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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속 의료파업 정부와 의협은 뭘 얻었나

이경재 객원논설위원
이경재 객원논설위원

코로나 창궐 속에 의료파업으로 홍역을 치렀다. 정부와 의협이 알맹이도 없는 합의문을 쥐어들고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뇌리에 남는 게 있다. 대한의협 의료정책연구소가 의협 집단파업 때 배포한 홍보물이다.

“당신의 생사를 판가름 지을 중요한 진단을 받아야 할 때, 의사를 고를 수 있다면 누굴 선택하겠느냐”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 ⓑ성적은 한참 모자라지만 그래도 의사가 되고 싶어 추천제로 입학한 공공의대 의사. 파업의 정당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지만 의사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그 하나는 우월적 자기 인식이다. 공부 잘 해야 의대 가는 건 맞다. 하지만 공부 잘 했다고 해서 모두 훌륭한 의사가 되는 건 아니다. 공부는 잘 해서 의대에 갔지만 실력이 없어 손가락질 받는 의사도 많다. 배출된 적도 없는 공공의대 의사를 답지로 묶어 비교 선택하도록 한 건 유치하다.

공부 잘 했다는 의미는 뭔가. 편의적인 도구로 측정한 결과 남보다 낫다는 것에 불과하다. 측정도구에 충실히 따랐다는 의미일 뿐이다. 인간의 종합적인 평가지표도 아닌 걸 갖고 스스로 우월적 자기인식을 하는 건 허황되고 편협하다.

전교 1등을 하지 않았어도 자기분야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기는 사람들은 많다. 성적은 그렁저렁 했지만 사회에 나와 큰 울림을 주는 사람들도 부지기 수다.

다른 하나는 공감능력이다. 의사는 치열한 경쟁에서 성공한 사람들이다. 경쟁은 이기적 속성을 낳고 살아남은 자는 우월감을 갖기 마련이다. 이런 조직문화에 젖다보면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사회를 보는 눈, 국민눈높이 판단 등에서 자신도 모르게 공감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생명을 위협하는 코로나 창궐 상태에서의 파업도 그런 경우다. 응급환자가 응급실을 찾아 헤매다 생명을 잃는 일이 벌어졌고, 진료거부로 수술을 연기해야 했던 환자도 있었다. 응급실과 중환자실 의사 휴진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일이다.

의사는 존경 받는 사회 지도층이다. 당연히 그에 걸맞는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책임도 뒤따른다. 의협은 이익단체 이상의 책임감과 리더십을 보여줬어야 했다. ‘코로나 사태, 국민생명 우리가 책임지겠습니다’며 한발 물러섰더라면 박수를 받았을 것이다. 이런 게 노블리스 오블리제다. 공감능력은 국민 마음을 얻는 힘의 원천이다. 향후 협상에서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을 것임은 불문가지다.

법석을 떨었지만 어정쩡한 합의문이 나왔다.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논의를 코로나19 안정화 때까지 중단하고, 안정화 뒤 협의체를 구성해 법안을 중심으로 원점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재논의한다”

재논의 시점은 백신이 개발돼서 국민들이 예방접종을 받는 내년 말쯤이 될 것이다.그렇다면 문재인 정부에서의 의료개혁은 사실상 물 건너 가는 것이다. 폐교된 서남대 의대(정원 49명)를 공공의대로 확정 발표한 남원 국립공공의료대학원 설립안도 덩달아 휩쓸려 떠내려 갔다.

의협은 시간을 벌었지만 잃은 것도 크다. 가장 뼈아픈 건 의사에 대한 존경심 상실일 것이다. 정부도 얻은 게 없다. 타이밍을 놓치고 부실한 의료개혁안을 내놓아 파업 빌미를 주었다. 그리고 집단 행동에 백기 투항한 꼴이 됐다. 176석이라는 거대 여당의 힘만 믿고 담금질도 없이 추진했다면 더 큰 일이다.

의사는 당연히 늘려야 하고,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는 건 거짓말이다(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과 교수)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공공의대의 필요성은 더 커졌다. 진통 없이 의료개혁이 성사된 적도 없다. 의료정책은 입법의 문제다. 국회가 주체가 돼 재논의 시점을 앞당겨 사회적 논의를 활발히 했으면 좋겠다.

/이경재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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