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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선침몰> 참사의 시각, 세월호에 어떤 일이…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와 관련 선장과 항해사등 승무원 3명이 구속된 가운데 사고 원인이 무리한 항로변경, 즉 변침(變針)에서 시작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승선에서 하선때까지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선장의 도저히 이해못할 행동이 상상을 초월한 인명피해를 부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검경 합동수사본부 수사 내용과 구속된 선장, 항해사의 진술, 해양전문가의 의 견 등을 토대로 사고 당시 상황을 재구성했다. 승객 등 475명을 태운 세월호가 인천항을 떠난 지 9시간여만에 전남 진도군 조도면 '맹골수도(孟骨水道)'에 들어선 것은 16일 오전 8시42분께. 운항 경력 13개월째, 입사 5개월이 채 되지 않은 항해사 박모(25.여)씨와 조타수 조모(56)씨의 눈앞에 들어온 것은 거세게 내려오는 물살이었다. 평소에도 소용돌이가 예사인 이 구간은 이날 막 사리(15일)를 지난데다 썰물때와 맞물려 물살이 더 거센 것으로 알려졌다. 이 악명이 높은 맹골수도 항로에서 첫 조타지휘를 맡게 된 박씨는 조타수 조씨에게 방향전환을 지시했다. 이 곳은 병풍도를 오른쪽으로 끼고 제주를 향해 뱃머리를 돌리는 이른바 변침점이다. 조씨는 구속전 진술에서 "항해사 지휘에 따라 평소대로 조타륜을 돌렸다. 하지만 평소보다 많이 돌아갔다"고 말했다. 조씨는 "내가 실수한 부분도 있지만 타륜이 유난히 빨리 돌았다"고 말했다. 이는 일반적인 항로에서 보통 5도 안팎의 조타기 조정이 이뤄진 점을 감안하면 5도 이상 돌렸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검겅 합동수사본부도 이 대목에서 항해사와 조타수의 결정적 실수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물살이 거센 맹골수도에서 23도 정도로 작은 각도로 전환하는 이른바 소각(小角)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김삼열 전 목포지방해난안전심판원장은 19일 "뱃머리를 심하게 꺾는 과정에서 거센 물살 저항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며 "순간 배가 휘청거리고 복원되지 않자 당황해 조타기를 더 무리하게 조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진도 해상관제센터(VTS)에서 확인된 세월호 항적에도 8시45분께 우현을 시도했으나 배는 계속 좌현으로 쏠렸다. 항해사와 조타수는 이를 잡기 위해 우현으로 끝까지 뱃머리를 돌렸으나 세월호는 9분만에 사실상 추진동력을 잃고 물살에 왔던 길로 밀렸다. 배가 좌현으로 밀리자 제대로 결박되지 않은 화물, 차량 등이 쏟아지면서 세월호는 더 급속히 기울기 시작했다. 많은 승객들이 배가 기우뚱한 뒤 '쿵'하는 소리가 났다는 진술도 이를 뒷받침 하는 대목이다. 해양 전문가들도 세월호가 외부 충격에 의해 침몰한 것이 아닌 만큼 선체에는 파공(破孔) 흔적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국민들의 공분을 산 것은 사고 전후 세월호 선장 이준석(69)씨가 벌인 행적이다. 수사결과 이씨는 맹골수도 항행을 박씨에게 맡기고 자신은 선실에서 푹 쉬고 있었다. 탈출 당시 입고 있는 반바지 차림은 이를 잘 보여준다. 배가 기우뚱하자 당황한 채 조타실에 뛰어온 선장은 우왕좌왕 시간만 허비하다 수백여명의 승객들은 선실에 남긴 채 자신만 배를 빠져나왔다. 그러나 이씨는 구속전 진술에서 '승객에게 대기하라'고 한 이유는 "조류가 빠르고, 수온도 차고, 주변에 인명 구조선이 없어서 그랬다"고 변명했다. 서둘러 유보갑판 등으로 대피하라는 말만 했어도 수백명이 목숨을 잃은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 사건·사고
  • 연합
  • 2014.04.18 23:02

<여객선침몰> '아픔 나누자' 자원봉사 봇물…생색내기는 '사절'

