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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사실 '나'라는 존재는 육체에 있는게 아니라 타자 속에서 거듭 확인

페이스북 사용자라면 빅데이터에 근거한 통계들을 자동 추출해주는 퀴즈들을 재미로 해보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사용자가 타임라인에 쓴 말과 누군가의 글에 누른 ‘좋아요’ 버튼에 따라 취향과 관계들을 인공지능이 분석해내는데 헉, 하고 놀랄 때가 많다. 대개는 정해진 알고리즘에 따라 희망을 주는 격려형 분석으로 마무리되지만, 이런 빅데이터를 누적하고 체계적으로 분석하면 지역과 성별, 세대별 취향과 습성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마케팅이 가능하다. 트렌드에 맞출 뿐 아니라 특정한 소비를 먼저 끌어내고 일정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선택 조작이 가능한 것이다. 없는 취향을 만들어서라도 물건을 팔아야 하는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권에서도 매일 아침 지도부 회의에서 어제의 빅데이터 흐름을 분석한 자료를 보고 받으면서 대중의 여론에 대응하는 발언과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개인 취향을 주로 분석해주며 운세나 관계망들을 꼭 찝어주는 ‘봉봉’ 퀴즈 중에서 버튼 하나를 눌러보고 몇 초를 기다리자 올해 내가 가장 많이 쓴 단어는 ‘있다’ 라는 결과값을 보여준다. 말의 습관은 그가 무의식 중에 무엇을 열망하고 어디에 거처하고 있는 중인지를 드러내는 일이니, 올해 나는 어디엔가 부단히 존재하고 싶었는가 보다. 있을 재(在)는 나의 항렬(돌림자)이기도 해서 원하지 않았으나 피할 수 없는 굴레처럼 그 말을 늘 의식하고 살았다는 것이 맞겠다.

 

중국 북경 자금성. 황제의 궁궐을 들어가기 전 오문에서 대기하는 신하는 37미터 높디 높은 누각 위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 큰 목소리로 ‘짜이 在’라고 대답을 해야 했다.?“네. 여기 있습니다.”의 뜻인 는 자신의 존재 증명인 출석이자, 아직 살아 있음을 드러내는 현존의 가장 적극적인 답변이기도 했다. 그래서 짜이를 외칠 때 기쁨에 찬 화자의 목소리는 높고 뜨겁게 공중에 날아 올랐을 것이다.부재중(不在中)이란 한자어는 그가 여기 있지 않음이 잠시의 일로, 여직 진행 중임을 드러낸다. 중(中)은 시간을 화살처럼 관통하며 다시 돌아와 여기 흙 위에 푸른 삶을 증명할 것이라는 기대와 예감을 담은 말이다.

 

그러므로 통상 많이들 쓰는 “잘 있느냐”는 안부인사에서, 거기 “있느냐”는 말처럼 가장 단순하나 깊은 질문은 또 없을 것이다. 우리는 매일처럼 나의 ‘있음’을, 거처를 거듭 확인하고 산다. 존재(存在)의 열렬함은 ‘있다’에서 비롯되나 역설적으로 부재를 거듭 선언할 때 비로소 그 말의 빛이 살아나는 것이 아닐까.

 

중국어를 처음 배울 때 “당신 어디에 있어요? 在 里?” 라고 물으면 “我在 的心里

 

: 당신 마음 속에 있어요.”라고 답하는 것이 있다. 장난으로 하는 말인지, 몇 번 반복해보면 참 깊은 말이다. 어디에 있다는, 이 단순한 존재증명이 한 줄의 문장으로 오갈 때 청자와 화자의 관계는 단숨에 역전된다. 내 안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그렇게 선언한!) 당신이라는 존재로 인해 내 삶의 빛이 전혀 다른 색깔로 반짝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실 나라는 존재는, 지금 이 글을 쓰는 내 육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당신이라는 타자 속에서 거듭 확인되는 것으로, 비로소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있을 在를 자기 이름으로 가진 자는, 언제나 높디 높은 누각에서 제 이름을 거듭 호명한다.너 거기 있느냐고, 아직 살아 있느냐고. 이 삶을, 현존을, 사랑하고 부대끼며 부재중에서 거듭 돌아오고 있는 것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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