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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운동의 미래

박문칠 다큐멘터리 '보드랍게' 감독·우석대 교수
박문칠 다큐멘터리 '보드랍게' 감독·우석대 교수

지난해부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가 그들의 삶을 피상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사실 위안부 피해자라는 이름으로 묶기에는 그들의 삶의 궤적과 개성은 너무나 다르고 다양하다. 하나로 묶을 수 없는 삶들을 우리는 ‘피해자’로 불러내고 있다.

그때부터 한 분 한 분의 사연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경산 출신의 김순악이라는 분의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유곽과 기지촌 ‘색시장사’를 전전하며 힘겨운 삶을 이어왔다. 전쟁 당시의 삶도 끔찍했지만, 귀국한 이후의 삶이야말로 또 다른 전쟁이었다. 이들의 해방 이후 삶을 들여다볼수록 우리 사회가 이들의 중장년 시절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순수한 소녀 시절에 대한 재현도 많고, 인권운동가로 거듭난 이후의 삶에 대한 찬가도 많지만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악전고투해야 했던 30~50대 시절에 대해서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자연스럽게 이 시절의 이야기. 그러니까 편견과 차별에 부딪히며 침묵을 강요당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포함해 생애 전반을 그려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로 그 삶을 재현하는 건 간단치 않았다. 일단, 2010년에 이미 돌아가셨기 때문에 만나서 촬영을 할 수가 없었다. 현존하지 않는 주인공을 찍는 것. 이 과제는 어쩌면 우리 모두 앞에 놓여진 숙제이다. 곧 있으면 당사자들 모두 돌아가시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도 조만간 당사자 없는 운동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 그녀들의 이야기를 먼 옛날의 안타까운 일로 유폐시키지 않고, 어떻게 지금 우리의 현재와 마주치게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영화 역시 이들의 삶을 스크린 위에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직접 촬영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김순악 선생님을 만날 수 있다고 해서 그녀의 삶을 온전히 전할 수 있을까? 그녀의 삶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김순악 선생님이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이 있다. “내 속은 아무도 모른다카이.” 어떠한 말이나 이미지로도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존재한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계셨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작품은 온전한 재현이나 온전한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한 가운데서 출발해야만 했다. 그리고 자로 잰 듯한 ‘정확한 재현’보다는 ‘다양한 재현’에 방점을 찍기로 했다. 생전에 김순악을 만나본 활동가, 만난 적은 없지만 그녀의 증언집을 읽어본 사람. 저마다 서로 다른 모습의 김순악을 가슴에 품고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를 보는 관객 역시도 저마다의 김순악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기를 원했다. 그러다보면 궁극적으로는 우리 곁에 없는 그분과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망이 있었다.

우리 사회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의 삶에 대해 아직 모르는 게 많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피해 생존자, 다양한 과거와의 대화는 지속되어야 한다. 과거의 고통을 마주하며 오늘의 우리 삶이 달라질 수 있고, 달라져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영화와 예술은 이런 대화를 가능케 하는 좋은 매개체이다. 당사자 없는 운동을 준비해야 하는 지금, 주인공 없는 영화를 관람하며 이 대화에 동참해보면 어떨까?

 

/박문칠 다큐멘터리 '보드랍게' 감독·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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