세월호 침몰 나흘째를 맞으면서 실종자 가족이 애타게 구조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팽목항에 자원봉사자가 몰려들고 있다. 사고 첫날인 16일 인근 영암에 있는 현대삼호중공업이 발빠르게 전남 진도군 임화면 팽목항에 부스를 만들고 행복약속봉사단 자원봉사자들과 노조원들이 함께 끼니당 500인분의 식사를 제공하고 이튿날 비옷을 나눠 아픔에 젖은 실종자 가족을 따뜻하게 감쌌다. 삼호중공업은 사고직후 터그보트 3대와 앰블런스 3대를 급파해 환자수송 등을 돕고 인명구조를 위해 잠수부 10여명을 침몰현장에 배치하는 동시에 침몰 여객선 인양을 위해 플로팅도크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시작으로 국민은행이 이동급식차를 파견했고 각종 봉사단체, 종교단체의 무료급식, 간식 부스가 세워졌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3개 통신사도 기지국 지원과 팽목항에 모인 이들에게 휴대전화 무료충전 서비스를 제공했다. 한전도 무선인터넷 장비를 설치했고 약사협회에서는 무료 의약품 제공으로 기다림에 심신이 지친 가족을 달랬다. 이외에도 각종 단체에서 자원봉사자를 파견하고 해경, 소방서, 행정기관도 현장상황실을 세우면서 팽목항 주변은 도로 양쪽에 수십개의 부스가 들어서 마치 상설시장 같은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실종자 가족보다 외부 인원의 수가 더 많아진 지 이미 오래다. 그러나 이런 자원봉사가 단체나 회사의 이름을 앞세우고 좁은 공간에 많은 부스가 몰리다보니 정작 필요한 차량의 진입이 힘든 상황도 벌어져 실종자 가족과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사고 이후 팽목항을 찾은 한 정치인은 실종자 가족에게서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얼굴 알리러 왔나"는 핀잔을 들어야만 했다. 또 자원봉사자와 민간 구조대 중 일부는 하는 일 없이 돌아다니거나 외부에서 사고현장을 구경온 듯한 이들의 모습도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실종자 가족이 모인 또다른 장소인 진도 실내체육관도 비슷한 상황이다. 한 단원고 실종 학생의 아버지는 "선의로 도와주려는 마음은 정말 고맙지만 호의도 과하면 민폐가 되고 때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며 "나흘동안 자식의 생사도 모르는 사람의 슬픔을 먼저 알아달라"고 말했다.

  • 사건·사고
  • 연합
  • 2014.04.18 23:02

<여객선침몰> "3등 항해사 '맹골수로' 조타지휘 처음"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와 관련해 구속된 3등 항해사는 '맹골수로' 해역에서 처음으로 조타지휘를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19일 오후 광주지방검찰청 목포지청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를 통해 구속된 3등 항해사 박모(27여)씨가 맹골수로를 조타지휘하며 운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수사본부 관계자는 "(박씨가) 인천에서 제주 구간을 6개월 전부터 운항해 왔으나 맹골수로는 이번에 처음 통과했다"며 "근무 순서상 조타지휘를 맡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세월호 침몰 해역인 맹골수로는 목포-제주, 인천-제주를 오가는 선박이 서로 항로를 바꾸는 이른바 '변침점'이다. 운항 경험이 적은 3등 항해사가 변침점에서 조타지휘를 한 경위에 대해서는 "정해진 근무표 상 이번에 3등 항해사가 맡게 된 것"이라며 "선장이나 12등 항해사가 근무시간을 일부러 조정한 것은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수사본부 측은 사고 전날 기상 문제로 세월호가 평소보다 지연 출항한 것이 근무 교대 일정상 3등 항해사 박씨가 변침점에서 조타 지휘를 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선장 이모(69)씨가 퇴선명령을 내렸는지에 대해선 "본인은 했다고 하나 아직 명확하게 확인할 수는 없다"며 "구조된 승객 진술 등을 거쳐야 할 문제"라고 못박았다. 수사본부 측은 이어 '침몰 직전 침실에 있었다'는 선장 진술에 대해 "선장 근무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근무 중 침실로 갔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면서도 주의의무를 다했는지를 수사 중이라고 설명했다. 수사본부 관계자는 "배가 넘어지기 전 변침하는 과정에서의 선체결함 가능성 등여러모로 조사하고 있다"며 "안전검사 적절성 여부와 선체 개조 등도 수사 대상"이 라고 덧붙였다. 광주지법 목포지원은 이날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도주선박의 선장 또는 승무원에 대한 가중처벌 조항을 적용해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선장 이씨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법원은 3등 항해사 박씨, 조타수 조모(55)씨에 대한 구속영장도 발부했다. 수사본부는 이들에 대한 조사를 이어가는 한편 사고 원인과 구호조처 등에 대한수사는 목포, 승선 과정과 관련한 조사는 인천에서 각각 참고인 진술 조사와 압수수색 자료 분석 등 수사를 진행 중이다.

