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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黃昏)에 자랑하고 싶은 이야기

안득수

의과대학 조교수 시절 해외 연수기회를 얻었다. 미국 동부에서 유명하다는 ‘슬로안-캐터링 암센터’에서 초청을 받은 것이다. 서울에서 1박을 하고 다음 날 출국을 하기 위해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누가 ‘똑,똑,똑’ 연구실 문을 노크해서 나가보니 남루한 옷차림의 시골 아주머니가 어린아이를 데리고 서 있었다.

초등학생 아들이 선천성 심장병으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입술이 새파랗게 변하는데 선생님은 꼭 고칠 수 있다고 해서 찾아왔으니 제발 살려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내일 미국 연수를 가니 다른 해결방법을 찾아보라고 했다. 그러나 그 분은 “선생님 만나기 위해 물어 물어서 찾아왔는데 제 아들을 살려주어야 한다.”며 막무가내로 옷깃을 놓지 않았다.

그 말을 들으니 사정이 너무 딱해 뿌리칠 수가 없었으며 측은지심까지 생겼다. 어쩔 수 없이 내일 떠나기 전 서울에서 수술 가능성을 알아보자며 전주역에서 만나자고 했다. 다음날 만나 함께 서울로 올라가 학생시절 스승인 한양대병원 흉부외과 김근호 교수를 찾아 갔더니 그날 따라 일본학회에 가셨단다. 그래서 수련의와 상의를 했더니 최근 국립의료원에서 선천성 심장수술을 시작했다고 귀띔해 주어 곧바로 메디컬센터 흉부외과를 찾았다.

그곳의 과장도 해외 출장을 했다고 해서 망연자실하다 일단 우선 아이가 숨이 차서 전주에서 여기까지 겨우 왔으니 입원을 시켜 해결방법을 모색해 달라고 건의했다. 돌아온 답은 선천성 심장병 수술을 위해 이곳에 입원하기란 하늘에 별따기라는 것이었다.

전국의 가난한 심장병 아이들이 모여들어 현재도 5명의 어린이가 수술을 위해 대기 입원 중이라고 했다.

오! 하느님,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잠시 기도를 한 다음, 수련의에게 입원시킬 묘책이 없겠냐고 사정했더니 곰곰이 생각하다가 “교수님이 쑈를 한번 시도해 보시지요” 라고 했다.

그래서 환우아이를 응급실 앞에서 쓰러지도록 한 후, 황급히 그 아이를 안고 땀을 흘리며 응급실 안으로 뛰어들어 소리쳤다. “여기 어린 학생이 죽어갑니다, 간호사님 어디계십니까? 산소를 주세요. 산소를,”하고 외치며 환자를 응급실 땅바닥에 눕혀으니 수간호사 선생님이 나타났다. 그런데 이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던 응급실 공무원이 화를 내며 다가와 “다른 병원으로 데리고 가세요. 여기서는 접수가 안 됩니다.” 하며 화를 냈다.

나도 화를 내면서 “여보시오! 국립기관 내 응급실 앞에서 환자가 쓰러져 죽어 가는데 응급조치도 않고 다른 곳으로 가라고 쫓아내면 됩니까.” 하고 항의를 했다. 직원들이 퇴근하여야 할 시간까지 겹쳐 직원 간에 접수해 달라, 안 된다, 옥신각신하다 자꾸 시간만 흘러갔다. 그러다 끈질기게 달라붙은 나를 보고 그 직원은 “에이, 나도 모르겠네. 내 후임 교대가 올 테니 알아서 하세요.” 하고 자리를 떠나버렸다.

‘아! 이때가 절호의 기회다’ 생각하고 수간호사와 수련의 도움을 받아 환자를 침대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등록이 이뤄져 입원이 허락되었다. 이후 미국에서 편지 한 장을 받았다. ‘박사님! 국립의료원에 입원시켜 준 환자입니다. 선생님이 떠나신 후 과장님이 외국에서 돌아오셔서 기적적으로 치료되어 퇴원을 앞두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순간 나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라고 되뇌이며 무릎을 꿇고 손을 모아 기도했다.

△ 안득수는 전북대 병원장을 역임하고 현재 성바오로병원 의무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천주교 전주교구 ’성령쇄신봉사회 회장‘, ’10대 평신도 협의회 총회장을 역임했으며 ‘시, 수상집’ <일상을 넘어서> 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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