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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조건의 '시(時)'

정지시, 한정시, 이탈시, 전진시, 음주시…. 무슨 도시 이름이냐고? 천만에다. 그렇다면 ‘음주시’에는 주정뱅이들만 득시글거리고 있게? 우리나라에 그런 이름을 가진 도시는 없다. 혹시 이웃 대륙이라면 모를까. 여기 쓰인 ‘시’는 도시를 뜻하는 ‘市’가 아니라 ‘時’다.

 

한자말 ‘시(時)’를 순우리말로 바꾸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시간을 가리키는 ‘때’다. ‘時’를 ‘때 시’라고 배웠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 둘을 어느 상황에든 맞바꿔 쓸 수 있다는 건 아니다. ‘열두 시’를 ‘열두 때’라고 쓰지 않는다. ‘그때’를 ‘그시’라고도 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시’를 습관적으로 쓰고 있다. 대개는 한자말 체언이나 용언에 붙여 쓴다. ‘입장시’, ‘숙박시’, ‘착공시’, ‘계약 체결시’ 등이 그런 예다. ‘티타임시’, ‘파일 업로드시’처럼 외래어에도 마구 덧댄다. ‘갈시’, ‘먹을시’, ‘모일시’처럼 순우리말 용언에도 가리지 않는다. ‘시’는 꼭 ‘때’의 뜻으로만 쓰이는 건 아니다. ‘이메일 전송시 미리 알려주세요.’의 ‘전송시’는 ‘전송할 때’와 뜻이 같다. ‘이메일 전송시 상대방의 주소를 알아야 한다.’의 ‘전송시’에는 ‘전송하려면’의 뜻이 들어 있다.

 

‘지방으로 가는 승차권 환불시에는 수수료가 발생합니다. 매표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인천공항 매표소 부근에서 발견한 문장이다. 이런 식으로 ‘환불시’와 ‘매표시’처럼 꼬박꼬박 ‘시’를 쓰는 게 과연 옳은 걸까. ‘환불’이나 ‘매표’는 한자말이긴 해도 이제는 거의 우리말처럼 쓰고 있다. 그렇다고 이렇게 ‘시’를 마구 덧댄 건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환불시’는 ‘환불하면’으로, ‘매표시’는 ‘매표할 때’라고 고쳐서, ‘지방으로 가는 승차권을 환불하면 수수료가 발생합니다. 매표할 때 유의하시기 바랍니다.’라고 썼으면 해서 하는 말이다. 물론 여기에 쓰인 ‘발생’도 눈에 거슬리기는 매한가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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