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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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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봉금 소리꾼․동문창창 대표

소리꾼으로 살아가며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어떻게 판소리를 시작하게 됐어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전주에서 자랐기 때문에요.’라고 대답한다. 모든 전주 사람이 전주에서 나고 자랐다고 판소리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나는 전주 사람이라 판소리를 시작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쯤 엄마 손을 잡고 풍남문 근처에서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사람의 판소리를 보러 갔다. 그리고 다음 해 가장 친했던 학교 친구 중 한 명이 아쟁이라는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나도 국악을 해야겠다’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나는 학교의 방과후 수업으로 처음 판소리를 시작하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이 길로 들어선 건 지금의 스승님을 만나서부터다. 지역에서 소리꾼 선생님을 소개받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20여 년을 판소리를 해오게 됐다. 나에겐 판소리가, 그리고 국악이 낯설고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여느 동네마다 있는 피아노 학원과 같았다. 자주 접할 수 있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배울 수 있는 음악. ‘판소리는 익숙한 음악’이었다. 그리고 그날의 ‘경험’이 어른이 된 나를 지금껏 이 길에 있게 했다. 

 

대학 2학년. 판소리만 할 줄 알던 내가 제대로 된 창극을 처음 접했던 건 주호종 연출님을 만나고 나서부터다. 선생님께서 소리꾼으로 다니던 국립창극단을 나와 창극 연출가로서 대학교에 출강을 하기 시작하셨던 해다. 나는 운이 좋았다. 무엇이든 하고 싶은 이십대 초반의 소리꾼들과 자신의 작업을 마음껏 하게 된 소리꾼 출신 연출가와의 만남이었다. 말 그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선생님께서 하자고 하는 작품은 모두 했다. 선생님과 함께 창극을 만드는 작업이 신나고 재밌었다. 얼마나 재밌었던지 밤새는 줄도 날이 가는 줄도 몰랐다. 창극실에서의 순간들이 행복했다. 춘향이도 심청이도 오롯이 다 자신의 몫이던 소리꾼들이 모심는 농부들 속 한 명이 되어도 용왕님 옆에서 파초선을 부치는 수궁 선녀가 되어도, 온 세상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처럼 저마다 뿌듯한 존재감이 있었다. 작업을 완성해가는 과정들 속에 충만했다. 오로지 무대만을 바라보고 무대만이 전부인 줄 알던 지난날 들의 내가 무대로 가는 길과 숱한 연습의 시간 들이 얼마나 가치 있고 아름다운 과정인지를 깨달았다. 커튼콜의 인사를 위해 달려가는 장면 장면이 창극이면서도 인생 같았다. 이렇듯 창극의 세계를 발견하는 재미로 나날이 새로웠다. 그때 그 ‘경험’으로 지금의 나는 판소리를 극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주호종 연출님은 연출가 이전의 소리꾼으로 그리고 인생의 선배로 어린 학생 소리꾼들을 보듬으셨다. 그 그늘 안에서 모두 차근히 성장했다. 그래서 오늘날 창극 배우가 되기도, 창극 연출가가 되기도 하였다. 

 

부모님은 나에게 사랑을 가르치지 않으셨지만 매일 아침 차려주신 아침밥을 마주하며 ‘이게 사랑이구나’ 하고 느끼게 하셨다. 판소리 스승님은 나에게 기술을 가르치지 않으셨지만 토해내듯 울부짖는 춘향의 이별가로 ‘이게 바로 소리구나’ 하고 깨닫게 하셨다. 연출님은 나에게 연기를 가르치지 않으셨다. 대사 한마디, 서로가 함께하는 연습의 가치 속에 삶이 무엇인지를 바라보게 하셨다. 훌륭한 스승은 이렇듯 경험하게 한다. 예술적 경험이 얼마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지, 혹은 그 자체로 이끄는지 내가 이렇듯 내 인생을 걸고 실감하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경험’의 힘은 무섭다. 인생 자체를 전혀 새로운 세상으로 데리고 간다. 창극이라는 어쩌면 다른 이의 삶을 표현하는 예술을 만들어가며 결국 내 인생을 발견하게 됐다. 그 과정 속에서 예술적 감수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정서적 공감이 얼마나 중요한 능력인지를 깨닫는다. 

우리 모두가 서로의 삶에 경험 제공자임을 잊지 말아야 할 이유이다. 

故주호종 창극연출님의 1주기를 추모하며. 

/송봉금 소리꾼․동문창창 대표

△송봉금 대표는 모던판소리 대표를 겸하고 있으며 전북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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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소리꾼 #판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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