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전주시로부터 난데없는 ‘통보’를 받았다. 전주시 향교길 131번지. 아내가 40년 동안 산, 내 처갓집. 향교와 골목 하나를 두고 붙어 있는 집을 떠나라는 말이다. 삼십팔 년 전, 광주에서 올라온 친구 녀석들이 남문시장 건널목에서부터 "함 사세요" 온 동네 떠나갈 듯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그 반가운 소리를 듣자마자 아내의 이쁜 친구들이 애써 애교를 부리며 함잡이를 집안으로 밀어넣던 그 집은 60년 세월을 간직한, 낡고 키 작은 보통 한옥이다. 우리 아이들은 그 집 마루, 장독, 화단, 안방 아랫목을 오가며 할머니 할아버지 품속에서 자랐다. 시간이 흘러 두 분은 작고하셨지만 지금이라도 대문을 열고 '엄마~'하고 부르면, 머리에 수건을 두른 장모님이 치마에 쓱쓱 손을 닦으며 부엌에서 나오실 것만 같은 기억의 터다. 아내는 시간만 나면, 옛집에서 며칠을 묵으며 엄마와 아버지의 추억을 만나고 온다.
한옥마을이 뜨면서 관광객 발길이 잦아지는데 오히려 동네 집들은 하나씩 사라졌다. 포크레인에 찍혀 장독과 화분들, 장롱 세간살이 모든 것들이 제 속살을 드러내면서 스러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우리 차례라 한다. 아무리 관(官)에서 하는 일이고 무슨 문화시설을 확충하는 명분이라 해도, 몇푼 보상을 줄테니 40년 추억이 서린 집에서 ‘나가라’고 하는 말을 그냥 예, 하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 땅은 향교 소유라서 임차인의 자격으로 집을 짓고 수십 년을 살아온 곳이다. 한옥마을이 관광지로 변하기 전까지는 동네 사람들 모두 골목과 방천(防川)을 끼고 그저 그렇게 느리고 천천히 노자(老子)처럼 살았다.
동네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한 것은 1999년 ‘전주한옥마을 조성사업’이 시작되면서 부터이다. 사람이 살던 오래된 한옥은 야금야금 자취를 감추고, 어디서 통째로 떠왔다는 고가 한옥이 그 자리에 들어서고 동헌, 무슨 전통문화원 같은 이름을 달았다. 전통의 향교를 제대로 복원하는 것도 아니었다. 길가의 집들은 다 상가가 되었다. 지금 여기 버젓이 사람이 사는 최소 50년이 넘은 한옥들을 다 파괴하고, 사람살이의 흔적을 지워버린 곳에서 무슨 관광 활성화가 의미있을까. 20여 년 전에도 그랬다. 당시 한참 뜬다던 청학동, 낙안읍성을 애써 가보면 사람은 못 만나고, 식당과 숙박업소만 즐비했다. 억지로 조성해놓은 장터 국밥집과 전시용 마을길밖에 없었다. 난, 다시는 그런 종류의 죽은 전통 마을에는 가지 않는다. 전주한옥마을도 이 전철을 따라간다. 백번 양보해서, 태조로 근처는 몰려오는 관광객을 위한 접객 공간으로 상업화한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향교길은 그런 모습이어서는 안 된다. 이런 정책을 추진하는 이들에게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어려운 말을 굳이 덧붙일 필요도 없이 간단한 질문을 드리고 싶다. 왜, 개인의 기억은 항상 관의 힘에 밀려 사라져야 하는가를 묻고 싶다는 것이다. 낡고 허름하지만, 돌아가신 부모님과 우리 아이들이 쌓은 가족의 기억이 왜 이렇듯 쉽게 뿌리 뽑혀야 하는 건가, 그것이 옳은 일인가, 우리는 이의가 있다고 손들어 항변하는 것이다. 사람이 떠나가는 마을에 관광객만 밀려 다니는 이런 류의 변화가, 한옥마을 개발이 그저 좋기만 한 현상인가. 평범한 동네사람들은 언제나 일방적인 행정에 피해만 봐야 하는가. 그것이 전주의 진짜 얼굴인가 묻고 싶다.
/이광수 부산외국어대 교수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