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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학교 통폐합 대기 번호표 나눠줄텐가

김종표 디지털콘텐츠본부장
김종표 디지털콘텐츠본부장

지역사회에서 학교는 단순한 교육시설에 그치지 않는다. 지역공동체의 중심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최근에는 돌봄·보육공간으로서의 역할까지 부각되고 있다. 학교가 없는 곳에서 지역의 지속가능성과 공동체의 활력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지방교육자치에관한 법률에 따르면 학교의 설치·이전 및 폐지는 교육감이 관장하는 사무다. 하지만 지역사회에서 차지하는 학교의 위상과 주민 정서를 감안하면, 교육청이 일방적으로 학교를 옮기거나 통폐합을 결정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전북교육청이 12일 전주 덕진동에 있는 전라중을 송천동 에코시티로 이전·신설하겠다는 방침을 불쑥 발표했다. 갑작스러운 결정은 아니다. 전주 에코시티에 학교 신설을 추진해온 전북교육청은 전제 조건으로 지역의 작은 학교 통폐합을 요구받았다. 학생 수 감소 추세가 계속되는 만큼 택지개발지구에 학교를 신설하려면 원도심이나 외곽의 작은 학교를 이전·재배치 형식으로 사실상 통폐합하도록 해 학교 수 증가를 막겠다는 게 교육부의 방침이다. 작은 학교 활성화 정책을 추진해 온 전북교육청은 여러 채널을 통해 교육부에 정책 변경을 요구했지만 성과는 없었고, 그 사이 에코시티 주민들의 학교 신설 요구는 더 거세졌다.

결국 전북교육청은 학생 수 등을 기준으로 통폐합 대상 학교를 물색했고, 2017년 전주 곤지중·덕일중(투표에서 부결)에 이어 이번에는 전라중을 택했다. ‘학교 이전·재배치’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사실상 신도심 학교 신설을 위한 작은 학교 폐교라는 점은 명백하다. 최근 법원과 검찰청 이전으로 공동체의 활력을 잃은 전라중 주변 주민들은 설상가상 학교까지 잃게 생겼다.

작은 학교 통폐합은 부당하다는 논리를 고수하면서 마냥 세월을 보낼 수만은 없는 전북교육청의 다급한 입장은 이해하지만, 원도심 작은 학교를 일방적으로 선정해 통폐합 대상으로 불쑥 올려놓고 찬반 투표를 밀어붙이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인구감소 등 여건이 변한 만큼 이제는 학교 설립에 대해서도 새로운 접근과 인식이 필요하다. 당장 해법을 찾아야 한다면 일정 부분 학교 수를 줄일 수 있는 초·중 통합학교나 도시형 분교 등의 대안을 검토해 볼 수 있다. 학교 신설·재배치 문제에 대한 해법을 옛 도심이 아닌 새로 학교가 필요한 택지개발지구에 우선 적용하는 방안도 논의해야 한다. 생각지도 못한 불편과 고통이 따를 수 있다. 그 불편은 새로 조성되는 택지로 이전하려는 주민들이 선택에 앞서 예상하고 각오해야 하는 기회비용이어야 한다. 쇠락하는 공동체를 힘겹게 붙들고 있는 원도심 주민들에게 느닷없이 날아드는 비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도 통폐합이 불가피하다면 대상 학교 선정 방식과 절차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분명 앞으로도 학교 신설 요구는 곳곳에서 나올 것이다. 게다가 교육부로부터 조건부로 승인받아 신설한 학교(전주 화정중·양현중)와 관련해 기존 학교 통폐합 조건도 조만간 이행해야 한다. 그럴 때마다 공론화 과정도 거치지 않고 원도심의 작은 학교를 하나씩 하나씩 이런 식으로 후다닥 없앨 것인지 묻고 싶다. 학생 수가 적고 상대적으로 주민 반발이 적을 것 같은 학교 순으로 통폐합 대기 번호표를 나눠주고, 기다리게 할 것인지 말이다.

이제라도 지역사회와 터놓고 소통하면서 납득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김종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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