  • 사건·사고
  • 연합
  • 2014.04.18 23:02

뒤늦은 첨단해난장비 동원…'희생 최소화' 기회놓쳐

수만톤의 배도 수중에서 통째로 들어 올릴 수 있는 '플로팅 독(Floating Dock)', 개당 35t의 부양력을 가진 '리프트 백' 등 첨단 해난 장비들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세월호 사고 초동대처에 대한 아쉬움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19일 세월호 구조탐사 과정을 지켜본 국민들은 사고 직후 세월호가 완전히 침몰하기 전에 이들 첨단 해난장비를 투입했다면 지금과 같은 대형 참사를 최소화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과 함께 당국의 초동대처 방식을 비판하고 있다. 세월호는 사고 초기 선체가 왼쪽으로 기울어졌지만 3분의 2 이상이 해상에 떠있는 상태를 상당 시간 동안 유지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이들 해난 장비를 사용했다면 수중으로 완전히 침몰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늦춰 선실에 갇혀 있던 많은 승객을 구조할 시간은 충분히 벌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군(軍) 현장구조지원본부는 18일 세월호가 해저 바닥으로 침강이 계속 진행되는 것을 저지하기위해 부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리프트 백(공기주머니)을 설치했다. 이 리프트 백은 개당 35t의 무게를 들어올릴 수 있을 정도의 부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리프트 백을 배에 걸어놓으면 배가 더이상 가라앉는 것을 방지할 수 있어 수중 작업 환경이 개선된다. 해군 잠수사들이 리프트 백 1개를 세월호 선체에 걸어놓은 데 이어 추가로 25개까지 설치할 계획이다. 해군은 리프트 백 25개를 현장구조지원본부가 설치된 대형 수송함 독도함(1만4천t)으로 긴급 이송했고 현재는 확보된 리프트 백을 사고해역으로 옮기고 있다. 또 침몰 여객선 세월호를 인양하기 위해 대형 크레인과 함께 현대삼호중공업이 바다 위에서 배를 건조할 수 있도록 세계 최초로 개발한 장비인 '플로팅 도크'가 거론되고 있다. 육상에서 만들어진 배 조각(블록)을 플로팅 도크에서 조립한 뒤 바지선을 가라앉히면 배가 뜨게되는 구조를 갖고있다. 크레인이 가라앉은 세월호는 들어올리면 세월호 선체 밑바닥으로 독을 집어넣고독에 공기를 집어 넣으면 독이 뜨면서 세월호도 수면위로 들어올려지게된다. 이 플로팅 독은 해수면 아래로 최대 24m까지 가라앉힐 수 있고 최대 8만t 무게까지 부양할 수 있다. 길이도 335m에 폭은 70m로, 146m와 22m 크기의 세월호를 싣기에는 충분하다. 지난 2010년 천안함 인양에도 이 방식이 사용됐다. 이러한 첨단 해난장비와 함께 해군해난구조대(SSU), 해군특수전여단(UDT/SEAL),해병특수수색대 등 군의 특수 인명구조 인력을 조기에 투입했다면 피해자를 한 명이 라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당시 이들 군의 특수인명구조팀이 현장에 도착했지만 세월호의 침몰 상황이 너무 악화돼 효과적인 구조 기회를 놓쳤다. . 네티즌 등 국민들은 "사고 초반 유기적 재난대응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주먹구구 식으로 구조를 펴 벌건 대낮에 수백명이 바닷물 속에 잠겨가는 것을 빤히 보고도 구하지 못하는 사태가 났다"며 "구조된 승객 대부분도 사고 직후 자력으로 선체에서 탈출한 사람들인 것을 보면 구조체계가 얼마나 허술했는지 알 수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 사건·사고
  • 연합
  • 2014.04.18 23:02

<여객선침몰> 4층 창문 너머로 사망자 3명 확인

세월호 사고 발생 나흘째인 19일 새벽 민간잠수사가 선체 외부에서 4층 창문을 통해 사망자의 시신 3구를 목격했다. 해경은 이날 오전 5시 50분께 투입한 잠수사가 34층 계단 통로를 확보하는 과 정에서 유리창을 통해 객실로 추정되는 곳에서 사망자 3명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선체 외부에서 4층의 창문을 통해 사망자를 발견한 것이어서 사망자들이 객실에 있었는지는 불투명한 상태다. 범부처사고대책본부는 이날 오전 10시 수색상황에 대한 브리핑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날 브리핑은 진도군청과 팽목항, 실내체육관에서 동시에 이뤄졌다. 고명석 해양경찰청 장비기술국장은 "오늘 새벽 발견한 사망자 3명은 4층 외부에 서 내부에 있는 사망자를 발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명석 국장은 19일 오전 10시 현재 시신을 수습한 사망자는 총 29명으로 전날 오후 11시 54분께 A(69여)씨의 시신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19일 오전 5시 50분께 민간잠수사가 4층 유리창을 통해 사망자 3명을 발견했으나 부유 장애물과 입수시간 제한으로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다. 이어 전날 수색 당시 파고는 0.51m로 수색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는 상태였으며 선체는 전복된 상태로 선수 부분이 수면 밑 약 10m까지 내려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고 국장은 "정조 시간이 아니라도 상황에 따라 더 많은 횟수의 수색을 시도할 계획"이라며 "다양한 구조방안 논의를 위해 선급, 연구기관, 조선소 등 전문가 회의 도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 사건·사고
  • 연합
  • 2014.04.18 23:02

