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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보 공덕비

고재웅 前 군산해운항만청장

1980년대 신군부 정권의 공포정치로 온 국민이 숨죽이고 살던 시절, 어느 월간 문학잡지에서 '곰보공덕비'라는 콩트를 읽은 적이 있다. 권력에 아부하는 세태를 풍자한 재치 있고 웃음을 자아내는 단편으로 어느 해직기자가 쓴 글인데 기억을 되살려 정리하면 이러하다.

 

어느 한적한 시골마을에 당시 최고 권력자가 요란스럽게 시찰한 뒤 그 지역 이장·면장·군수가 꼴사납게 아첨 추태를 연출했는데 동구 밖에 커다란 화강암 대리석에 「OOO장군 방문 기념비」라는 비석을 세웠다. 그런데 관제(官製) 비석 옆을 지나는 주민마다 주먹만 한 돌멩이를 기념비를 향해 정통으로 던지면서 "에이끼 살인마 ×새끼"라고 외치곤 했다. 주민들의 억센 돌을 너무 많이 맞아 기념비는 흉물스러운 곰보비로 전략했다는 가상 글이었다.

 

요즈음 경향 각지에서 임기를 마친 지역 자치단체장이나 토착 졸부들이 왕조시대에나 있음직한 시대착오적인 공적비다 기념비다 하면서 얄팍한 공을 부풀려 현란하게 건립하는 추태를 보이고 있으니 이는 우습게만 보아 넘길 수 없는 일이다. 그것도 멀쩡히 살아 있는 장본인들이 이를 마지못해 수용하는 듯 하는 작태는 개탄스러운 일이다.

 

필자가 23년 전 여수지역 해운항만 책임자로 부임하던 때 있었던 에피소드이다. 당시 관할 지역인 여수·순천·광양 지역기관은 오랜 관례에 따라 부임인사를 다녀오곤했는데 관내 지역사정을 잘 모르는 타 지역 인사들은 우선 전속 운전기사의 도움말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토박이 운전기사의 말이 순천시내 주요 기관장은 방문에 앞서 우선 순천시내 팔마공원(八馬公園) 안에 세워진 「팔마비(八馬碑)」를 참배해 온 것이 지금까지 관례라고 조언했다.

 

전남 유형문화재 제76호인 팔마비는 고려 충렬왕때 승평부사(昇平府使 : 승평은 지금의 승주·순천·낙안읍성 일대) 최석(崔碩)이 재임기간 동안 드물게 선정을 베풀다가 떠나게 되자 오랜 관례에 따라 지역 백성들이 전별선물로 말 7마리를 주었다. 최석은 처음부터 말을 받을 때 세간 운반용 수단으로만 이용한 후 되돌려 주려고 마음먹었고, 새끼 한 마리까지 잘 보살핀 후 여덟 필을 돌려보냈다. 이에 백성들은 지난 날 지방수령의 선정과 예기치 않은 공덕에 감복, 그를 기리는 송덕비를 세웠으니 바로 700년 이상 사회지도층의 귀감으로 전해져 오는 팔마비이다.

 

제주항 초입에 자리 잡고 있는 나지막한 사라봉공원은 많은 시민들이 즐겨찾는 자연공원이다. 그 사라봉공원 모충사 우측에는 '김만덕 의인(金萬德 義人)'의 공적을 기념하는 「의녀반수(醫女班首 김만덕 의인탑」이 세워져 있는데 그 공원을 찾는 시민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존경의 목례를 하곤 한다. 그도 그럴것이 김만덕은 1795년 온 나라가 태풍으로 심한 흉년이 들어 제주 주민들이 심한 기근에 허덕이게 됐을때 쌀 500석 규휼곡을 희사해 1000여 명의 굶주린 백성들을 구제했다. 그는 이러한 공적에도 불구하고 나라로부터 아무런 대가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금강산 일대 일만 이천 봉을 주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만족했다고 하니 여인의 통 큰 선행에 후세의 그 누구인들 흠모하고 존경하지 않겠는가? 김만덕 여인은 다만 뒤늦게 정조(正租) 임금으로부터 '의녀반수(醫女班首)'라는 명예직 칭호를 받았을 뿐이다.

 

인간은 성인군자가 아닌 한 결함이 있을 수밖에 없고 어쩌다가 좋은 점이 부각돼 칭송되나 다른 부문에서는 사정없이 폄훼될 수도 있다. 그리하여 뭇 사람들의 관심과 이목이 집중되는 공적비를 새길 때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인간의 평가는 당사자가 죽고 세월이 흐른 후에야 어느 정도 객관적 평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엄연히 살아 활동하고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공적비를 세우는 것은 주변 뭇 사람들의 빈축을 자초하고 말 것이다.

 

노자의 「도덕경」에 선행무철적(善行無轍跡)이라는 경구가 있다. 선행은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자취를 남겨서는 아니 된다는 뜻이다. 성경 말씀에도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얄팍한 공을 내세워 다중이 모이는 장소에 많은 돈을 들여 호화로운 공덕비를 세우는 것은 그 자체가 흠모나 존경의 대상이 아니고 혐오시설로 외면 받고 말 것이다. 1980년대 곰보 공덕비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경계해야 할 타산지석의 교훈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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