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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동 공무원’ 숨을 데가 없다

공무원을 요즘 한마디로 규정하기가 쉽지 않다. 역할은 크게 바뀌지 않았음에도 시대 흐름에 따른 인식 변화 때문이다. 케케묵은 얘기지만 과거엔 심부름꾼이란 뜻으로 국민의 ‘공복(公僕)’ 으로 불렀다. 주민 민원을 처리하는 이른바 해결사로 통한 것이다. 지금에 와서 인허가와 단속권, 보조금 권한을 가진 그들에게 이런 사회통념이 통할지가 의문이다. 무엇보다 전체 공무원 이미지에 먹칠을 하는 일부 직원들의 무사안일 의식과 직무 태만에 민원인들은 학을 뗀 지 오래다. 유권해석을 해도 법령이나 규정 자체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혹 뒤탈이 날까 뭉개고 발뺌하기 일쑤다. 일선 현장에서 공무원의 업무 처리 속도는 민원인들의 사업 성패와 함께 경제적 손실까지 좌우한다. 인허가 등 문제로 관공서에서 복잡하고 불합리한 절차를 경험한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는 게 공직 사회 오랜 관행과 바뀌지 않는 낡은 사고방식이다. 

혹독한 IMF를 거치면서 2000년대 우리 사회 ‘공시족’ (공무원시험 준비생) 열풍이 불어닥쳤다. 재벌 해체 등을 겪으며 안정된 직장에 대한 인식이 바뀌자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의 인기몰이는 폭발적이었다. 공직 사회에 이들이 대거 등장함으로써 톡톡 튀는 개성까지 더해져 분위기 또한 크게 달라졌다. 지나치게 딱딱하고 엄격했던 예전과 달리 생동감 있는 모습이 보기에도 좋아 보였다. 그렇지만 이렇게 달라진 모습과 달리 신세대의 민원 처리 방식도 과거에만 얽매여 구습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설령 업무 숙지가 미흡한 상황에서도 민원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아 민원인의 속을 태운다. 선배 동료뿐 아니라 전임자에게 SOS를 보내 명확한 해법을 찾아야 하는 데도 소극적 태도로 일관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재작년 지인이 완주에 농촌 주택을 지을 때 일이다. 그가 은행 대출 업무를 보던 중 담당자가 도시 전입자를 대상으로 한 저리 상품의 농촌 정착 지원금이 있다고 안내했다. 곧바로 근처에 있는 행정센터 담당 공무원에게 그 사실을 확인했는데 그는 비슷한 유형의 상품은 있지만 그와 똑같은 상품은 없다고 했다. 농협 직원이 여러 차례 그 상품을 취급했다고 재차 확인을 요청했는데도 그는 모르쇠로 일관해 결국 군청 직원에게 지원금이 있다는 걸 최종 확인했다. 그냥 지나쳤다면 지인 입장에서 감내해야 할 경제적 손실은 막대했을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민원인 불만이 가장 큰 것이 동사무소에서 등초본 등 민원서류 뗄 때다. 간혹 다른 창구는 한산한 데 이 창구만 대기자가 많은 경우 각자 업무 분담이 엄격해서 그런지 동료간 ‘품앗이’ 가 안되기 일쑤다. 직원들은 뚫어져라 모니터만 쳐다봤지 늑장 처리에 잔뜩 화가 난 민원인 표정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의 업무 매뉴얼을 몰라 섣부른 판단은 불가하지만 시민들 입장에서 보면 공무원의 직무 태만으로 인식하기 마련이다.  

디지털 시대 시민들의 권리 의식이 어느 때보다 강한 만큼 공무원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높이도 달라졌다. 더욱이 양방향 소통이 활발해진 지금 공무원의 일거수일투족은 곧바로 온라인 피드백이 가능할 정도로 변화 속도가 빠른 편이다. “가만히 있으면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데 왜 나서 문제를 키우냐” 는 공직 사회의 복지부동 불문율은 이미 유통 기한이 지났다. 그때 그 상황에 맞게 민원인 중심의 업무 처리를 요구하는 쓴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그간 무사안일함 뒤에 숨어 있던 공무원의 무소신과 무책임이 SNS를 통해 사회에 낱낱이 고발되는 추세다. 이처럼 변화무쌍한 상황에서도 결코 바뀌지 않는 공무원의 본분이 바로 민원인의 ‘행정 도우미’ 역할이다. 인허가와 단속권을 부여한 것도 그들의 이런 책무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올해 9급 국가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1992년 이후 31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공무원의 위상과 존재 이유를 새삼 되새겨보는 요즘이다. 김영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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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인일 공무원
김영곤 kyg@jj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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