<여객선침몰> 세월호 선장·조타수 일문일답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에서 승객 구조를 하지 않고 선박을 탈출한 혐의 등으로 구속된 선장 이준석(69)씨가 19일 오전 광주지방법원에서 영장이 발부된 후 취재진에게 "승객에게 퇴선 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함께 구속된 조타수 조모(55)씨는 갑자기 방향을 선회한 이른바 '변침'에 대해 "평소보다 조타(기)가 빨리 돌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선장 이씨와 조타수 조씨와의 일문일답. -- 배가 물에 잠기기 시작할 때 어디 있었나 ▲ (묵묵부답) -- 선원들은 퇴선명령 내렸는데 승객에게 왜 퇴선명령을 안 내렸는가 ▲ 명령 내렸다. -- (선내) 방송은 선실에 있으라고 나왔다는데 ▲ 수온도 차고 그 당시는 구조선이 안 왔다. (구조선이) 도착 안 해서 그랬다. -- 그리고 나서 먼저 내렸나 ▲ 아니다. -- 혐의 인정하는가 ▲ 인정하는 부분도 있고어쨌든 물의 일으켜 국민께 죄송하다. 유가족께 머리숙여 사죄드린다. -- 인정 못 하겠는 것인가 ▲ 아니다. 억울한 부분 없다. -- 퇴선명령 내렸다는 건가 ▲ 그렇다. -- 선실 내에 있으라는 말이 계속 나왔다는데 ▲ 그것은 구조선 도착하기 전이다. -- 배가 상당히 많이 기울었는데 ▲ 당시는 조류가 상당히 빠르고, 수온도 차고만일 구명조끼 없이 한 사람씩 퇴선하다 떠밀려갈 수도 있다. 그리고 당시 구조선도 없고 주위에 인명 구조하는 어선, 협조선도 없는 상태였다. -- 처음에 이상징후 후 신고 언제 했나 ▲ 이상징후가 순식간에 발생해서9시 50분경,(기자가 정정해줌) 아니 8시 50분경 신고했다. -- 그 이전엔 못 느꼈나 ▲ 네. -- 배 돌릴 때 어디 있었나 ▲ 항로 지시하고 잠시 침실 다녀왔다. 응급조치하고 잠시 침실 갔다왔다 -- 그때 술을 마셨다는 말이 있는데 ▲ 아니다. 다음은 조타수 조모(55)씨와의 일문일답. -- 평소보다 (조타기를) 심하게 돌렸나 ▲ 아니다. -- 평소처럼 돌렸다는 것인가 ▲ 네. -- 돌린 다음에 이상징후는 ▲ 평소보다 많이 돌아갔다. -- 실수한 거냐 ▲ 내가 실수한 부분도 있지만 타가 유난히 빨리 돌았다. -- 배가 ▲ 아니다. 조타가 유난히 빨리 돌았다. 유가족에게 죄송하다는 말씀드린다. -- 돌리자마자 이상징후는 ▲묵묵부답

  • 사건·사고
  • 연합
  • 2014.04.18 23:02

<여객선침몰> 사망자 연이은 발견에 실종자 가족 '낙담'

세월호가 침몰한 지 나흘째인 19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구조소식을 기다리던 실종자 가족들은 구조작업이 성과를 내지 못하자 낙담한 표정이다. 실종자 가족들은 구조작업이 더디게 진행되자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갔다. 정부와 각종 구호단체가 임시쉼터를 만들어 놨지만, 가족들은 추운 바닷바람에 도 담요를 뒤집어쓴 채 바다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날 새벽에는 단원고 학부모 20여명이 팽목항 선착장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아 이들을 제발 살려달라"며 오열을 하다가 4명이 실신하기도 했다. 이들은 정부 당국의 조속한 수색을 촉구하며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팽목항 내 설치된 대형 TV를 통해 사망자가 연이어 발견됐다는 소속이 전해지자가족들은 연방 한숨을 내쉬었다. 정부의 미숙한 대응과 언론의 과잉 취재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실종자 가족들은 상황본부를 찾아가 더딘 구조작업에 대해 항의하며 해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단원고 2학년 학생의 한 어머니가 "아들이 살아있다고 믿는다. 아니 믿고 싶다"라며 오열하자 주변은 눈물바다로 변했다. 실종자 가족 중에는 통곡하다가 쓰러져 현장에서 응급처치가 이뤄지기도 했다. 몸이 좋지 않은 가족들은 대기실 바닥에 주저앉아 추위에 떨면서도 "팽목항에서 상황을 끝까지 지켜보겠다"면서 진도 실내체육관으로 옮기라는 주변의 권유를 뿌리쳤다. 최모(46여)씨는 "아들이 저 차가운 물속에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며 "몸도 약한 아이인데"라며 절규했다. 밤을 지새우다시피 한 가족 대부분은 봉사단체에서 마련한 빵, 음료로 식사를 대신하고 상황본부 브리핑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일부 여성들과 노인들은 임시 대피소에서 담요 하나로 몸을 덮고 돗자리 위에 누워 지친 몸을 잠시 누이기도 했다. 실족자 가족 20여명은 수색작업을 지켜보려고 이날 오전 사고 해역으로 떠났다.

