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가을이 깊었다. 대체로 평일에는 직장의 업무처리로 경황이 없고, 주말에는 결혼식이나 이런저런 행사에 참석하느라 분주한 것이 현대인들의 삶이다. 그래서 계절이 바뀐 것도 모르다가 특정의 자연현상과 맞닥뜨린 후에야 계절의 변화를 절감한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경황없이 살고 있는데, 어쩐 일로 지난 주말 여유가 생겨 자동차를 몰고 집을 나섰다. 도심을 벗어나던 중 신호등에 걸려 차를 멈추었을 때 도로변 여염집 담장 위 봐야 별 볼일 없는 세상을 기웃기웃 넘보던 샛노란 모과와 눈이 딱 마주쳤다.
모과는 사람들을 자주 놀라게 한다. 사월이면, 우둘투둘한 억센 줄기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여린 연분홍꽃을 피워 올려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이내 그 꽃잎이 지고, 꽃 진 자리 상처 위에 작은 열매가 맺힌다. 이 작고 푸른 열매는 한여름 폭풍우를 지나면서 울퉁불퉁 아주 못나빠진 모습으로 변하여 사람들을 다시 한 번 놀라게 한다. 과일 망신은 모과가 다 시킨다는 눈총을 받으며 한 여름 뙤약볕과 초가을 태풍을 겪으면서 모과는 제 몸통을 샛노랗게 물들인다. 노랗게 익은 울퉁불퉁 못생긴 모과는 제 몸통에 깃든 격조 높은 향기로 또다시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과연 모과의 향기는 일품이다. 과일가게 망신은 모과가 다 시키고, 생선가게 망신은 꼴뚜기가 다 시킨다는 투의 말은 빈말로라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외양(外樣)만으로 사람이나 사물을 섣불리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은 자칫 동시대 사람들과 생명에 대한 무례(無禮)로 이어질 수 있다. 겉모습으로 본질까지를 단정지어버리는 현대인들의 편협한 인식을 모과가 꾸짖는 것 같아 씁쓸하다. 현대인들은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이를 수용하는 것에 많이 인색하다고 말할 수 있다. 정보통신의 발달로 뉴스나 다양한 정보들이 감당할 수 없을 지경으로 쏟아지는 시대상황에서 표면(表面)과 함께 그 이면(裏面)까지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 자칫 공염불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상에 사로잡힌 인식의 태도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아니 된다고 생각한다.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려는 의지 없이 외양을 중심에 두고 이루어지는 인식은 당사자는 물론이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피폐하게 만들 수 있다. 여기에 자기중심적 사고까지 덧씌워진다면 우리 삶은 돌이키기 어려운 나락으로 곤두박질 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늦기 전에 우리는 인식패턴의 전환을 적극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본질에 접근하려는 진지한 태도를 바탕으로 ‘차이’와 ‘다름’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폭을 넓히는 방향으로 인식패턴의 전환이 추구되어야 할 것이다. 외양 중심, 개인주의가 덧씌워진 주관적인 판단이 안고 있는 위험성을 심각하게 인식하면서 ‘나’ 이외의 모든 존재가 지닌 의미와 그 존재 안에 내재된 역사를 깊이 있게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윤택해질 수 있을 것이다.
모처럼 나선 가을나들이, 문득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 저 안에 태풍 몇 개 / 저 안에 천둥 몇 개 / 저 안에 벼락 몇 개 //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라는 장석주 시인의 시 ‘대추 한 알’이 떠올라 가만히 읊조리면서 먼 산을 바라본다. 산정(山頂) 위 가을하늘이 창창(蒼蒼)하다.
/문병학 전북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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