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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가운데서 그리는 또 다른 미래

박문칠 다큐멘터리 감독·우석대 교수
박문칠 다큐멘터리 감독·우석대 교수

사상 초유의 코로나19 사태를 맞아서 많은 이들이 재난 영화나 좀비 영화를 찾고 있다. 위기의 순간 드러나는 인간의 진면목을 확인하는 데에는 이만한 선택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이미 좀비 영화의 상상력을 뛰어넘은지 오래다.

전지구적 위기를 맞아서 우리는 이제껏 본 적 없는 풍경과 조치들을 목도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유례없이 재난 기본소득이 검토되고 있고, 해외에서는 통행금지, 한시적 해고금지, 일시적 병원 국유화 등이 단행되었다. 전시 상황이나 혁명정부 하에서나 볼 법한 조치들을 보면서 좀비 영화보다, 켄 로치 감독의 <1945년의 시대정신>이라는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다.

지난 세기를 뒤흔들었던 전지구적 위기를 꼽자면 2차 대전을 빼놓을 수는 없다. 역사책을 들춰보면, 당시 상황이 지금과 흡사하게 느껴진다. 각국 정부는 전쟁 승리라는 국가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회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배분했으며, 시민의 안녕을 책임지기 위해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식량배급이 실시되었고, 생필품과 군수물자 생산에 대한 국가 통제가 이뤄졌다. 전시라는 비상상황이라서 가능한 일이었지만, 흥미로운 점은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이러한 경향이 한동안 지속되었다는 점이다. 전쟁이라는 삶의 위기는 사람들에게 ‘각자도생’보다는 ‘함께 살기’가 더 낫다는 교훈을 남겼고, 이런 정신은 전후 서구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결실로 맺어졌다.

영국의 경우, 노동당 정부가 집권하면서 전국민 무상의료시스템인 NHS (National Health Service)가 도입되었고, 국가 기간산업은 국유화되었으며,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보험(National Insurance)이 확대되었다. 말 그대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시민의 삶을 책임지는 사회 시스템이 마련된 것이다. 전쟁이라는 위기 상황에 직면해서 집단적으로 터득한 삶의 지혜, 즉 나 하나의 이익보다는 공동체의 조화로운 발전을 위해, 서로 협력하고 가진 것을 나누는 정신이 전후 복구의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 당시의 시대정신을 담은 영화가 제목 그대로 <1945년의 시대정신>이다.

코로나가 지나가고 평온한 일상을 되찾을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하지만 팬데믹과 같은 전지구적이고 체계적인 위기는 갈수록 늘어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꼭 팬데믹이 아니더라도 전 세계는 이미 온난화와 생태계 파괴와 같은 기후위기, 전쟁과 내전으로 인한 난민 문제 등 심각한 위협에 놓여 있지 않은가?

피할 수 없다면 이번 기회를 통해 철저히 대비하자. 금번 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는 이미 전시상황에 버금가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실천하고 있다. 헌신하는 의료진, 마스크가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내 것을 기꺼이 내놓는 사람들, 고생하는 택배기사를 위해 간식과 응원쪽지를 남기는 사람들. 그리고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획기적인 지원책들. 이렇듯 위기의 순간 발휘되는 공동체 정신을 바탕으로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시스템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 기여할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방법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방안들이 코로나에 대한 일시적인 조치가 아니라, 보다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중장기적인 사회개조 프로젝트의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2차 대전이라는 끔찍한 인류사의 불행을 딛고, 복지국가를 건설한 지난 세기의 교훈처럼 우리도 위기를 기회 삼아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사회를 예비해보면 어떨까?

/박문칠 다큐멘터리 감독·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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