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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드니 철들다

▲ 이제길 씨...수필가 이제길씨는 1994년 <수필과 비평> 으로 등단했다. 수필집 「동태후와 윤씨부인」과 시집 「당신의 얼굴」이 있다.

“나, 이제 십대야!”

 

맞벌이 하는 오빠 부부를 대신해 고모가 조카를 돌봐주는데 열 살 되던 해, 아기 취급하지 말라는 경고로 조카가 내뱉은 말이었다.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녀석이……. 하지만, 차분히 생각해 보니 고모는 부모와는 달리 모모와 같은 친구인 줄 알았을 텐데, 엄마와 다름없이 걱정이라는 이름의 ‘간섭’과 사랑이란 이름의 ‘잔소리꾼’으로 되어버린 자신을 뒤돌아보는 이야기가 <대한민국 10대를 인터뷰하다> 에 소개된다.

 

어른들은 미래를 강조하지만, 십대들은 지금 이 순간의 삶이 전부다. 이들에게 대통령이나 장관을 지낸 사람들처럼 “내가 해봐서 다 아는데!” 운운하는 조언이나 충고 따위는 큰 의미가 없다. 이보다 더 심각한 십대의 속내를 행동으로 표출된 허구도 있다.

 

불량소년, 스미스는 감화원으로 송치되자 장거리 선수로 발탁된다. 그가 멋지게 우승하여 명예로운 상을 획득할 것을 기대하면서 원장은 열심히 지도한다. 소년은 원장의 눈치를 보면서 연습에 열중한다. 그러나 경기가 시작되는 날, 소년은 상대 선수에게 보기 좋게 져줌으로써 원장의 콧대를 꺾어 놓는다.

 

이 1인칭 소설, <장거리 주자의 고독> 은 1928년 실리토우(A. Sillitoe.영)의 작품이다. 유년시절 하층 노동자들의 가난했던 생활을 체험한 이 소년에게는 원장의 고상한 교훈은 공허한 메아리요, 단순한 잔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소년은 원장의 희망을 점잖게 행동으로 거절한 것이다.

 

중학교 현직에 있을 때의 일이다. 2학년 학생이 전학 왔다.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엄마 말을 잘 듣던 애가 2학년이 되자, “엄마! 나에게 말 걸면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다시는 나한테 잔소리 하지 마.” 긴장된 엄마의 얼굴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다.

 

1남 1녀를 기르면서 지금까지 잘 지내왔는데 갑자기 폭탄선언을 들으니 딸의 얼굴 보기마저 두렵다는 것이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여유가 없다. 딸의 덧정이 없는 행동을 엄마가 고치겠다고 다그친다면 이미 중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으로 훌쩍 성장, 엄마와의 앙금만 기억될 것이다. 자녀교육은 가정에서부터 부모가 당연히 책임져야겠지만 옛날과 달리 요즈음은 만만찮다.

 

존 F 케네디는 최연소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 그의 어머님의 가르침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어머니 로즈는 규칙을 정해 놓고 아이들이 그것을 어겼을 때는 어김없이 회초리를 들었다. 우리들의 할아버지, 아버지 시대에도 그랬다. 그런데 지금의 회초리 교육은 탈선을 재촉하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체벌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신경숙의 장편 <엄마를 부탁해> 는 내 고향, 정읍이 배경인지라 아주 관심 있게 읽어보았다. “엄마를 잃어버린 일주일째다”로부터 시작하여 지난날 우리 엄마와 너무도 평범한 이야기를 회상체 형식으로 화자를 바꿔가면서 엮었는데 감명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세상 엄마들이 신경숙의 엄마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십대의 딸들도 언젠가는 신경숙의 엄마처럼 자식들에게 희생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오늘의 십대를 지나가는 구름의 변화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앞장서지 말고 도와주는 역할에만 힘써달라고 엄마들에게 주문한다면, 생각처럼 쉽지 않다고 헤갈스러워 할까.

 

거시기지만, 나 역시 젊었을 때 교단에서 제자들을 곁에서 도와주지 못하고 왜 그리 앞에서 냅뜨며 이끌기를 좋아했던가, 나이드니 철든다고 이제야 후회한들 이를 어찌 다시 담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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