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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다

전정희 국회의원

매카시즘(McCarthyism). 1950년대 초 "국무성 안에 200여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미국 공화당의 조셉 매카시 위스콘신 주 상원의원의 폭탄 연설을 시발로, 나라 전체를 휩쓴 반(反)공산주의 선풍을 일컫는다. 그의 주장은 한국전쟁과 중국의 공산화 등으로 공산세력의 급격한 팽창에 위협을 느낀 많은 미국인들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당시 유명 희극배우였던 찰리 채플린도 공산주의자로 몰릴 정도로 매카시즘은 미국 정계 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노동자의 권익과 소수인종의 인권 옹호에도 공산주의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졌다. 보수세력이 진보세력을 겨냥한 '색깔론'에는 논리적 이론이나 구체적 사실의 근거가 중요치 않았다. 누구든 낙인찍히는 순간, 역도(逆徒)나 공산주의가 아님을 입증하지 못하면 죽음까지도 각오해야 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매카시즘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하게 국가안보를 지켜내야 할 국정원이 불법 대선 개입 사건 등으로 수세에 몰리자, 국면전환을 위해 냉전시대 매카시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대선개입 사건으로 촉발된 국정원 개혁의 칼날을 피하기 위함이다. 최근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에 관한 첫 공판에서 검찰이 공개한 원세훈 전 원장의 과거 발언은 가히 충격적이다. 그는 내부 회의에서 "정부·여당을 비방하는 개인이나 세력이 있다면 이는 우리 국민이라도 북한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발언했다고 한다. 심지어 원 전 원장은 변호인을 통해 국정원의 손발을 묶으려는 생각은 종북좌파와 상통한다는 궤변까지 늘어놓았다. 검찰마저도 국정원의 이 같은 행태를 '신종 매카시즘'으로 규정했다. 적이 아닌 일반 국민을 상대로 여론심리전을 벌이고 정권과 생각이 다르거나 반대하는 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종북' 딱지를 붙였다는 것이다. 국가안보 대신 정권안보에 혈안이 된 탓이다.

 

얼마 전 국정원으로부터 내란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구속됐다. 이제 유?무죄를 가리는 것은 사법부가 할 몫이다.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진 비밀회합 녹취록에는 남북한 상황에 대한 시대착오적이고 왜곡된 인식이 가득했다. 헌법을 부정하고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는 결코 타협해서도, 용납되어서도 안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국정원이 대통령 선거에 개입하고 경찰이 이를 은폐·축소한 죄가 털끝만큼이라도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이석기 의원의 구속으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국정원 개혁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헌법정신을 훼손한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 사건의 진상은 법정에서 명명백백히 규명돼야 한다. 아울러 이 의원 사건을 빌미로, 건강한 민주·진보세력에 대한 터무니없는 '종북몰이'도 하루 빨리 중단돼야 할 것이다.

 

검찰과 재판부는 국정원의 불법 대선 개입과 정치공작 사건을 단 한 치의 의혹 없이 낱낱이 밝혀야 한다. 특히 검찰은 확보한 증거 자료를 재판과정에 적극 개진하여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고, 국정원의 국기문란 사건의 실체를 규명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셀프 개혁'이라는 말로 국정원 개혁을 회피해서는 안된다. 지금이라도 당장 국정원을 개혁의 도마 위에 올려야 한다. 국정원이 본래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내·외부 감찰을 강화하고 국회의 통제를 가능케 하는 방안이 적절할 것이다. 국정원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며, 무너진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한 선결조건이다. 정부와 여당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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