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
 
   가을의 끝자락에서 대부분의 나무는 잎이 다 졌고 듬성듬성 몇 나무가 마지막 정열의 단풍을 불태우고 있다. 아파트 단지 내에 쌓이는 낙엽의 양이 며칠 전에 비해 크게 줄었다.
낙엽이 한창 지던 때 이른 아침 산책길, 아파트 경비원이 낙엽을 쓸고 있었다. 마치 흥부 내외가 돈 궤와 쌀 궤를 쏟아 부을 때처럼 쓸고 돌아보면 낙엽은 도로 수북이 쌓였다. 아침 식사 후, 출근길에 보니 경비원은 아까 그 자리에서 또 낙엽을 쓸고 있었고, 어둠발이 내릴 무렵 퇴근길에 봤더니 경비원은 오전에 쓸던 그 자리를 여전히 쓸고 있었다. 비오는 날 나무에 물을 주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일을 고생스럽게 하고 있는 경비원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어 말을 건넸다. “놔뒀다가 3~4일 후에 한꺼번에 쓸어내시지 그러세요?” 경비원이 답했다. “그런 말씀 마세요. 낙엽이 조금만 쌓여있어도 관리소장한테 주의를 받습니다.” 내가 되물었다. “아니, 가을에는 낙엽이 날리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밟기도 해야 주민들 정서에도 좋고 아이들 교육에도 좋을 텐데요… 제가 관리소장께 2~3일 만에 한 번씩만 쓸자고 건의해 볼까요?” “감사한 말씀입니다. 아마 관리소장도 2~3일 만에 한 번씩 쓸자는 생각을 했을 거예요. 그러나 일부 주민들로부터 강한 항의가 들어오니까 어쩔 수 없이 계속 쓸어내기로 방침을 세운 거지요.” 내가 다시 물었다. “주민이 항의를 한다고요?” “그럼요, 화단에 떨어진 낙엽도 안 긁어내면 청소를 안 했다며 항의하시는 주민도 있습니다.” 그랬었다. 낙엽이 쌓이는 걸 두고 보며 가을 정취를 느끼다가 한꺼번에 쓸어내자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낙엽을 지저분하고 귀찮은 존재로 여겨 빨리 청소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다음날 오후, 아파트 다른 동 앞을 지날 때 다른 경비원이 낙엽을 쓸고 있기에 내 딴에는 노고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애쓰십니다. 모아 두었다가 한꺼번에 쓸어내면 될 텐데 매일 쓸어내시려니 힘드시지요?” 경비원이 말했다. “아니요, 그때그때 쓸어내야 합니다. 저는 쌓여 있는 나뭇잎을 보면 제 마음까지 심란해져요. 개운하게 쓸어내 버려야지!” 그랬었다. 비질이 힘든 게 아니라, 쌓여있는 낙엽을 두고 보는 것이 더 어렵고 심란한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의견이 다르니 아파트 단지 내에 쌓이는 낙엽은 그때그때 쓸어낼 수밖에 없다. 쌓아둔 채 2~3일만이라도 낙엽의 정취를 느껴보자는 의견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가을이 깊어지면 대한민국의 모든 아파트 단지나 동네 골목은 획일적으로 그때그때 ‘낙엽 쓸기’를 해야 한다. 언젠가는 쓸어낼 것 그때그때 깨끗하게 쓸어내자는 의견 앞에서 ‘낙엽을 밟아보자’는 낭만적 이야기는 발붙일 곳이 거의 없는 것이다.
김일로 시인은 “떡이 좋다는 소리가 진동하는 자리에서 꽃도 좋다는 이내 말은 실낱같은 모기 소리.”라고 읊고서, 이 시를 다시 7자의 한시(漢詩)로 바꿔 “병화일치하세월(餠花一致何歲月)”이라고 썼다. “어느 세월에나 떡과 꽃이 일치할까?”라는 뜻이다. 낙엽을 깨끗이 쓸자는 건 쓰레기를 치우자는 ‘현실’적 요구이다. 낙엽을 밟자는 것은 ‘하면 좋지만 안 해도 그만’인 ‘낭만’이다. 현실과 낭만이 일치하는 아름다운 세월은 언제나 찾아올까? 낙엽이 말하는 것 같다. “돌아갈 흙이 없어 귀찮은 존재, 쓸려서 실려 나가는 도시가 슬퍼요!”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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