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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아기와 꼬마 공주

긍게 어쩌라고…? 신호대기를 하다가 앞차 유리창 한쪽에 적힌 ‘까칠한 아기가 타고 있어요!’를 보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꼬마 공주들이 타고 있어요!!’라고 적힌 것도 있었다. 이건 숫제 한술 더 뜨지 않았는가. 저한테나 귀한 딸이지, 남들한테도 공주일까. 조금 빈정거리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랬다.

 

그런 문구는 ‘초보운전’에서 비롯되었지 싶다. 그건 초보 운전자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이게 진화를 거듭하다 보니 나온 게 ‘어제 면허 땄어요’, ‘양보해주셔서 감사합니당∼’, ‘sorry 장롱면허’ 따위일 것이다. 거기까지는 애교로 보아줄 수 있었다. 그런데 ‘까칠한 아기’니 ‘공주’ 따위를 적어 붙이면 그걸 바라보는 다른 운전자는 어쩌라는 건가.

 

‘꽃미녀 타고 있음 예쁘게 봐주세용∼’은 한술 더 떴다. 하긴 ‘절세미녀가 타고 있어요!’도 보았으니 그만하면 말 다했다. 지가 저더러 꽃미녀라네? 절세미녀라고? 예쁘면 뭐든 다 용서된다는 해괴망측한 말까지 떠오른 적도 있다. 시속 120km로 달리는 차를 F1 경주대회처럼 지그재그로 추월해서 순식간에 멀어져가는 ‘어르신께서 운전하고 계심’은 또 어떻게 설명할까.

 

배배 꼬인 눈동자에서 힘을 좀 빼보기로 했다. 다 받아들이기 나름이라지 않았던가. 까칠한 아기든 꼬마 공주든 더없이 귀엽고 소중한 아이들을 자주 태우고 운행하는 차겠지. 이 순간에도 그런 아이들이 뒷자리에서 젖병을 물고 있을지도 몰라. 젊은 엄마나 아빠가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지, 뭐. 돈 드는 일도 아니잖아? 그런 상상을 하면서 빙긋 웃다 보니 신호대기하는 잠깐의 무료함을 덜 수 있었다.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가 내게 건넨 말을 못마땅하게 여기기 앞서 그 속뜻을 먼저 헤아리는 것이다. ‘역지사지’야말로 세상살이의 금과옥조다. ‘내가 타고 있지롱∼ 운전은 안 하니까 걱정하지마’ 옆에 그려진 젖병과 기저귀 찬 아기, 귀엽지 않은가.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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