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05 01:22 (Wed)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문화마주보기
일반기사

아카데미 시상식과 소수자 재현의 문제

박문칠 우석대 교수
박문칠 우석대 교수

아카데미가 달라지고 있다. 올해 시상식은 여성, 유색인종, 장애인, 비인간 동물 등 다양한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애쓴 흔적이 곳곳에서 보였다. 물론 그 화룡점정은 비영어권 영화 최초로 주요 상을 휩쓴 <기생충> 이었다.?이런 변화는 아카데미가 그 동안 백인 남성 위주의 잔치라는 비판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넓게 보자면 이러한 움직임은 미디어 내 소수자를 올바르게 재현하려는 사회적, 문화적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과 관련된 담론에 대한 역풍도 심심치 않게 일고 있다. 먼저 가깝게는 트럼프 대통령. 그는 <기생충> 의 수상을 조롱하며 ‘자국’ 영화가 수상하지 못한 것을 개탄했다. 지난 해 게임 업계에서는 오버워치라는 게임의 간판급 남성 군인 캐릭터 솔져:76이 동성애자로 밝혀지면서 ‘부자연스럽다’는 유저들의 반발이 일기도 했고, 인어공주의 실사판 주인공 에리얼 역에 피부색이 검은 할리 베일리가 캐스팅되자 #나의 애리얼은 이렇지 않아(#NotMyAriel)라는 해시태그가 확산되고 디즈니를 상대로 한 캐스팅 취소 청원이 돌기도 했다. 우리도 이러한 역풍에서 자유롭지 않다. 최근 온라인을 중심으로 정치적 올바름을 옹호하는 사람을 ‘PC충’이라고 비하하는 행위가 공공연히 이루어진다.

소수자 재현을 반대하는 목소리의 기저에는 소수자 기용이 ‘부자연스럽다’는 정서가 공통되게 흐른다. 우리가 어렸을 때 봤던 동화 속 인어공주는 피부가 하얀 색이었고, 총을 잘 쏘는 군인 캐릭터가 강인한 남성 이성애자인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아카데미는 미국인들의 잔치였으니 ‘미국=백인의 나라’라는 도식을 내면화하고 있는 우리에게 올해 시상식 풍경 역시 생경할 수밖에 없었다. 아시아인들이 대거 단상에 올라가고, 톰 행크스나 샤를리즈 테론 같은 내로라하는 할리우드 배우들이 객석에서 박수 치고 환호하는 장면은 필자의 눈에도 CG나 합성화면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대중매체 속 소수자를 올바르게 재현하려는 운동은 바로 무엇이 자연스럽고 무엇이 부자연스러운지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재정의하는 움직임이다. 우리가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많은 것들 안에는 이 사회의 지배적인 통념과 권력관계가 녹아들어 있다. 남녀가 키스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동성이 키스하는 건 왜 부자연스럽다 여기는지. 아랍인이 테러범으로 출연하는 건 자연스럽지만, 지구를 구하는 영웅이 되면 왜 부자연스럽게 느끼는지. 우리가 갖고 있는 편견을 직면하지 않으면 이런 집단 무의식이 사회적 소수자 집단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이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미국인들만을 위한 무대라고 여겨졌던 아카데미의 단상에 봉준호 감독이 올라감으로써 이제 다양한 국가, 다양한 지역의 영화 감독들에게 ‘나도 언젠가 저 무대를 밟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미국인들도 자국 영화 외에 더 넓고 풍요로운 영화의 세계에 눈을 뜰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조금 낯설고 잠시 ‘부자연스러울’ 순 있어도 기존의 통념을 깨고 한 발 나아가는 기분 좋은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기생충> 이 열어젖힌 새로운 가능성이 반갑다면 비백인 인어공주나 다른 대중매체 속 소수자 재현에도 박수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

/박문칠 우석대 교수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