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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면 약한 자를 쳐도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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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

“마땅히 잘라야 할 때 자르지 않으면 도리어 자르지 않은 것이 만드는 혼란을 받게 된다(當斷不斷, 反受其亂).”라는 말이 있다. 『사기』 「춘신군열전」, 『한서』 「곽광전」 등 여러 역사서에 나오는 말이다. 끝내 용서를 빌지 않는 악은 단호하게 잘라내야 함을 천명한 말이다.  

수년 전만 해도 친일파로 지목받는 사람들은 자신 혹은 조상의 친일행각이 드러날 까봐 ‘쉬쉬’하며 안절부절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요즈음은 아예 드러내 놓고 “그래, 나 친일파다. 어쩔래? 친일이 뭐가 나쁜데?”라고 대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여당의 대표 격인 인물도 일본 우익들 주장과 똑 같은 발언을 해 놓고선 “그게 왜 식민사관이냐?”며 도리어 언성을 높였다. “조선은 일본군의 침략이 아니라 안에서 썩어 문드러져 망했다.”,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라는 주장에 담긴 문제를 그는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조선이 내부적으로 부패가 많았고 힘이 없었던 점은 깊이 반성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의 침략이 정당화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강한 나라는 약한 나라를 침략해서 식민지화해도 된다는 논리를 인정하면 세상은 완전히 약육강식의 동물의 세계가 되고 만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것도 정당해지고, 힘만 가진 일부 악덕 검·판사가 힘없는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일도 공평하고 정당한 일이 되며, 힘센 학생이 약한 학생을 괴롭히는 학교폭력도 당연한 일이 된다. 끔찍한 일이다. 그럼에도 여당의 대표는 자신이 한 말의 잘못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내가 뭘?”이라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게다가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는 주장도 고수하고 있다. 임진왜란은 물론, 을사늑약과 한일병탄 때에도 우리는 일본과 죽기로 싸웠다. 다만 부패한 기득권은 싸울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도망치거나 나라를 통째로 넘겨주었다. 그런데 그런 부패한 기득권의 편을 들기라도 하려는 듯이 죽기로 항거한 의병들과 독립을 위해 피를 흘린 애국지사들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한 채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라는 말을 하니 분통이 터진다. 광복되었을 때 분명하게 잘라냈어야 할 친일파들을 잘라내지 않은 탓에 도리어 그들이 야기하는 난(亂)을 당하며 국민들이 분개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일본이 식민통치를 하면서 우리의 근대화를 도왔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이처럼 잘 살게 되었다.”라는 ‘식민지 근대화론’이 날로 퍼지고 있다. 일제의 엄청난 수탈은 잊은 채, ‘편리한 수탈’을 위해 그들이 건설한 철도와 항만시설 등을 거론하며 그들에게 감사하자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인터넷을 타고 퍼지는 터무니없는 거짓말과, “친일파면 어때?”라고 오히려 되묻는 뻔뻔한 사람들의 득세와, “겁도 없이 검찰을 무서워하지 않다니?”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위세로 인해 엄청난 가치관의 혼란이 야기되면서 우리 사회는 옳고 그름을 가리기 힘든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정의는 빛을 잃고 다만 패거리지어 힘을 행사하려는 무리들이 판을 치고 있다. 마땅히 잘라내야 할 것은 잘라내지 않은 후유증이다. 『한비자(韓非子)』에는 이런 말이 있다. “국가의 안위는 힘의 강약에 달린 게 아니라, 시비를 분명히 하는 데에 달려 있다.”고. 국민이 깨어나 새로운 ‘국민문화’의 힘으로 나라를 구해야 할 때이다.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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