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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금요수필]이런 실수만은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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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남

어머니는 나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뒤 얼마 동안은 교실 뒤쪽에 서서 공부하는 내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산수 시험을 보던 어느 날, 가운데 분단의 맨 끝자리에 앉아있던 내 곁에 다가와, 무릎을 쪼그려 앉던 어머니가 손가락으로 톡톡 문제를 가리키며 동그라미를 하나 더 그려 넣으라고 소리 죽여 재촉했다.

왼쪽에 제시한 숫자보다 동그라미 하나가 더 많은 시험지는 결국 백점을 놓쳤다. 나는 집에 돌아와 엄마 때문이라며 한참을 울었고 엄마는 무척 속상해하며 나를 달래느라 어쩔 줄 몰라 했다. 어머니의 욕심에 뼈아픈 실수였지만, 어쩜 내 소신대로 하지 못한 잘 못이었다.

중학교 시절, 나이 많은 물상 선생님은 말도 빠르고 성격도 몹시 급했다. 선생님의 두 눈이 늘 충혈되어 있던 것은 전쟁터에서 적군을 많이 죽여서 그렇다더라며 그 말이 사실인 양 친구들은 이야기를 퍼뜨리기도 했다.

판서를 하는 선생님의 분필 소리와 우리들의 연필 사각거리는 소리 외엔 교실이 쥐 죽은 듯했던 그 날, 지우개를 빌리느라 두런거렸던 뒷자리의 친구가 이내 내 등을 쿡쿡 찔렀고 나는 지우개를 전해 주려 팔을 뒤로 올렸을 뿐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휙 뒤를 돌아보던 선생님이 벼락같은 소리로 "너, 너, 너, 거기 네놈 이리 나와!" 하고는 나를 포함한 친구들을 찍어 불러내더니 우리를 무릎 꿇려 앉히고는 이유불문 없이 넓적하고 두꺼운 검정 표지의 출석부로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난생처음 당하는 모욕적 체벌에 견딜 수 없는 수치심에 억울함은 뒷전이었다. 이미 고인이 된 선생님이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문득문득 생각 날 때면 아직도 원망과 분노의 마음이 지워지지 않는다.

새색시 시절의 여름, 외출을 준비하던 시아버지의 덜 마른 모시 두루마기를 어머님이 나에게 급히 다림질을 맡겼는데 하필 그때 검지손가락을 베어 동여매고 있었다. 그래서 거즈에 배어 나온 피가 어찌하다 하얀 두루마기 옷깃에 살짝 묻었다. 그래서 당황한 나머지 얼른 물수건으로 비벼댔더니 그 자리가 연분홍으로 번지고 말았다. 다시 물수건으로 비비고 마른 수건으로 두들겨대며 허둥지둥 물기를 빼 다림질을 해서 올렸다. 

그런데 하얀 두루마기 옷깃에 설핏한 분홍자국은 슬쩍봐도 티가 났는데 긴장하고 있던 새 며느리의 눈치를 아셨는지 아무 말씀이 없었다. 칠칠맞고 조심성 없던 내 손에 땀이 흥건했다. 수 없는 실수를 이어가며 사는 것이 인생 아닐까. 말 실수든 행동 실수든 내 잘못에는 관대하면서 같은 실수를 이어왔다. 그러면서도 내 인격이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상대에게는 한 치의 이해도 없이 그 잘못에 화를 참지 못한다. 조금만 더 이해하고 더 신중하고 인내했더라면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았을 거라는 후회를 한다. 그러면서 똑 같은 실수는 다시 하지 않겠다도 다짐하지만 아직 덜 익은 인생으로 남았다.

내 삶을 이어온 크고 작은 이런저런 실수야 지나간 이야깃거리로 세월에 씻겨 간다지만, 정작 내 의지로도 어찌할 수 없는 앞으로의 실수가 큰 걱정이다. 냉장고 문을 열고도 한참을 멍하니 서서 문을 연 이유를 생각해 내느라 애쓰고, 현금 인출기에서 돈은 두고 통장만 빼오는 한심함에 내 머리를 쥐어박는 일이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더 두렵고 끔찍한 일은 가족의 인연과 정(情)마저 잊어버리는 치매라하니 제발 이런  일 만은 다가오지 않기를 간절히 소원해보는 것이다.

△김덕남 작가는 <대한문학>,<에세이스트>로 등단했다. 전북문인협회, 전북수필문학회, 행촌수필문학회, 교원문학회 회원, 수필집 <아직은 참 좋을 때>, <여섯 교우의 분향> 한국수자원공사 전국 물 사랑 공모전 은상을 수상했으며 전주 기령당 충효(忠孝)양양 글짓기 공모전 대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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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 #김덕남 #금요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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