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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도지사 사진철거 보다 사실확인 먼저

박이선 소설가
박이선 소설가

최근 전라북도와 전주시가 친일행적이 있다고 지적된 역대 도지사와 시장의 사진을 철거했다. 그 경위를 보니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등재되어 있고 친일행적이 밝혀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 친일파에 대한 단죄는 꼭 필요한 일이지만, 당사자와 그것을 목격하고 조사한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친일파로 단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임춘성의 경우를 보자.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의 주장은 임춘성이 1940년 장수군수 재임 시절, 중일전쟁에 참전한 일본군을 위해 국방헌금 모집, 출정군인 환송영, 귀환군인 위안회 개최 등 전시업무를 수행한 공로로 총독부의 지나사변 공로자공적조서에 이름이 올랐으므로 친일파라고 한다. 위 공적조서는 총독부가 중일전쟁에 군수품과 국방헌금 등으로 협력한 조선인과 일본인의 공로를 1940년 기록한 것인데, 2006년 국가기록원이 일본으로부터 입수하여 세상에 선보이게 되었다.

이 자료로 임춘성은 친일파란 오명을 쓰고 말았다.

그러나 반민특위가 1948년부터 친일파에 대해 조사했던 것을 보면 임춘성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총독부 공적조서에 기재된 사람이 모두 친일파라면 지역에서도 익히 알고 그 악명이 자자했을 텐데 이상한 일이다.

반민특위 전북조사부는 손주탁을 책임자로 하여 정치방면의 친일혐의자를 조사하는 제1조사과, 산업경제방면 제2조사과, 일반사회방면 제3조사과를 구성하고, 각 과에 조사관과 이를 보조하는 서기와 사무원을 기용하였으며 특경대는 혐의자 체포에 나섰다. 조사부가 친일혐의자를 조사하는 방법은 신문과 관보 등 문헌자료를 바탕으로 한 예비조사, 지역민의 투서를 통한 제보, 현지조사였다. 지역신문은 반민족행위자의 처벌을 촉구하며 친일파의 구체적 범주를 제시하였고, 정당은 전북조사부후원회까지 결성하여 활동을 도왔다.

그 결과 49년 4월초까지 전국 도조사부 가운데 가장 많은 친일파를 체포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중추원 참의, 군수, 도의원, 경찰 사법주임, 순사부장, 순사, 헌병보조원, 면장, 고물상조합장, 친일 밀정 등 다양한 친일혐의자들이 조사받고 체포되었으나, 임춘성은 지역민들에 의해 친일파로 투서함에 제보되지 않았고 조사받지도 않았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 친일파 낙인을 찍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당사자의 항변과 관련 인물들의 증언을 확보하기 불가능한 상황임을 감안하고, 반민특위가 전북지역의 친일파를 어떻게 판별하고 색출하였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안창호를 비롯한 지식인들이 대거 검거되자 국내 독립운동은 암흑기로 접어들었다. 일제는 중일전쟁을 위해 관공서, 학교, 기업, 상인, 부녀자들을 닦달하여 국방헌금을 거두었고 소학교 학생들도 코 묻은 돈을 바치는 전시체제였다. 이때 본심과 달리 일제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던 사람이 한둘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 독립운동사를 살펴보면 경찰 신분으로 독립운동가를 도와준 사람이 있는데, 자세한 내막이 알려지지 않아 그 후손은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살기도 했다.

좁은 지역사회에서 친일파의 존재를 누구 보다 잘 알았을 반민특위 조사원들과 지역민으로부터 친일파로 지목되지 않았던 사람을 친일파라 규정짓고, 사진을 떼어버리는 것을 보니 의아한 생각이 든다. 감정적으로 사진부터 철거할 일이 아니라 사실확인을 먼저 해야 할 것이다.

/박이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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