  • 사건·사고
  • 연합
  • 2014.04.18 23:02

<여객선침몰> '선박직' 전원 생존…승객 두고 먼저 탈출

선장항해사기관사 등 침몰 여객선 세월호(6천825t급)의 선박직 선원 전원이 생존한 것으로 드러났다. 선박 구조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는 수백명의 학생들을 뒤로 한 채 먼저 탈출했다는 점에서 공분을 사고 있다. 연합뉴스가 지난 18일 단독 입수한 탑승자 전체 명단과 생존자 명단을 비교한 결과 세월호 선장 이준석(69)씨를 비롯해 선박직 15명은 전원 생존한 것으로 확인됐다. 선장 이씨 외에 선박직 생존자는 123등 항해사 4명, 조타수 3명, 기관장기관사 3명, 조기장조기수 4명이다. 학생들이 "객실에서 대기하라"는 선내 방송 때문에 배 밖으로 대피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이 이들은 평소 익숙한 통로를 이용해 탈출에 성공했다. 특히 선장 이씨는 첫 구조선에 몸을 싣고 육지에 도착함으로써 승객이 모두 대피할 때까지 배를 지켜야 하는 선장의 의무를 완전히 저버렸다. 선사의 위기대응 매뉴얼대로라면 선장은 선내에서 총지휘를 맡고 1항사는 현장지휘, 2항사는 응급처치와 구명정 작동, 3항사는 선장을 보좌해 기록통신 업무를 담당해야 했지만 모두 무시됐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학생들의 탈출을 돕다가 유명을 달리했거나실종된 승무원은 주로 승객 서비스를 총괄하는 사무장사무원들이었다. 사무원 박지영(22여)씨는 구명조끼를 학생에게 양보하고 승객의 대피를 돕다가 결국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왜 구명조끼를 입지 않느냐"는 한 학생의 걱정어린 물음에 박씨는 "너희들 다 구하고 나도 따라가겠다"고 했지만 끝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사무장 양대홍(45)씨는 아내의 전화를 받고는 "수협 통장에 돈이 좀 있으니 큰아들 학비 내"라며 "지금 아이들 구하러 가야 한다"며 서둘러 통화를 마쳤다. 양씨는 실종돼 현재 생사가 불투명하다. 사무원 정현선(28여)씨와 세월호 불꽃놀이 행사 담당 김기웅(28)씨는 결혼을 약속한 연인이었지만 같은 날 세상을 떠나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청해진해운에 따르면 세월호 승선 승무원은 모두 29명이다. 이날 현재까지 사망자는 3명, 실종자 6명, 생존자는 20명이다. 전체 승무원의 69%가 생존했다.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 중 75명(23%)만 구조된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 사건·사고
  • 연합
  • 2014.04.18 23:02

<여객선침몰> 선체내 시신 객실 창문 통해 첫 확인

세월호 침몰 나흘째인 19일 선체 내부에서 최초로 사망자가 발견된 가운데 구조대는 선체 내부 수색에 초첨을 맞춰 구조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해경은 이날 오전 5시50분께 잠수요원을 투입해 선체 수색 작업을 벌이던 중 4층 객실로 추정되는 곳에서 구명조끼를 입은 시신 3구를 찾아냈다. 구조대는 3층4층 계단 통로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유리창을 통해 4층 객실 안에 있던 시신을 확인했다. 해경은 현재 4층 객실 유리창을 깨기 위해 차례로 잠수부를 투입하고 있다. 해경은 선체 내부에서 최초로 사망자를 확인한 만큼 선체 내부 수색에 중점을 맞춰 구조작업을 벌일 예정이다. 특히 오후부터 사고 현장의 기상이 좋지 않을 것으로 보여 오전에 인력을 집중적으로 투입키로 했다. 해경은 이와 함께 조류 영향으로 시신이 유실될 것으로 우려됨에 따라 이날부터사고 해역 주변에서 그물망을 설치하기로 했다. 최상환 해양경찰청 차장은 "혹시 시신이 더 멀리 떠내려갈 것에 대비해 (사고 해역에서 떨어진) 먼 거리에 오늘부터 그물망을 치도록 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해경은 이날 민ㆍ군ㆍ경으로 팀을 나눠 수색 작업에 총력을 기울이는 한편 오전9시부터는 선체내로 공기를 다시 주입한다. 해경은 오전 11시 10분, 오후 5시 등 물흐름이 멈춘 정조 시간에 맞춰 선체 진입을 적극적으로 시도키로 했다. 해경은 밤새 잠수요원을 투입해 수색을 벌여 여성 1명의 시신을 발견해 전체 사망자 수는 29명으로 늘어났다. 이날 오전 8시 현재 탑승자 476명 가운데 174명이 구조됐고 29명이 사망했으며 실종자는 273명에 이른다.

  • 사건·사고
  • 연합
  • 2014.04.18 23:02

<여객선침몰> 단원고, 교감 자살까지 겹치자 '망연자실'

여객선 세월호 침몰 속에서 극적으로 생환했던 안산 단원고등학교 강민규(52) 교감이 18일 오후 전남 진도군 진도읍 야산에서 숨진채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단원고는 다시 충격에 휩싸였다. 복도 등에서 사고소식을 접한 동료교사들은 강 교감의 자살 소식이 믿지지 않는 듯 "확인을 해봐야겠다"며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한 동료교사는 "어제까지 진도 대책본부에서 함께 있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린채 황급히 자리를 떴다. 사고대책본부가 마련된 교무실에는 강 교감의 생사를 확인하려는 기자들이 몰리면서 한때 북새통을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도교육청 직원들이 문을 굳게 잠근채 기자들의 출입을 막았고 강 교감의 생사에 대해서는 "확인후 알려주겠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학교에서 봉사나 지원활동을 하던 시민들도 큰 충격에 빠진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학생들을 인솔하고 수학여행길에 올랐던 강 교감은 지난 16일 사고 직후 구조된뒤 진도 현지에서 동료교사들과 사태수습을 하다가 이날 오후 4시 5분께 전남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 진도실내체육관 인근 야산 소나무에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교감의 사망소식까지 더해진 단원고에서는 온종일 울음소리가 그치질 않았다. 희생된 학생들의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간간이 상황실이 마련된 강당으로 찾아와 대성통곡하며 수학여행 사고의 문제를 따졌고 자녀들의 무사귀환을 요구했다. 사고를 당한 2학년 교실이 있는 3층 복도에는 실종된 학생들의 친구, 선후배들이 몰려와 유리창과 벽 등에 무사 기원을 축원하는 각종 글을 남겼다. 인근 마을 주민들도 학교 주변으로 몰려와 온종일 혀를 차며 학생들의 사고를 마음속 깊이 아파했다. 한 주민은 "전쟁이 나도 이 정도는 아니다"이라며 "그놈의 수학여행 때문에 온 동네, 아니 안산시내 전체가 하루아침에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됐다"고 허탈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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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14.04.18 23:02

