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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호 교수, 문장의 발견] 이미례 여사

옥구군 대야면, 평야지에서 태어나서일까. 이름 가운데 글자로 ‘미(米)’를 쓴다. 어릴 적 별명이 ‘쌀례’였대나, 어쨌대나. 1936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올해 여든셋이다. 스물넷에 토끼하고 발맞춘다는 곰티재 너머로 시집갔다. 초등학교조차 제대로 못 마쳤으면서 편지도 유창하게 쓴다. 모르는 한자가 없다. 손재주가 좋아 평생 삯바느질로 어려운 집안 살림을 받쳤다. 아들 셋을 의사 하나, 교수 둘로 키웠다.

제일 늦된 큰아들이 교수 발령을 받자마자 기탄없이 선언한 바 있다. “나, 인자 바느질 그만둘란다.” 영어를 모릉게 갑갑해서 살 수가 없다더니 웬걸, 전주의 어느 주부학교로 일주일에 두 번씩 꼬박 일 년 동안 개근 통학하면서 ABC부터 배운 게 환갑을 넘긴 직후였다. 동남아 여행을 갔을 때는 더듬더듬 영어로 동갑계원들 화장실 가는 것 정도는 도와줄 수 있었다고 아들들한테 ‘자랑질’한 적도 있다.

컴퓨터를 전공하는 막내아들한테 쓰던 ‘콤퓨타’ 하나 갖다 달라고 하더니 아들들이 집에 올 때마다 이것저것 묻기 시작한 건 또 일흔을 넘겼을 때다. 그렇게 해서 인터넷 검색이나 한글문서 작성법을 익혔다. 노인회관에 나가 사군자도 부지런히 그려서 전시회에 출품도 했다. 팔십을 훌쩍 넘긴 할머니가 손자들하고 수시로 카톡 대화를 나눈다. 괜찮은 풍경이다 싶은 장면은 직접 찍어서 며느리들한테 보내주기도 한다.

청년은 미래를 말하고, 노인은 왕년을 말한다고? 그 속뜻이야 당연히 청년은 포부가 있고, 노인은 그게 없다는 것. 누구네 집 김치가 당신 것보다 되게 맛있다 싶으면 그 비법을 궁금해 하고, 직접 물어서 담가보기도 하고…. 아무튼 여태도 이루고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닌 이미례 여사는, 그러므로 여든셋, 여전히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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