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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진 머리 -김종윤

김종윤
김종윤

친구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고향의 부모님 집에서 잤다. 요즘은 수도권에서 행사를 치르려면 관광버스를 대절하고 음식을 마련하여 축하객들을 모시는 것이 보통이다. 서울까지 가려면 일찍 출발을 한다. 아래쪽에서 빨간색 버스가 양쪽 방향지시등을 깜박거리며 올라오는 것을 보니 대절차가 틀림없었다. 차에 오르니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차에 올라서 인사를 하고 중간의 창 쪽에 자리 잡았다. 차가 출발하자 아주머니 한 분이 떡과 닭튀김, 귤, 땅콩 등이 들어 있는 비닐봉지를 하나씩 주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버스가 쉬고 몇 사람이 타는데 뒤에서 “저 사람이 누구야?” 하고 깜짝 놀라는 것이다. 모자를 쓰고 옅은 색안경에 하얀 수염이 수북하니 못 알아보았다. 한 마을에 살다 소재지로 이사간 사람이었다. 그는 젊어서 기타도 잘치고, 노래도 잘 불러 멋쟁이였는데 그 모습이 달라진 것이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데는 수염과 머리가 큰 영향을 준다. 그래서 남자나 여자의 머리모습이 변하면 마음도 변화가 있는지 의심해 보는 게 보통이다. 우리 어머니의 머리는 지금도 쪽진 머리다. 새마을운동을 하던 무렵에 파마머리를 권유해도 시집 올 때부터 그대로 쪽진 머리를 고수하고 있다. 주변에서 뽀글이 파마를 권장해도 오로지 쪽진 머리를 고수하는 것이다.

쪽진 머리는 깔끔하게 빗고 한복을 입어야 하는 제격이다. 바쁜 아침이나 머리를 감지 못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유용한 경우도 있다. 가운데로 가르마를 타게 되면 깔끔하고 우아한 여성미를 느낄 수가 있다. 동생들이 어머니께 파마머리를 권해 보지만 한사코 거절하셨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미혼여성은 미혼남자와 마찬가지로 묶은 머리나 땋은 머리를 하고, 기혼일 때는 쪽진 머리나 얹은머리를 주로 하였다. 이 머리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볼 수 있는 머리모양으로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를 지나 요즈음까지 우리나라 기혼녀의 기본형이다.

쪽진 머리로 남과 다른 머리 모습을 하신 우리 어머니에겐 일화가 있다. 명절이 돌아올 때 살구나무 밑 확독 옆에서 전을 부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전형적인 한국여인의 모습이라며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진사는 가면서 5천원 권 지폐 한 장을 주고 갔다. 그 뒤 그 사진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었다. 또 이끼 낀 돌담 옆 지붕위로 저녁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데 가을걷이를 하는 여인의 모습으로 JTV전주방송에 나온 적도 있었다.

또 아버지 팔순잔치 때의 일이다. 저녁식사나 하자며 남매들과 조카들을 전주로 초대했는데 모인 김에 가족사진이나 찍자고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그 뒤에 시진관 쇼윈도에 전시가 되어 4거리에서 신호대기 중일 때 쪽진 머리의 어머니를 볼 수가 있다. 열아홉 살에 부안 김씨 외아들인 아버지께 시집을 와 파마머리 한 번 못하고 쪽진 머리 아줌마 남동댁으로 팔순을 바라보며 살고 계신다. 방아실 거리 논에 무농약으로 쌀농사를 지어 보내 주시고 철마다 무와 배추, 고추, 쑥갓, 고수 등을 봉지, 봉지 싸서 마음을 담아 택배로 보내주신다.

어머니는 새댁 때부터 새벽마다 정갈하게 빗은 쪽진 머리에 은비녀를 꽂고 물을 길어다 부뚜막에 정화수를 떠 놓고 가족들의 무병장수를 비셨다. 젊어서는 군대 간 아들이 무고하도록 빌고 늙어서는 군대 간 손자의 무탈을 비셨다. 오늘 따라 쪽진 머리의 우리 어머니가 무척이나 존경스럽다. 평생 근면과 성실로 사신 어머니 덕에 오늘의 내가 있다. 쪽진 머리에 은비녀를 꽂은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오늘도 나는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 김종윤은 장수군 출생, 산림조합에서 정년을 하였다. 대한문학에서 수필로 등단하여 수필집 <시나브브로 가는길> 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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