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05 11:39 (Wed)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금요수필
일반기사

[금요수필] call 인생

백봉기
백봉기

결혼식장에서 <전국노래방 도우미 연합회장> 이라는 생소한 직함의 화환을 보았다. 우리나라에 만개가 넘는 직업이 있다지만 노래방 도우미가 하나의 직업이 되어 전국적인 조직까지 있다는 것은 퍽 의외였다. 갑자기 오래전 KBS에서 방영한 이란 드라마가 생각난다.

7살 된 딸이 있는 이혼남 택시기사와 사랑에 배신당하고 자살까지 시도했지만 결국 밑바닥 인생을 선택한 콜걸이 서로의 비슷한 처지에서 연민을 느껴 사랑하게 되어 새로운 가정을 꾸려가는 이야기다. 부르면 달려가는 콜택시기사와 콜걸의 만남이라 더욱 감동적이었다.

‘콜Call’ 인생은 부름을 받아야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예컨대 콜걸이나 콜택시기사, 파출부, 대리운전기사 등의 사람들을 일컫는다. 예식장에서 낯설게 느꼈던 노래방 도우미도 그런 종류인 셈이다. 이들은 대부분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남이 불러주지 않으면 힘든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어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간다.

더구나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해야만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언젠가 동창회에 가서 한 때는 잘 나가던 친구를 만났다. 고급차에 골프가방을 싣고 다니던 친구였는데 조용히 내 곁으로 오더니 술 한 잔을 권하며 힘들었던 지난날들의 신세타령을 늘어놓았다.

중소기업을 운영했는데, 중국의 덤핑상품들 때문에 견디지 못해 결국 회사는 부도가 나고 자신은 시용불량자가 됐다고 했다. 사업이 잘될 때는 세상살이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부도로 생활고까지 겹치게 되자 어쩔 수없이 선택한 것이 대리운전기사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자신을 내려놓는 것이 무척 힘들었지만 가족을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밤거리로 나섰단다. 그런데 세상에 쉬운 일은 없었다며 밀폐된 공간에서 취객들을 상대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 그리고 요금 때문에 다투고, 운전이 서툴다거나 길을 잘 찾지 못한다며 생트집이고 여성들의 성적인 모욕까지 견뎌야 한다는 것이다,

부름을 받고 그들을 위해 사는 call 맨들, 전화 한통에 2-3분 내로 장소까지 달려가는 콜택시, 거친 행동도 감수하면서 억지웃음까지 줘야하는 콜걸과 노래방도우미, 취객들의 운전을 대신하는 대리운전기사, 힘들고 급할 때 달려와 집안일을 도와주는 파출부, 기족들도 꺼리는 일을 마다 않는 간병인들 모두 진정으로 감사해야할 콜call 맨들이다.

하지만 현실은 차갑다. 인권까지 무시당하는 일이 허다하고, 적은 소득에 사회적인 인식마저 낮아 3D업종이 되었다. 특히 노래방 도우미나 대리기사들은 밀폐공간에서 술 취한 손님들을 상대로 비위를 맞추기 위해 별별 수모들을 겪어야 한다. 이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은 누군가?

바로 우리다. 그러나 우리도 언제 어느 때에 대리운전을 시작한 친구처럼 생활고로 콜Cal 맨이 될지 누가 아는가? 이들을 따뜻이 격려하고 이웃처럼 도와줘야 할 사람들도 바로 우리다. ‘콜 인생’ 남이 불러줘야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 우리 사회에 이들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이분들만큼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힘들게 일하는 이들에게 질책 대신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이 필요하다. 당당한 직업인으로 인정받고, 일한 만큼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사회적 배려와 함께 어쩌면 나와 내 가족도 마지막으로 선택하게 될 극한직업일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공생 공존하는 것이 선진국민의식이다.

 

△백봉기 수필가는 <한국산문> 으로 등단하여 수필집 ‘여자가 밥을 살 때까지’ ‘탁류의 혼을 불러’ ‘팔짱녀’ ‘해도 되나요’를 발간했다. 현재는 온글문학회장과 전북예총 사무처장으로 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