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이 아닌 약속, 지켜야 하나
지난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 3명은 공히 기초선거 무공천을 ‘약속’했다. 오늘날 민주주의 시스템이 정당정치 형태로 이뤄지고 있음을 고려하면 공당이 후보자를 공천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매우 파격적이었다.
“약속은 지켜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라는 로마시대 이래의 법언이 있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이후의 모든 계약과 행위의 효력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무공천 약속이 효력을 발휘하려면 당사자 모두가 약속을 지킨다는 전제가 우선 성립해야 한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약속을 깼다. 따라서 수학적인 관점에서 전제불성립으로 인해 정답 없음이 맞는 결론이 된다.
현실적인 비유를 들자면 여당 공천에 야당은 무공천으로 맞설 경우 총 든 무법자가 설치는 서부의 황야에 정의의 사나이가 맨주먹으로 나가는 상황과 같다. 또 양 편이 거의 반반으로 확고하게 갈려있는 상황에서 한 편은 높고 튼튼한 진지에서 다른 한 편은 맨땅 위에서 싸우는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나마 호남의 경우는 야권 후보들끼리의 경쟁이기에 사정이 조금 나은 편이지만 2∼3% 내지 몇 백표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수도권의 경우 무공천은 곧바로 낙선과 마찬가지일 수 있다. 혹자는 광역만 잘 해서 이기면 되지 않냐고 말한다. 그러나 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원 선거도 광역 못지않게 중요하다. 정당이 풀뿌리 민주주의를 포기하고 어떻게 민주주의를 논할 수 있을까. 또한 풀뿌리를 모두 잃고 어떻게 정권 탈환을 논할 수 있을까.
원점으로 되돌아가 근본적 측면에서 다시 생각해봐도 문제는 공천 자체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공천을 이상하게 하는 작태, 그리고 정파적인 지자체 운영에 있었다. 즉 무공천은 문제에 대한 정답이 아니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바람직한 해법일 수 없다. 정답이 아닌 약속을 지키려다가 정권을 바꿔 정의를 세우겠다는 보다 큰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된다면 그 결정은 응당 재고해야 옳지 않을까.
무공천 문제점·해결책 논의해야
혹자는 기초 무공천 논란을 친노-비노 대립 문제로 보려고 한다. 친노니 비노니 하는 분류법 자체에 동의하기 어렵지만 일단 받아들이더라도 이 문제는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주의와 역사에 대한 공당의 책임 문제이고 선거의 승리와 패배의 문제다.
새 정당이 창당됐다. 정당성을 갖춘 지도부가 민주적인 당내 토론을 이끌면서 기초 무공천과 관련된 문제점과 해결책을 논의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그 결론이 무엇이든 진력을 다하면 될 일이다. 공천을 하기로 하거나 다른 대책을 내놓을 경우 물론 비판이 따를 것이다. 여당, 조·중·동과 종편이 한마음이 되어 저주성 비난을 퍼부을 것이다. 그러나 선거에서 승리하고 올바른 역사를 만들어낸다면 모두 추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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