<여객선침몰> 교감 숨진 단원고 교사들 충격

수학여행길에서 여객선 침몰 참사를 당한 경기도안산 단원고 교감 강모(52)씨가 숨진 채 발견되자 사고 현장에 함께 머물던 동료 교사들이 충격에 빠져 말을 잇지 못했다. 교사들은 인솔 책임자였던 강씨가 자책감에 괴로워했다며 고개를 떨궜다. 18일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들과 함께 머물던 단원고 교장과 동료 교사들은 뒤늦게 비보를 듣고 오열했다. 단원고 교사 10여명은 사고 발생 당시부터 체육관 등에 머물며 사고 수습 과정을 함께 했다. 교사들은 "총 책임자로 아이들을 제대로 인솔하지 못한 죄책감에 교감 선생님이 괴로워했다"며 안타까워했다. 특히 전날 저녁 해경 조사를 받고 체육관으로 돌아온 강씨가 실종자 가족들로부터 동료 교사들이 거센 항의를 받자 괴로워했다고 전했다. 전날 저녁 9시께 시신 수습 소식에 예민해진 가족들은 "교장이 함께 (정부의 대처에)대응해줘야지 어떻게 학부모들만 얘기하느냐"며 단원고 교장과 교사에게 몰려가 항의했다. 조사를 받고 다시 체육관으로 돌아온 강씨는 멀리서 동료 교사들이 고충을 겪는 모습을 목격하고 괴로워하다가 자리를 떴다고 한다. 교사들은 연락이 닿지 않자 자정께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한 동료 교사는 "구조되고 나서 몸이 좋지 않아 보여 입원해 치료를 받으라고 했는데 죄책감에 항상 체육관에 머물렀다"며 "어제 아내와 딸이 내려왔는데도 돌려보냈다"고 털어놨다. 단원고 교장은 "혼자 멍하게 있었다"며 "어제 동료들이 항의를 받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눈빛이 평소와 많이 달랐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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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14.04.18 23:02

<여객선침몰> 세월호 안전훈련계획만 거창

침몰 여객선 세월호(6천825t급)가 평상시 비상대응훈련 계획을 작성해 해양경찰 심사를 통과했지만 실제로는 안전훈련을 거의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18일 인천해양경찰서에 따르면 비상대응훈련계획 등을 포함한 세월호의 운항관리규정은 지난 2월 해경 심사를 통과했다. 비상대응훈련계획에 따르면 청해진해운은 열흘마다 세월호에서 소화훈련, 인명구조, 퇴선, 방수 등 해상인명 안전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교관은 선장이며 대상자는 전체 선원이다. 또 3개월마다 비상조타훈련을, 6개월마다 충돌, 좌초, 추진기관 고장, 악천후 대비 등 선체손상 대처훈련과 함께 해상추락 훈련을 할 것이라고 적시했다. 청해진해운은 그러나 실제로는 비상대응훈련을 거의 실행에 옮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사실 운항관리계획서는 형식에 불과해 비상대응훈련을 계획대로 시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접안 부두가 옆이어서 세월호를 늘 봐 왔지만 세월호에서 비상대응훈련이 실시된 걸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평소 해상인명 안전훈련만 제대로 했어도 이번 침몰 사건처럼 선장이나 선원 일부가 위험에 처한 승객을 놔두고 무책임하게 먼저 탈출하진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여객선사가 비상대응훈련계획을 등한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행을 하지 않아도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심사증명서를 내준 해양경찰서도, 여객선 운항 면허를 내준 지방해양항만청도 여객선사가 계획대로 훈련을 시행하고 있는지 점검하지 않는다. 선사 비상대응훈련계획을 관리감독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여객선이 수백명의 승객을 싣고 운항하는 교통수단인 점을 고려하면 여객선사도항공사처럼 승무원을 대상으로 주기적인 대피훈련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여론도 높아 지고 있다. 해경의 한 관계자는 "여객선사 대부분이 영세한 기업이어서 안전에 대한 관심이 소홀한 측면이 있었는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여객선 비상대피훈련 의무화 등 안전관리규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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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14.04.18 23:02

