(43) 이덕형(42) 정경림(38) 양지홍(33). 이들은 황토의 옛 단원들이다. 그동안에도 줄곧 연극무대를 떠나지 않았으나 극단 황토의 본격적인 무대로 다시 서는 일은 모처럼만이다.

 

92년 극단 내분으로 단원들이 뿔뿔이 흩어진지 10여년. 감회가 새로운 것은 연출 박병도씨 뿐만은 아니다. 비슷한 시기에 황토를 나왔던 조민철씨(전주시립극단 상임연출)는 그동안 작품으로 무대를 줄곧 서온 까닭에 어느 한 극단만을 고집해오지 않았지만 10년여만에 서는 황토의 무대는 아무래도 익숙하지는 않다고 말한다.

 

“어색하다기 보다는 설레임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황토는 분명히 독특한 색채가 있어요. 그 색채를 다시 만나는 즐거움이 예상외로 큽니다.” 주인공 이반역을 맡은 그는 중량감있는 연기로 작품의 중심을 끌어가는 부담이 적지 않지만 함께 호흡 맞추었던 옛 동료들과의 연기가 빠른 시간에 안정감을 되찾아 주었다고 소개했다.

 

황토의 초창기를 함께 일구었던 권오춘(이씨 역) 이덕형(최씨 역)씨. 이들은 생계를 위해 서울로 떠났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밤무대를 전전하면서도 연극 무대를 끝내 떠나지 못했던 이들은 고향에 돌아와 활동을 재기한 이후 특기를 살려 방송 리포터로, 이벤트 기획자이자 진행자로, 종횡무진 활동의 반경을 넓혀가고 있다. 재작년, ‘춘풍의 처’로 황토에 합류한 이후 다시 ‘카레이스키’로 결합한 이들은 연극이 주는 새로운 삶의 활기를 즐기고 있는 중이다.

 

전주시립극단 단원으로 줄곧 연극무대에 서온 정경림씨(이명옥 역)나 영화제스탭과 문화행사 기획자로 활동했던 양지홍씨(이학순 역)도 황토 무대는 모처럼의 결합이다.

 

“80년대와 90년대에 이르는 시기는 전북연극의 봄이라 할 만합니다. 이후 극단의 맥은 이어졌지만 극단마다의 고유한 색채를 만나기 어려웠지요. 지금 전북의 연극계는 새로운 바람이 필요합니다. 황토가 새로운 활로를 찾아 예전의 왕성했던 여건을 다시 찾는다면 지역 문화는 한결 풍요로워질 수 있을 겁니다.”

 

지역 연극의 봄 찾기. 다섯명 황토 단원들이 황토의 새로운 재기를 기대하며 무대에 선 이유다.

 

한민족의 방랑의 역사를 그린 이 작품은 이들 다섯명 중견들외에도 고혜미 김수진 차정희 두희정 박남연 홍영배 박상준 김덕중 주현희 등 11명의 신인들이 가세했다. 7명 무용단까지 합한다면 20여명이 서는 만만치 않은 대형 무대다. 올해 전라북도 무대공연작품 제작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제작비 부담은 줄었으나 창작초연작이라는 부담은 피해갈 수 없다.

 

연출을 맡은 박병도씨는 “우여곡절과 영광을 안고 성장해온 황토의 발자취만큼 뜨거운 연극혼을 모두 쏟았다”고 말했다. 현대무용가 강명선씨가 안무를, 황토의 오랜지기인 송용일씨가 무대디자인을 맡았다.

 

연극 '카레이스키' 연출 박병도씨

 

“즐겁습니다. 열정만 있으면 무엇이든 못할게 없었던 20대에 만났던 후배들과 다시 만나 연극 무대를 만들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저에게는 희망이예요.”

 

숨쉴틈 없이 몰아세우던 카리스마의 이미지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너무 순해진 것(?)이 아닌가. 외부인들의 시선 때문만은 아닌 듯 싶었다.

 

오거리 재래 시장 입구 비좁은 소극장, 언제나 자신감과 열정으로 차있던 박병도는 거기 없었다. 웃음 넉넉해지고 채근하지 않는 여유가 내내 낯설었다.

 

“시대가 바뀌었잖습니까. 저도 나이를 먹었고. 80년대만해도 스파르타식 훈련이 연극연습의 교과서였습니다. 지금은 다르지요. 연기자들도 달라졌구요.” 함께 연극무대를 익혀가던 20대 배우들이 어느새 30·40대의 중견 배우들이 되어있는 지금, 그는 연출의 방법은 달라질 수 밖에 없다며 웃었다.

 

모처럼 후배들을 규합해 대작 무대를 만들고 나선 박병도씨(46·전주대 영상학부 교수). 그는 2년전부터 구상해온 ‘카레이스키’로 본격적인 연극 무대를 올리는 감회가 새롭다.

 

82년 극단 황토를 만들어 맨몸으로 돌진했던 시절, 그와 ‘황토’는 10여년동안 전북연극의 희망이었다. 전국연극제에서 두차례의 대통령상을 타는 동안 전북연극은 중흥기에 들어섰고, 그 대열의 선두에는 늘 ‘황토’가 있었다. 내분과 갈등이 빚어지면서 꼭 10년만에 그는 황토를 떠나야했지만 늘 마음은 황토의 언저리를 서성였다고 털어놓았다.

 

“가슴 아픈 일이었어요. 분신과도 같은 극단을 송두리째 놓아야 한다는 사실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습니다.”

 

그렇게 8년이 훌쩍 지나갔다. 그동안 그는 객원 연출로, 다양한 무대를 섭렵했다. 창극과 뮤지컬,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그의 역량은 무대 곳곳에서 실험되거나 더 깊어졌다.

 

황토를 다시 만난 것은 2000년. 그동안 극단은 후배들의 의지로 지켜져왔지만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이듬해 중화산동에 연습실을 새롭게 마련하고 극단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는 작업에 들어갔다. 채 치유되지 못한 상처가 남아 있지만 떠났던 단원들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2002년 지방 순회공연으로 올렸던 ‘춘풍의 처’는 황토의 재기를 알리는 신호였다.

 

그리고 다시 마음 다지고 올리는 ‘카레이스키’. 황토의 터를 함께 일구었던 다섯명 오랜 후배들이 의기투합했다.

 

“살아온 만큼 작품이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빛나는 젊음 대신 원숙함과 두터워진 연대의식이 힘이지요.”

 

박씨는 이 무대가 극단 황토가 한걸음 진전하는 계기라고 말했다. 그는 이 발걸음을 전북연극의 중흥기를 주도했던 황토의 찬란했던 영광을 되돌리겠다는 욕망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으로 해석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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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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