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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아침을 여는 시] 시비(詩碑)가 시비(是非)가 되자

정군수

김해강 시비가 파헤쳐져 산골로 던져졌다

28년 동안 덕진공원에서 살았던 시비는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그 정수리에서 태양을 섬기던 삼족오는

쇠망치를 맞고 사라진지 오래고

깊게 새겨진 「금강의 달」도 어둠이 되었다

금간 시비는 얼굴도 가리지 않은 채

운구에 실려 곡비도 없이 낯선 길을 갔다

기림을 받던 시인은 무대 뒤로 사라졌다

우리는 무엇을 보았던가

역사의 입을 벌려 무엇을 듣는가

저만치 상투 틀고 감발한 동학장군이

개남아 개남아 김개남아

너무도 많이 불러 남의 이름이 된

내 이름이 누구인가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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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 때문에 시비가 붙고 말았다. 시인을 기리기 위해 전주 덕진공원에 세워졌던 시비 옆에 어느 날인가는 단죄비도 세워졌다. 시비 곁을 일부러 에돌아서 지나다니는 동안 속담에 ‘업어다 난장 맞힌다’는 말이 ‘딱 덜어지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해강 시인의 시비는 시빗거리 없는 산골 마을에서 소쩍새 울음소리에 삭아갈 것이다. 힘없는, 주권 없는 나라의 백성은 언제든 시비조로 조롱받을 일에 쌔고 쌔게 휘말릴 것이다. 거친 역사는 원치 않는 선택을 강요할 것이다. 누군가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두고두고 후배들을 보는 마음이 착잡할 것이다. /김제김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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