<여객선침몰> '승객인 척' 먼저 빠져나온 선장 영상 포착

온 나라를 충격에 빠트린 지난 16일 세월호 침몰사고 현장에서 최초로 구조된 승객을 태우고 팽목항에 도착한 첫 구조선에 몸을 싣고 있는 이준석 선장의 모습이 뉴스와이 영상에 포착됐다. 남방에 니트까지 걸친 깔끔한 옷차림으로 승객인 척 구조대원들로부터 '안내'를 받았다. 선장인지를 알 수 없던 구조대원에게 본인의 신분을 알리는 기색은 없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사지를 간신히 빠져나온 승객과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18일 뉴스와이 현장 영상을 확인한 결과 지난 16일 오전 11시 16분께 이 선장은 세월호에서 빠져나온 3명의 선원과 함께 첫 구조선에서 내렸다. 이 선장은 함께 타고 온 학생들보다 먼저 구조선에서 내렸다. 이 선장은 회색 남방에 니트까지 입고 있었다. 바다에서 구조된 사람으로 보기 어려울 만큼 상의는 거의 물에 젖지 않은 상태였다. 실제 구조선에서 내린 대부분 승객에게 체온 유지를 위해 담요가 제공됐지만 이 선장은 담요를 덮고 있지 않았다. 적어도 웃옷은 물에 젖지 않았다는 걸 추정할 수 있다. 이 선장은 현장요원의 도움도 없이 구조선에서 내려 구조자가 대기하고 있던 팽목항 매표소 건물로 '멀쩡히' 걸어 들어갔다. 환자가 대기하던 매표소로 자리를 옮긴 이 선장은 바지를 벗고 뒤늦게 담요를 받았다. 하의는 젖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선장은 여전히 상의는 덮지 않고 하반신만 감싸는 장면이 영상에 담겼다. 젖은 옷을 갈아입고도 체온을 유지하지 못해 담요로 전신을 덮고 온수 팩까지 끌어안아야 했던 다른 구조자들과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이로써 이 선장이 침수되기 전 신속히 현장을 빠져나와 구조됐거나 구명정 탑승등 안전한 방법으로 현장을 탈출했을 수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상당수 승객들은 탈출 과정에서 머리와 갈비뼈 등을 크게 다쳐 들것에 실려 나오기도 했지만 이 선장의 모습에서는 뚜렷한 외상을 찾기 어려웠다. 또 이 선장은 구조된 승객 틈에 섞여 묵묵히 현장요원의 안내를 받았을 뿐 누군가에게 사고 현장에 대해 설명을 하거나 구조된 승객들을 돕는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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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14.04.18 23:02

<여객선침몰> 허위증언·문자메시지·스미싱 "범죄다"

여객선 세월호 침몰로 실종자들의 생사가 온 국민의 관심사인 가운데 구조 과정에서 허위 사실이 번번이 유포되고 있어 분노를 사고 있다. 여객선 침몰 직후 SNS 상에서 거짓 문자 메시지와 스미싱(문자 사기)에 이어 방송 인터뷰에서 허위 증언까지 나오면서 기적 같은 생환을 바라는 실종자 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있다. 또한 현지에서 목숨을 걸고 수색작업에 참여한 구조대와 국민에게 혼란을 부추겨 비난을 사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은 세월호 침몰사고 하루 만인 17일 오전 이번 사고와 관련 있는 것처럼 꾸민 스미싱 문자가 발송되는 것을 확인하고, 국민에게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해당 스미싱 문자에는 '[연합뉴스] 여객선(세월호) 침몰사고 구조현황 동영상'이라는 문구와 함께 인터넷주소(URL)가 적혀있다. 문자 발송자는 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가 보낸 것처럼 위장했으나 실제 이 문자는 연합뉴스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문자에 포함된 인터넷주소를 클릭하면 스마트폰에 악성앱(구조현황.apk)이 설치되고, 이를 통해 기기정보, 문자, 통화기록 등이 빠져나가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한 17일 여객선 속에 실종자가 살아 있으며 생존자가 구조를 요청하고 있다는 거짓 메시지가 돌아다녔다. 여기에 악성 댓글이 달리는 등 실종자 가족들의 마음을 후벼파는 반인륜적인 행위도 번번이 벌어지고 있다. 민간 잠수사 H씨는 18일 모 방송과 인터뷰를 통해 "현장 정부 관계자가 민간 잠수사에게 대충 시간이나 때우고 가라 말했다", "구조 현장에서 민간 잠수부들과 관계자의 협조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고 발언했다. 이후 H씨의 인터뷰 내용이 SNS 등을 통해 거세게 확산되면서 논란을 불러 일으켰으나 해당 방송사가 확인한 결과, H씨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 경찰은 허위 인터뷰와 거짓 메시지, 스미싱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 시민 김모씨는 "온 국민이 충격과 슬픔에 휩싸여 있는 상황에서 실종자 가족 가 슴에 두 번 못을 박는 행위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며 "이러한 반문명적인 행위를 발본색원에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언론도 국민 알권리 보장 차원에서 속보 경쟁도 중요하겠지만 차분하면서도 냉철하게 최우선적으로 생명을 구하는 데 취재보도를 집중하고 사고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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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14.04.18 23:02

<여객선침몰> 세월호 멈춘 시각 두고 어민들 의견 '분분'

