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만
이사를 가야겠다고 생각하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들리는 자동차 급브레이크 밟는 끼익~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그런 생각이 더 들었다. 이놈의 자동차는 한밤중에도 쉴 줄을 모른다. 조마조마하다. 길 한 번 건너가려면 수도 없이 두리번거려야 한다.
그러다가 기어이 사고가 났다. 막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끼익~ 하면서 툭 하는 소리가 났다. 차들이 주욱 늘어서고 무슨 구경거리처럼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길거리에 피가 흥건하고 머리를 치인 할아버지 한 사람이 누워있었다. 경찰차가 달려오고 앰블런스가 할아버지를 싣고 갔다. 이미 숨은 끊어진 상태라 했다.
그런데 거기에서 좀 떨어진 곳에 보따리 하나가 놓여 있었다. 방금 그 할아버지가 들고 다니던 것이라 하였다. 사람들이 보따리를 향하여 둘러섰다. 경찰서로 가져다주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고 병원으로 가져다주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보따리를 펴보는 사람은 없었다.
할아버지가 마지막 놓고 간 보따리 그 속에는 과연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 공수래공수거라고 하더니 죽는 순간엔 마지막 보따리까지 훌쩍 던져두고 빈손으로 떠나갔다. 요즈음은 모양도 좋고 기능도 편리한 가방이 많으련만 아무도 들고 다니지 않는 작고 허름한 보따리 하나. 결국 그는 그것마저 던져두고 떠나간 것이다.
어찌 그 사람뿐이랴. 누구나 마지막 갈 때는 작은 티끌 하나라도 들고 가지 못한다. 그런데 왜 보따리를 들고 다니는 것일까. 보따리는 대개 집을 나서서 멀리 갈 때에 챙기는 필수품이다. 아니면 잠시 며칠 길을 떠나거나 집을 떠나 잠자리가 바뀔 때 필요한 물건들을 줄이고 줄여서 들고 갈 수 있을 만큼만 챙겨 넣는 행랑이다. 말하자면 작은 살림살이인 것이다.
이처럼 보따리도 여러 가지가 있다. 달랑달랑 손에 들고 가는 작은 것도 있고, 여러 가지 물건이 골고루 들어있는 보따리장사 규모의 큰 보따리도 있다. 예를 들면 과거를 보러 서울로 떠나는 선비의 보따리에는 출세의 길이 들어있고, 외국 방문을 위해 출국하는 사람들의 보따리에는 그 나라의 문물이 들어 있기도 하다.
그런데 죽음의 길을 떠나면서 챙겨 든 보따리 하나. 그것이 어쩌면 우리네 인생행로의 행장일 것이다. 긴긴 인생의 행로라 하여 어찌 많은 것들을 챙겨 들고 다닐 수 있겠는가. 결국은 자기가 들고 다닐 수 있을 만큼의 무게이리라. 어쩌면 한 손으로 들 수 있는 보따리 하나가 전부일지도 모른다. 그것 마저도 생의 행로를 마감할 때는 훌쩍 던져두고 간다.
가면 오고, 오면 가는 생노병사의 인생이거늘 공수래 공수거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다. 어짜피 우리는 가는 것이니 하루를 살아도 하늘과 땅에 부끄러움 없이 살고 청정한 본래 마음을 잃지 말자. 욕심내어 큰 보따리 만들지 말고 어느 때 놓아도 아깝지 않을 작은 보따리 하나만 들고 다닐 일이다.
이제 돈과 권력, 명예를 뒤쫓아 달리던 모습에서 걸움을 멈추고,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게 인생’임을 명심하고 평범 속에 행복을 찾도록 노력하자. /이용만
△이용만은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을 하여으며 『수필문학』 등단했다. 한국문인협회 임실지부장 역임했으며 수필집 『세월 앞에 내가 서서』 외 다수가 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