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팝꽃은 작다. 단순하다. 작고 단순하지만 뭉치면 흰 눈송이를 이룬다.
봄에 하얀 눈송이를 이고 있는 이팝나무는 이색적이다. 그런 이팝나무 가로수 아래를 걸으면 마음이 정갈해진다. 눈송이 같은 하얀 이팝꽃 색깔 때문이다. 봄이면 이팝꽃으로 유명한 곳이 많다.
전주 팔복동 공단에는 이팝꽃으로 우거진 터널이 있다. 그 터널 속으로 철길이 놓여 있고, 하루에 한 번씩 빨간색 화물 기차가 다닌다. 공장 간 화물을 실어 나른다. 그 터널에 가면 하얀 이팝꽃들이 바람에 손을 흔든다. 빨간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보라고 한다. 이때쯤 나는 지리산 아래 카페 이팝에 가고 싶다.
7년 전 산청 한방약초축제에 갔다가 들른 곳이다. 전날 밤늦게 도착해 산 아래 펜션에서 아침 늦게까지 자고 카페에 가서 넓은 창으로 청명한 가을 풍광 속에서 그림같이 다가서는 지리산 천왕봉을 올려다보면서 갓 구운 토스트와 커피로 가을 아침 지리산 아래의 한기를 밀어냈다.
이팝나무 줄기와 가지를 단순화시킨 그림 옆에 작은 글씨로 ‘카페 이팝’라 적힌 간판이 벽에 붙어 있는 크지 않은 카페는 참 정겨웠다. 게 다리 모양의 천장 등에 포도가 그려진 도자기 천장 등갓, 창가의 크고 작은 화분들, 긴 탁자와 깔끔한 의자, 벽에 걸린 오래된 벽시계, 장식장 속 장식용 술병, 그림이 그려져 있는 접시 몇 개, 그리고 꽃병에 꽂힌 노란빛과 붉은색이 잘 섞인 장미 다발. 나는 넓은 창가에 앉아서 꽃 그림이 그려진 커피잔으로 커피를 마시면서 베란다 넘어 도로 양쪽에 줄지어 서 있는 이팝나무를 바라봤다. 그때는 가을이 무르익는 10월, 물론 이팝꽃은 없었다. 그러나 내년 봄에는 눈꽃처럼 하얗게 핀 이팝꽃이 얼마나 아름답겠는가. 내년 봄에 꼭 와봐야겠다.
그 가을 동의보감촌에서 열리는 한방약초축제에서 허준 길도 걷고, 약초 족욕도 하고, 한방약재관도 관람하면서 시간을 보냈지만, 한방약초축제보다는 지금도 나는 카페 이팝만 생각이 난다. 지금쯤 카페 옆 도로 이팝나무 가로수들은 하얀 이팝꽃을 실 지게 피워내고 있을 것이다. 벌써 그곳에 간 지가 7년이 지났다. 그런데 지금까지 다시 한 번 가지 못했다.
가을 아침 카페에서 갓 구운 토스트와 커피로 지리산 아래 한기를 같이 밀어냈던 친구와 함께 다시 한 번 그곳에 가고 싶다. 우리는 7년 전에 다음 해 봄에 같이 오자고 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서울 살고 나는 시골 살기 때문에 서로 만나지도 못하고 지리산 아래까지는 멀기도 해서 지금까지 다시 가지 못했다.
지금 지리산 천왕봉 아래 카페 이팝에 가면 넓은 창가에 앉아서 하얗게 눈이 쌓인 가로수 이팝꽃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저녁나절에는 베란다에 앉아서 지리산을 타고 내려오는 저녁노을과 가로등 불빛 속에서 흰 눈꽃처럼 빛나는 이팝꽃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하얀 꽃을 이고 있는 이팝나무 가로수 아래를 천천히 걸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봄 이팝꽃이 지기 전에 그 친구에게 오랜만에 연락 한번 해야겠다. 이팝 꽃말은 영원한 사랑이란다. 올해는 정말 오랜만에 우리 시간을 내서 지리산 아래 이팝꽃 가로수 길을 함께 걸어보자.
△박동수 수필가는 한국문협 월간문학으로 등단(82),현재 한국문협 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수필집 수염을 깎지 않아서 좋은날 등 6권, 전라북도문화상(학술)과 전북문학상등 문학관련상 다수를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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