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동네 모습과 비슷한 선미촌
친한 언니의 제안으로 여성인권단체에서 진행하는 선미촌 산책에 참여했습니다. 그날은 마침 비도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텅빈 유리창에 아무도 볼 수 없는 그곳을 우리는 이방인이 되어 산책을 하듯 거닐어보았습니다. 골목골목을 지나다 보니 그 뒷골목에는 가정집이라는 빨간 글씨가 쓰여진 문들이 대여섯채 있는 골목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곳을 찾은 사람들이 술에 취해 마구잡이로 문을 두드리니 가정집이라 빨간 글귀를 붙이게 된 것입니다. 그곳에 있는 이발소 세탁소 커피숍들과 긴밀하게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도 해주셨습니다. 1년에 한번 그 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만든 협회에서 주변 상인들에게 잔치를 연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 곳도 삶의 생태계가 우리가 사는 동네와 전혀 다름이 없음을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그날 가져간 카메라의 셔터는 함부로 눌릴 수 없었습니다.
산책을 마치고 간단히 참여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그 곳에 살아가고 있는 동네의 모습들은 마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동네의 모습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과 그곳에서도 사람이 살아가는 생태계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들이 오갔고 그렇지만 다른 점은 자신들이 그곳에 살아간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고 부정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여성들을 이용해 돈을 버는 포주도, 그곳에서 일하는 여성들도, 그리고 그 동네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선미촌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선미촌에서 산다는 것을 부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곳은 그렇게 도시의 외딴섬이 되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날 아주 잠깐 걸어본 것이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삶에 크게 공감하는 제 모습에 놀랐습니다. 평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불편해했고 인권이라는 단어는 항상 추상적으로 들려왔기 때문에 선미촌에 대한 기사나 뉴스를 보게 되었을 때도 관심있게 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직접 걸어보고 몸으로 느껴보니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삶이 제 자신의 삶과 다르지 않다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곳은 다 쓰러져가는 정말 작은 칸으로 이루어져 있는 방에서 살고 있고 제가 전주에 와서 살았던 곳들도 옥탑방 오래된 건물들과 계절에 따라 덥고, 춥고, 그리고 벌레들이 항상 가득한 곳들이었기 때문에 그 동네가 낯설지만은 않았습니다. 또한 스스로 일하며 느꼈던 고용 관계들의 부조리함을 느꼈습니다.
그들의 삶을 거닐며 스스로가 더 나은 삶이라 위로 받는 것이 아니라 공감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여성으로서의 공감. 한 인간으로서의 공감. 스스로 선택해서 일하는게 아니라는 자존감이 없는 삶에 대해서도.
타인의 삶 조금이라도 함께 느껴야
요즘 젊은이들이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이 없다고들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그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우리는 공감하는 방법을 잃어버렸습니다. 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내 문제는 어느 사회나 있는 보편적 문제였습니다.
노동 문제도 주거문제도 그냥 그렇게 되어있으니 살아갑니다. 사회의 문제는 언제나 있는 것이고 그것은 개인의 힘으로 바꿀 수 없잖아 하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 문제가 모두가 겪고 있는 공통의 문제라면 타인의 고통과 아픔에 공감하며 조금씩 수정해가면서 매만져볼 수는 없을까요? 얼마전 보았던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떠오릅니다. 우리 사회는 하나의 몸이다. 어느 한 곳이 아프면 다른 곳은 평온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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