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가 한창이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막말은 으레 단골 메뉴다. 고성과 삿대질, 호통과 으름장, 폭언과 인신공격이 난무한다. 정회는 기본, 파행이 다반사다. 올해는 수위가 한층 높아졌다. “차라리 혀 깨물고 죽지 뭣 하러 그런 짓 합니까”, “뻘짓거리 하다가 사고로 죽어도 공상이냐”, “개나 줘버려”, “너나 가만히 있으세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첫 국정감사. 여야가 뒤바뀐 탓일까. 서로를 벼르며 으르렁댄다. 창과 방패, 공격과 수비의 소재도 즐비하다. 윤 대통령의 외교 참사와 비속어 논란, 김건희 여사의 각종 의혹,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 등 휘발성이 큰 쟁점 현안들이 뒤얽혀 있다. 그야말로 여야 간 힘겨루기의 한판 장이 섰다.
정치인의 막말은 의도된 발언일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국정감사에서는 그럴 개연성이 높다. 보여주기식 다목적 포석이 그것이다. 첫째는 피감기관을 상대로 한 ‘갑’의 힘 과시용이다. 둘째는 대통령이나 당 대표를 의식한 내부 충성용이다. 셋째는 여론과 민심을 의식한 대(對)언론용이다. 의사진행 발언은 불쏘시개다. 자신을 한껏 드러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의사진행 발언은 어느 순간 의사방해 발언으로 변하고 만다. 정책과 민생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국정감사는 행정부를 감시 견제하는 국회의 권한이자 의무다. 그런데 국감에 국정이 없는 꼴이다. 빈 수레가 요란하듯 정치판이 너무 시끄럽다. 정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말이 있다. 자신의 부고(訃告) 기사 빼고는 좋은 것이든 설사 나쁜 것이든 언론에 보도되는 것이 낫다고.
말은 정치의 처음이자 끝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의 99%는 말”이라고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를 가리켜 “흙탕물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이라 했다. 말의 힘이 곧 정치인 것이다. 품격과 인품의 ‘품(品)’ 자에는 입 ‘구(口)’가 세 개 있다. 언어와 인격의 상관관계를 의미한다. 시끄러운 말에 품위가 있을 리 만무하다. 시끄러운 정치에는 언론도 한 몫을 거든다. 아니 한 몫을 뛰어넘는다.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 언론이 정치인의 저질 언어를 무책임하게 퍼 나르는 것이다.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자극적 막말을 무한 재생 반복한다. 시청률을 염두에 둔 선정적 행태다. 결국 욕설에 가까운 정치인의 폭언은 소셜미디어를 타고 번진다. 건강한 사회는 그만큼 더 멀어진다.
정치에 대한 우리 언론의 취재 방식과 낡은 문법을 고쳐야 한다. 언론사 정치부에서만 잔뼈가 굵은 한 전직 기자 선배는 일갈했다. “정치부 기자가 구태 정치를 바꾼 적이 있느냐”고. 정치권의 말싸움과 정치인의 입만 바라보는 언론의 게으른 행태를 꼬집은 말이다. 정치부 기자는 ‘오늘’이 아니라 ‘내일’을 기록해야 한다. 공적 사안에 대한 분석과 전망, 나아가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과거에는 언론이 「오늘의 국감 스타」나 「국감을 빛낸 인물」을 선정했다. 자연스레 국회의원들끼리 선의의 경쟁이 이어졌다. 혹여 막말을 내뱉은 정치인은 여론의 비난 뭇매를 피해 가지 못했다. 하지만 요즘 등장하는 정치인의 막말은 다분히 방송 카메라를 의식한 계산된 행위로 비칠 때가 많다. 이번 국감도 유튜브로 실시간 중계되면서 막말의 강도와 말싸움의 빈도가 상승 일색이다. 정치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시끄러운 막말은 사라져야 한다. 이와 함께 정치인의 말만 쫓아다니는 언론의 취재 관행도 바뀌어야 한다.
박종률 우석대 교양대학 교수·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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