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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보물

고정완 작가

고정완 작가
고정완 작가

우리 집에는 1달에 1번 밥만 주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토록 군소리 없이 일을 히는 50살 된 살아있는 보물이 있다. 아침이면 나를 깨우고 밤이면 재워주는 충실한 심복이다. 몸통은 네모요, 동그랗게 생긴 얼굴 양쪽 볼에 입이 있고, 하복부엔 여름철 축 늘어진 늙은 소 낭심(囊心) 같은 진자(振子)가 왔다 갔다 바쁘게 움직인다.

이것은 내가 1970년, 모교에서 졸업 기념으로 받은 벽시계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 아내 다음 가장 오래된 식구로 정이 듬뿍 들었다. 식구들이 게으름을 부릴 때면 똑딱똑딱 채찍도 하고 땡~ 땡 경고도 울려준다. 내가 국민학교 때만 해도 시계 있는 집은 23명 중 2명 밖에 없었다.

농촌에서는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일을 끝냈다. 해가 없는 밤에는 초저녁 닭 우는 소리에 잠을 자고 새벽에 첫닭이 울면 일어나는 등 때를 맞추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초저녁에 수탉 한 마리가 울면 온 동네 닭이 따라 울어 일어났다. 그러나 그 닭의 울음은 이튿날에는 들을 수가 없었다. 왜냐 하면 바로 그 이튿날 잡아 없앴기 때문이다.

옛날 골목을 떠돌았던 이야기인데 ‘과부댁 머슴들이 새벽닭이 울면 일어나 일을 시켜서 그 닭이 얄미워 ’닭만 없으면 늦잠도 잘 수 있다‘고 의견을 모아 잡아먹었다. 그리고 이제 편히 잘 수 있다 싶어 좋아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과부댁이 잠도 오지 않아 이제는 시도 때도 없이 일찍 깨워서 닭 잡아먹은 것을 후회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시골에서는 이처럼 길을 물으면 ‘담배 한 참이면 가요,’라고 해서 가까운 줄 알고 갔는데 아주 먼 길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시간관념이 희박해서 한 때는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코리안 타임‘이라 했다. 기차나 버스도 기다리는 시간이 30분은 보통이었다. 그랬던 지금 우리나라는 시간이 정확하고 약속 시간도 잘 지켜 선진국이 되었다.

우리는 시간을 먹고 살고 시간을 먹고 죽는다. 이처럼 시간은 우리에게 아주 값진 것이다. 평생 시계를 만들던 사람이 아들의 성인식 날 시침은 동, 분침은 은, 초침은 금으로 된 시계를 선물했다. 그러자 아들이 “아버지, 시침이 가장 크니까 금으로 초침은 동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다, 초침이야 말로 금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초를 잃는 것이야 말로 금을 잃는 것과 마찬 가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계를 채워 주며 “초를 아끼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시간과 분을 아낄 수 있겠니? 세상의 흐름은 초에 의해 결정되는 것임을 명심하고 성인이 되었으니 너의 초에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고 당부를 했다.

어느 목사가 설교 중 “여러분에게 거금 86,400달러가 생긴다면 저축이나 주식투자는 안 되고 하루에 다 써야 한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하자 여러 답변들이 쏟아졌다. 한참 듣고 있던 목사가 ‘나중에 돌려받을 수 없는 오늘 하루에 쓰십시오.’라 했다. 하루를 시간으로 나누면 24시간, 분으로 나누면 1,440, 다시 초로 나누면 86,400초가 된다. 86,400달러는 하루라는 시간의 돈이다. 따라서 내게 주어진 것은 오늘 뿐이니 오늘에 충실하라는 말이라 했다.

지금도 아침부터 똑딱똑딱 쉬지 않고 50년을 즉 15억7천6백8십만 초를 우리 집에서 일했는데 그 품삯은 얼마나 될까? 이 귀한 보물을 허투루 함부로 대하고 대접도 하지 않았으니 얼마나 원망하고 서운했을까? 우리 모두는 큰 죄인이다. 오늘은 나의 남은 날, 첫날이니 새롭게 알차게 사는 것이 보물에 대한 보답이라 생각하며 항상 고맙고 감사하며 살겠다.

△고정완은 초등교장으로 정년하여 ‘대한문학’으로 등단했다. 한국서예가협회 초대 작가이며 전북수필문학회 이사로 있다. 수필집 <백두산 천지에 손을 담그고> 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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