세월호가 사고 해역에서 멈춘 시각을 두고 어민들끼리 의견이 분분하다. 진도 조도 주민 이모(48)씨는 "미역 양식 때문에 사고 당일 새벽 일찍 나갔는데, 큰 배가 오전 8시께 멈춰 있었다"면서 "그렇게 큰 배가 서 있어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TV뉴스를 보니 오전 9시 전후에 신고가 들어왔다고 하는데 문제는 그전에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씨는 세월호에서 2㎞가량 떨어진 곳에서 배를 봤다고 주장했다. 조도 주민 최모(40)씨도 "미역을 캐고 들어오다가 이장으로부터 사고 소식을 들은 때가 오전 9시 조금 넘은 시각"이라며 "이미 배는 1시간 전부터 서 있었다"고 말했다. 주민 김국태씨는 "어업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커다란 배가 보여 무슨 일인가 싶어 시계를 봤더니 오전 8시 20분이었다"면서 "선장이 사고 시각에 대해 거짓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기억대로라면 세월호는 현장에서 어떤 상황이 발생하고서 1시간여 동안 머물러 있었고 배의 기울어짐이 해경에 신고되기 이전부터 진행됐음을 방증한다. 반면, 어민 황모(47)씨는 "비슷한 시간대 양식 작업을 했는데 세월호를 보지 못했다"면서 "아마 배가 천천히 이동하다 보니 어민들이 목격 시각을 착각한 것 같다"고 다른 어민들의 주장을 반박했다. 대부분의 목격 어민들은 "우리같이 뱃일하는 사람들은 시계보다는 하늘을 보고 시간을 대략 짐작한다"면서 "배를 본 정확한 시각은 모르겠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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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14.04.18 23:02

<여객선침몰> 필사적 구조 시도…'버큰헤드 정신' 발휘되기를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 영국의 '버큰헤드(Birkenhead) 정신'이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퍼지고 있다. 세월호 선장과 일부 승무원이 침몰 당시 승객보다 먼저 탈출한 부적절한 행동과 비교되기 때문이다. 이 정신은 영국 해군 수송선 '버큰헤드호'의 침몰 사고 때 함장과 병사들이 여성과 어린이를 사력을 다해 구한 뒤 끝까지 배를 지킨 데서 유래했다. '여자와 어린이, 노약자를 먼저', 고귀한 희생정신이라는 전통을 만들어냈다. 1852년 2월 새벽 군인 472명과 가족 162명 등 634명을 태운 버큰헤드호가 남아 프리카 희망봉 앞 바다를 지나가다가 암초에 부딪혔다. 배는 두 동강 나 한 쪽이 가라앉았다. 군인과 가족이 반대 편으로 몰리며 배는 서서히 침몰했다. 상어가 우글거리는 바다에 풍랑까지 거세졌다. 구명보트는 단 3척. 한 척에 60명씩 총 180명만 탈 수 있었다. 모두 절망에 빠졌고 일부는 울부짖는 등 아비규환이 됐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그때 갑자기 북소리가 울렸고 동시에 갑판으로 집결한 병사들은 함장의 '차렷' 구령에 정렬했다. 병사들은 함장 지시에 따라 횃불을 밝힌 뒤 차분하게 여자와 어린이들을 구명보트에 태워 구조 준비를 끝냈다. 구명보트에는 약간의 자리가 남았다. 구명보트 승선자들이 '여유가 있으니 뛰어내리라'고 소리쳤지만 병사들은 끝내 꼼짝하지 않았다. 보트가 휘청거려 전복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군인 472명은 구명보트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거수경례를 했고 결국 버큰헤드호와 함께 전원 수장됐다. 이 이야기는 1859년 스코틀랜드 작가 새무얼 스마일즈가 쓴 '자조론'(自助論)이 란 책에 소개됐다. 60년 뒤인 1912년 영국 여객선 '타이타닉호'가 침몰했을 때도 버큰헤드 정신으로 선장과 승무원 30여 명이 끝까지 배를 지키며 버큰헤드호의 이야기는 전 세계에 알려졌다. 당시 배에 탄 2천200여 명 중 1천500여 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여자 승객 80%가 구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자가 어머니와 하녀를 탈출시키고 결국 타이타닉호와 운명을 같이 했다. 그 어머니와 하녀는 그 후 증기선에 의해 구조됐다. 네티즌들은 이 이야기를 퍼 나르며 세월호의 대처에 분노하고 있다. 아이디 '나경'은 "선장과 승조원들, 특히 선실에서 기다리라고 방송한 사람, 막화나요. 구명조끼 입고 나와서 갑판으로 나오라고 했다면 훨씬 많이 구조됐을텐데. 나쁜 어른들입니다"라고 안타까워했다. '별똥'을 아이디로 사용하는 네티즌은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말고 한 목숨이라고 더 구조되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아이디 'pigeon605'는 "가슴이 먹먹해요.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기적이 일어나길 바래봅니다"라며 실종자 가족을 위로했다. 아직 살아있을지 모를 생존자들 구조를 위해 필사적으로 선체 진입을 시도하고 있는 18일 버큰헤드 정신이 발휘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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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14.04.18 23:02
사회섹션